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경영학 교수 지역 살리는 로컬리즘이 인구 위기 해법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7명이라는 충격적 소식에 인구 소멸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대 분석과 인구 문제를 통해 사회 변화에 발맞춘 지속 가능한
대응 체계를 연구하는 경제학자 전영수 교수에게 인구 위기에 대처하는 해법을 들었다.

글. 이선민 사진. 전재호
전세피해지원센터2

2024년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 이하 출산율)은 0.68명을 기록할 전망이다.
2022년 0.78명으로 처음 0.7명대에 진입했고, 2023년 0.72명으로 낮아진 데 이어 이제 0.7명대 아래로 떨어졌다. 한국 출산율을 두고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서트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14세기에 유럽을 덮친 흑사병이 몰고 온 인구 감소를 능가하는 결과”라고 평했다. 또 미국의 조앤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 출산율에 대해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고 탄식했다. 정말 인구가 지금처럼 감소하면 나라가 망하는 걸까?
“인구 변화는 결과이자 원인입니다. 저성장 시대에 미래가 불투명하니까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고 아이도 낳지 않는 거죠. 그러다 보면 갈수록 저성장이 심화되어 사람들이 더더욱 아이를 낳지 않게 됩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출산율이 더욱 낮아져 100년쯤 후에는 아예 한국인이라는 존재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유학하며 일찌감치 고령화와 연금 문제를 연구해온 전영수 교수는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고령화와 저출생 속도가 훨씬 빠르다며, 이미 인구 위기 해결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40~50년 동안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온 일본도 현재 상황이 좋지 않은데, 우리나라는 아예 준비조차 하지 않아 더 큰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했다.

제조업이 아닌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이 필요한 때

전 교수는 MZ세대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개발도상국은 정보의 비대칭성이나 불확실성 때문에 가족을 결성해 노동력을 확보하고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대학 진학률이 75%에 육박할 정도로 고학력이라 MZ세대의 상황 판단 능력이 뛰어나다. 이들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해답이 없는 현실을 확실히 깨닫고 있기에 자신을 챙기기에도 벅찰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지만, 산업구조는 여전히 후진국 형태를 벗어나지 못해 제조업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이것을 바꿔야 합니다. 인구 위기는 인재 혁명으로 풀어야 합니다. 인재를 키워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나가야 해요. 고부가가치를 만든다는 것은 과거에는 없던 산업의 탄생을 뜻합니다.
이 똑똑한 MZ세대가 일할 수 있도록 혁신적 산업구조의 변화가 필요한 거죠.”
전 교수는 ‘타다’를 예로 들었다. 같은 택시 운전을 한다고 해도 MZ세대는 타다 같은 혁신적 시도를 했다. 그런데 기존 택시 기사들의 반발이 심해 사업을 해나갈 수 없었다. 이 기성세대가 세워놓은 벽이 MZ세대의 희망을 앗아가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고 인프라도 잘 구축되어 있는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혁신적 스타트업이 탄생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기성세대의 벽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된 데는 기성세대의 역할이 컸습니다.
하지만 MZ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선진국인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MZ세대만의 선진국 룰과 질서가 있는데, 후진국의 룰과 질서에 익숙한 기성세대가 자신의 룰을 따르라고 하니 세대 갈등이 생기는 거죠.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성세대가 독점한 부와 권력을 내려놓아야 하는 거죠.”
생산 가능 인구인 15세가 20만 명 남짓인데, 1955~1975년에 태어난 인구가 1,700만 명이다. 1975년생이 65세로 진입하는 2040년이면 수십만 명의 생산 인구가 1,700만 명을 부양하는 사회구조가 된다. 전 교수는 기성세대가 지금처럼 모든 것을 독점하는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똑똑한 아이들이 이 사실을 잘 알고 각자도생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된 데는 기성세대의 역할이 컸습니다.
하지만 MZ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선진국인 한국에서 살고 있어요.
MZ세대만의 선진국 룰과 질서가 있는데, 후진국의 룰과 질서에 익숙한
기성세대가 자신의 룰을 따르라고 하니 세대 갈등이 생기는 거죠.


로컬 기반의 경기 모델 구축으로 새로운 길 제시해야 그렇다면 인구문제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전 교수는 로컬 공간을 건강하고 지속적인 생활 단위로 재구성하는 로컬리즘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총인구가 줄어드는 나라는 일본·한국·중국 세 나라뿐인데, 공통점인 입신양명을 위한 유교적 마인드가 강하다는 데서 문제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이 그나마 1.6명 수준의 출산율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도농 간 이동이 적은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인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주립대학교를 최고 명문대로 만들고, 특화 산업도 이탈 없이 정주하며 순환 경제를 일궈내는 데서 답을 찾아야 한다.
“지방에는 먹이가 없고, 서울에는 둥지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먹이와 둥지의 공간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한데, 그것이 바로 로컬리즘입니다. 지역 재생, 지역 활성화라고 할 수도 있지요. 로컬 기반을 튼실하게 구축하면 굳이 먹이를 찾아 서울로 올 필요가 없어요. 전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52% 인구가 몰려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가 말한 로컬리즘은 숨죽였던 풀뿌리 주체가 새롭고 강력하게 순환 생태의 복원 주체로 부각되는 것을 뜻한다. 튼튼한 혈관(로컬 기반)과 건강한 새 피(신형 주체)가 뒷받침될 때 보물찾기(지역 자산 발굴)와 구슬 꿰기(혁신 모델 구축)를 축으로 하는 로컬리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유일하게 인구가 늘고 있는 경기도가 경기 모델이라는 것을 제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은 도시고, 지방은 로컬이다. 경기도는 도시와 로컬 양면을 모두 지닌 유일한 곳이다.


인구 위기 시대에는 경기도가 살아야 한국이 삽니다.
경기도 곳곳에서 도시와 지방의 상생을 위한 시범 사업이 수백 개씩 펼쳐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효과가 있는 것은 좀 더 키워보고, 실패하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경기도가 가는 길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던 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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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경기도가 도시와 지방의 이슈를 풀어주는 접점 역할을 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인구 위기 시대에는 경기도가 살아야 한국이 삽니다. 경기도 곳곳에서 도시와 지방의 상생을 위한 시범 사업이 수백 개씩 펼쳐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효과가 있는 것은 좀 더 키워보고, 실패하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경기도가 가는 길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던 길이에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선진국 뒤를 따라가기만 해도 되는 후발 주자의 이득을 누려왔습니다. 그런데 이젠 우리가 먼저 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오히려 선진국이 우리나라를 지켜보고 있어요. ‘너희가 실패하면 우리는 안 할 것이고, 너희가 성공하면 따라 할게’라는 생각인 거죠.”
전 교수는 시급히 경기 모델을 만들어 한국만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향후 세계적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주장했다. 경기도가 국제연합(UN)에서 “인류의 미래는 경기의 길이다”라고 선언하며 과감하게 다양한 로컬리즘을 시도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가장 드라마틱한 인구문제에 봉착한 대한민국을 주목하는 지금, 경기도가 해답을 달라는 주문이기도 했다.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인구 위기 해결사로 나서달라는 전 교수의 요청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경기도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전영수 인구통계와 세대 분석으로 사회 변화를 읽어내는 사회경제학자.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로서 혁신 인재를 양성하며 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고령화사회에 진입하는 데 따른 복지 환경 변화 및 대응 체계 마련으로, 한국 사회의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행복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인구 트렌드 2022-2027>, <이케아 세대, 그들의 역습이 시작됐다>, <한국이 소멸한다>, <은퇴 대국의 빈곤 보고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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