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할 그날의 이야기

영안실에서 입은 웨딩드레스…
예비신랑이 입혀 떠나보낸 날

그는 2018년 한국에 왔다. 이제 막 간호전문대학을 졸업한 스물한 살이었다. 어려서 친구처럼 지낸 두 언니를 따라온 한국에서 4년을 지내는 동안 그에겐 또 다른 가족이 생겼다. 미래를 약속한 애인 예고르(27)씨와, 반려묘 살라몬이다. 스물다섯 김옥사나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 했다.

옥사나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43㎞가량 떨어진 스파스크달니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다. 옥사나와 다섯 살 위 언니, 엄마, 아빠는 이곳에서 4대째 살고 있는 고려인 가족이다.

언니들이 먼저 대학에 간 뒤, 옥사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간호전문대에 진학했다. 주사와 피를 무서워하지 않고,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옥사나에게 ‘딱 맞는’ 전공이었다.

소녀는 음악도 좋아했다. 노래를 곧잘 불렀고, 피아노 연주에도 소질이 있어 연주회에 나갈 때마다 입상했다. 케이팝(K-Pop)에도 푹 빠졌다. 그룹 비스트의 양요섭과 제이와이제이(JYJ)의 김재중을 가장 좋아했다. 옥사나는 언젠가는 한국에 가는 것을 꿈꿨다.

한국에 온 뒤 언니들과 함께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일했다. 1년 뒤부터는 서로 떨어져 일하는 곳도 사는 곳도 달랐지만 한 달에 두세 번은 만났다. 서울 동대문에서 일한 올리아나씨와 서울 용산에서 일한 옥사나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022년 여름 퇴근길이었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함께 퇴근했다. 부평역에서 올리아나씨가 먼저 내리며 손을 흔들었다. 그날 본 옥사나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올리아나씨는 상상도 못 했다.

결혼 약속한 애인이 안치실에서 입힌 드레스
10월29일, 옥사나는 핼러윈을 좋아하는 친구가 저녁을 같이 먹자는 말에 이태원에 갔다. 옥사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갛게 물드는 것을 싫어했다. 이태원처럼 사람 많은 곳에는 잘 놀러 가지도 않았다. 핼러윈은 좋아하지도 않았고, 즐겨본 적도 없었다.

그날따라 우연이 겹쳤다. 그날 옥사나가 친구를 이태원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옥사나 남자친구 예고르씨가 허리가 아프지 않아 함께 갔더라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올리아나씨는 참사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되감아보며 의미 없는 가정의 질문을 거듭한다.

그날 밤 11시40분, 올리아나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옥사나와 이태원에서 만난다는 친구였다. “옥사나 남자친구 전화번호 알아요?” “왜?” “옥사나가 숨을 안 쉬어요. 한 시간 동안 도로에 누워 있어요.”

올리아나씨는 바로 이태원에 갔다.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 갔지만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5시까지 병원 앞에서, 다시 오전 11시까지 한남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다렸지만 누구도 옥사나의 행방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올리아나씨는 구급차가 갔다는 병원 목록을 받아 엘레나, 예고르씨와 같이 하나씩 하나씩 찾아다녔다.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주민센터에서 연락이 와서 강동경희대병원에 옥사나가 있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10월30일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경찰은 옥사나가 해밀톤호텔 뒤편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밤 10시께 나왔다고 했다. 인파에 눌려 40분가량 옴짝달싹 못했던 옥사나는 넘어졌다가 구조됐다. 이후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10월31일, 올리아나와 엘레나, 예고르씨는 옷가게를 돌았다. 옥사나에게 입힐 웨딩드레스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자란 동네에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숨지면 땅에 묻기 전 웨딩드레스를 입히는 전통이 있다. 죽음이 아직 믿기지 않는데 옥사나가 입을 하얀색 드레스를 골라야 했다. 울면서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모습에 가게 직원이 “왜 그렇게 슬피 우느냐”고 물었다. 때마침 가게 텔레비전에서 이태원 참사 뉴스가 흘러나왔다. 올리아나 일행은 대답 대신 목놓아 울었다.

ⓒ 한겨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