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도시의 빈약했던 상권을 문화예술의 거리로 탈바꿈시킨 여성. 상인회장과 미술협회 지회장을 겸하며 지역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는 배선한을 만난다.
낙농과 전공, 지렁이 양식 사업, 갈빗집 운영, 무료 음식 봉사, 상인회 창립, 군포 수리산가로수길, 한국미술협회, 예술의 힘으로 상권 활성화
군포, 수리산가로수길 상인회장, 지역사회, 도시 재생 프로젝트, 골목상권, 한국미술협회 군포지부장, 로드 갤러리, 찾아가는 미술관
1960년 경기도 안성시 칠장리에서 태어난 배선한은 어린 시절부터 다채로운 꿈을 품었다. 연세대학교 농업개발원 낙농과에서 공부하던 중, 교수님의 지렁이 연구를 접하게 되었다. 언니가 반지를 팔아 마련해준 25만 원으로 지렁이 양식을 시작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전국을 누비며 시장조사를 진행했다. 지렁이, 토룡 붐을 타며 1억 원의 수익을 달성했다. 부모님의 빚을 갚고 소도 사드릴 수 있었던 이 경험은 배선한의 삶에 전환점이 되었다.
“어렸을 때 꿈이 많잖아요. 화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더 다른 꿈이 많은데, 한때는 그냥 목장주가 되고 싶었어요. 기회가 돼가지고 그 학교(연세대 농업개발원)를 소개를 받게 됐어요. 교수님이 그 지렁이를 가지고 많이 연구를 하시더라고요. 시골에 있는데 부모님들 계신데 지렁이 좀 한번 키우면서 이걸로 어떤 특수 재배라든가 그런 걸 하면 어떨까요, 그랬어요. 그래서 교수님한테 지렁이를 한 25만 원어치인가를 샀어요. 그걸 키우다 보니까는 어느 날 지렁이, 토룡 붐이 있었어요. 그때 한 25살, 26살 됐을 거예요. 전국적으로 시장 조사를 다 했어요. 그래서 25만 원 갖고 해서 한 1억 (원)을 만들어 가지고 빚도 있고 뭐 하고 한 거 다 갚아드리고 소도 사드리고….”
배선한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군포에서 150평 규모의 갈빗집을 운영했다. 한 달에 두 번씩 지역 경로당 어르신들을 초대해 무료로 음식을 대접했다. 작은 경로당은 20~30명, 큰 경로당은 50명 정도의 어르신들이 방문했다. IMF 외환위기로 결국 가게 문을 닫아야 했지만, 어르신들의 감사 인사는 위안이 되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진정한 나눔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
“제가 음식점 할 때 그 어르신들을 바라보면 엄마, 아버지가 생각나는 거예요. 저 어르신들 밥 한 끼 한번 따뜻하게 따뜻하게 이렇게 대접하는 게 참 좋지 않을까. 그래서 그냥 계산 없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씩 경로당 어르신들 가게로 이렇게 오시라고 해서 맛있게 드시고 가고 그러면 너무 제가 좋았어요.”
“그렇게 하다가 IMF가 왔잖아요. 정말 정말 힘들어졌어요. 탈탈 털고 돌아서서 나왔는데 거리를 다닐 때 어르신들이 ‘배 사장 아니요?’, ‘너무 잘 먹고 고마웠어’, 그러면서 토닥토닥 해줄 때는 (어르신들 대접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죠.) 그 돈이 소중한 게 아니라 저분들의 그 마음을 내가 이렇게 받았구나….”
군포의 수리산 가로수길은 오래된 도시의 빈약한 상권이었다. 2021년, 배선한은 도의원과 주변 사람들의 제안으로 상인회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헌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배선한은 망설임 없이 그 역할을 맡았다. 배선한이 오랫동안 지역에서 쌓아온 신뢰 덕분에 상인들이 호응했다. 상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회원 수가 30명을 훌쩍 넘겼다. 이는 지역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다.
“도 의원님하고 여자분들 몇 분이 ‘여기 상인회를 한번 만들면 어떻겠느냐?’, 또 ‘누군가 좀 희생 좀 하고 그러면은 거리가 좀 나을 텐데’, 그러시더라고요. ‘그러면 한번 해보지’, ‘조그만 이 마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 마음으로 시작한 거죠.”
“그전에는 그냥 자기 일이 여기 있는 사업장들이 많으니까, 그냥 자기들 일에 충실하고 그랬는데, 상인회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이웃 간에 서로를 알게 되고 서로 챙겨주고 그런 점은 참 좋지 않았나 (싶어요.) 정말 명품의 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 제 마음이거든요.”
배선한은 2021년 군포 수리산 가로수길 상인회 창립회장을 맡았다. 31명으로 시작한 상인회는 지역 발전의 구심점이 되었다. 배선한은 상인회장이 될 무렵 한국미술협회 군포지부장도 맡게 되었다. 장사를 하면서도 배선한은 어릴 적 품었던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홍익대학원 서양화 최고위과정을 수료하고,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그리고 2022년 군포문화재단의 문화공간재생 콘텐츠 개발사업에 참여해 시민참여형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문화공간재생 콘텐츠 개발사업은 수리산 가로수길의 전환점이 되었다. 시민들의 가족사진을 예술 작품으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어르신들의 사진이 거리 작품으로 설치되자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나가던 어르신들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작품을 보며 먼지를 닦아주기도 했다. 시민들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시민과 예술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다.
“문화재단 사업이었거든요. 공모가 있어가지고 저희가 신청을 했더니 됐어요. 이 지역을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뭔가를 표현을 해주면 거리가 조금 변하지 않을까…. 시민들에게 가족사진을 받아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으로 표현하여 수리산 가로수길에 설치를 했어요. 어르신들이 지나가면서 ‘너무 고맙다’ 말하는데 그럴 때마다 참 힘이 나고, 마을에 변화가 서서히 오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해요. 이런 프로젝트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또 배선한은 미술협회 회원들과 함께 '찾아가는 미술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반월호수, 초막골, 군포역, 학교 등지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예술이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저변을 확대했다.
“여기는 군포문화예술회관 전시장 빼고는 거의 전시장이 없어요. 작가들이 ‘우리가 찾아가자’, 많은 시민들이 보면 얼마나 그래도 좋은 전시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해서 우리가 찾아가는 미술관(을 시작했어요.) 그쪽에 사는 시민들이 ‘이렇게 여기까지 와서 전시해 줘서 고맙다’(고 하죠.) 거기는 반월호수가 있는 덴데, 그쪽에 전시를 쭉 했어요. 그러니까 그 근처에서 이제 영업하시는 상인분들께서 ‘너무 좋다. 여기 좀 더 길게 해줘라’, 그리고 ‘매년 와서 좀 해줘라’ 그런 말씀해 주실 때 잘했구나 (생각해요).”
한국미술협회 군포지부장과 상인회장이라는 두 역할의 시너지가 지역에서 참신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2024년 배선한은 ‘그래도 그림이 좋아’ 프로젝트를 통해 장애인 작가들과의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7명의 장애인 작가와 7명의 미술협회 작가가 1대1로 매칭되어 공동 작품을 만드는 이 프로젝트는 장애인 작가들에게 새로운 기법과 재료를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 배선한은 “그 친구들(장애인 작가들)을 만나러 가는 게 너무 행복하다. 나름대로 색깔이 있다. 이 친구들의 재능을 끄집어내 주고 키워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전시장을 찾은 장애인 작가들과 가족들의 밝은 표정을 보며 배선한은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우리동네 행복길 예술가와 바람난 골목 프로젝트’ 등 다양한 문화예술 기획들이 가로수길과 군포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 덕분에 지역 상인들과 주민들, 장애인, 예술가들이 만나는 장이 열렸다.
“미술협회 일, 소상공인을 하다 보니까 서로한테 서로가 너무 필요한 거예요. 예술이 필요한 쪽은 같이 할 수 있으면 하자, 그리고 거의 또 낙후되고 오래된 도시들 그걸로 다시 살아나야 되지 않나. 그래서 제가 참 좋은 자리에 있구나, 필요한 자리에 있구나, 그거를 느끼죠.”
배선한의 삶의 여정은 실패와 도전이 교차하는 진정성 있는 성장의 기록이다. 20대에 시작한 지렁이 양식 사업의 성공, IMF로 인한 갈빗집 폐업, 평생의 꿈이었던 예술가의 길, 그리고 지역사회 봉사까지. 시민들의 일상적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소외된 이들에게 예술로 다가가는 그의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들에 핀 야생화처럼 살아갔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표현하는 배선한. 그의 걸음걸음은, 이웃과 지역사회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한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관심을 바탕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