기억해야 할 그날의 이야기

별이 된 딸, 폰엔 2년반 기다린 취업문자…
이태원에서 멈춘 꿈

상은은 1997년 6월29일에 태어났다. 올해 스물다섯. 어릴 때부터 밝고 예쁜 아이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잘 웃었다. 사진 찍을 때면 으레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고 웃었다. 상은과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한 번도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2014년 상은과 같은 나이의 단원고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뒤로.

잘 웃던 상은이 펑펑 울음을 터뜨린 날이 있었다. “아빠, 나… 합격했어!” 합격이라는 단어를 내뱉자마자, 상은은 휴대전화를 붙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올해 8월23일,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시험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은 날이었다.

“엄마, 나 직장을 다니든 뭘 하든 미국에서 살아보고 싶어.” 회사에서 재무 쪽 일을 하는 엄마 강선이(52)씨는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을 추천했다. “상은아, 미국 공인회계사 공부를 해보는 건 어때? 한국 공인회계사 시험보다는 덜 어려울 거야. 물론 언어가 문제지만 그것도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취업하면 먼저 연애부터 할 거야. 결혼도 빨리 하고 싶어. 결혼식은 성당에서 올리면 좋겠다. 아, 친구들이랑 해외여행도 가고 싶어.” 2년6개월 동안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차곡차곡 쌓은 상은의 ‘버킷리스트’는 차고 넘쳤다.

상은은 대학 졸업 전에 시험에 합격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처럼 시험 합격은 쉽지 않았다. 기약 없이 길어지는 공부에 결국 졸업부터 했다. 그리고 8월 23일, 졸업식 나흘 뒤에 합격 소식을 들었다.

버킷리스트엔 취업, 연애, 여행

핼러윈 며칠 전부터 상은은 엄마에게 계획을 말했다. “친구랑 이태원 가서 놀고 올게.” 상은은 이태원을 좋아했다. 시험을 치른 날이면 엄마랑 같이 이태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초등학교 때 엄마와 홍콩에서 1년가량 살았던 상은에게 핼러윈은 행복한 기억이었다.

그날 새벽, 강선이씨는 남편 이성환 씨와 일찍 집을 나섰다. 아침에 상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은 먹었어?” ”이태원 가면 재밌게 놀아야 하니까, 엄마 저녁엔 전화하지 마.” 상은이 즐겁게 핼러윈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 엄마는 평소처럼 전화를 걸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6시가 넘어, 강원도 숙소에서 텔레비전을 켠 엄마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수백 명이 넘어져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정신없이 상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분명 ‘사랑하는딸’이라는 이름이 뜨는데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용산경찰서였다. “우리 딸은 어디에 있어요?” “저희는 현장에서 물품만 수거해와서, 잘 모르겠습니다.” 이웃에게 부탁해, 상은이 집에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 아빠는 그길로 서울로 향했다. 한남동 주민센터에서도, 순천향대병원에서도 상은을 찾을 수 없었다. 집에 가서 옷이라도 갈아입고 다시 찾아보자고 하던 찰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동대문경찰서입니다. 1997년 6월 29일생 이상은씨 부모님 휴대전화 맞습니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떻게 알았어요? 우리 상은이인 줄 어떻게 알아요?” “지문으로 확인했습니다.”

강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편 이씨가 대신 전화를 받았다. 경찰은 동대문구의 한 병원으로 안내했다. 안치실에 딸이 누워 있었다.

엄마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후 6시부터 112 신고가 있었다는데 왜 아무런 조치가 없었는지, 왜 이태원역은 무정차 통과를 하지 않았는지, 직장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최고책임자가 책임지는데 왜 대통령은 사과도 없는지.

아직 엄마 아빠는 마음으로 상은을 보내지 못했다. 상은의 방도 치우지 않았다. 침대 머리맡에는 상은이 보던 책이 놓여 있다. 벽 한쪽엔 ‘TOEIC 945' 등 목표를 적은 쪽지 13개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그대로 걸려 있다. 하나씩 이뤄갔던 목표는 마지막 13번째 ‘취업’ 앞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방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게 많던 그의 버킷리스트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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