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경기 여성은 신사임당으로 대표된다. 여성은 공적인 영역에 진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임당은 가정 내에서 아내와 어머니, 딸과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림과 글씨로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었다.
조선 후기 농업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상업과 수공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광주와 안성, 교하 등은 장시가 크게 발전한 지역이었으며, 정조는 수원 화성에 신도시를 조성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발전과 함께 경기도는 학문적으로도 크게 발전하여 기호학파 성리학과 실학 등의 연구가 활발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여성 학자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 후기의 찬란한 성과는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이 침략하면서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나라는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경기도에서는 국권 회복을 위한 의병과 애국계몽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수원, 남양, 광주, 양주, 고양 등 상업 도시나 행정중심지에 사립 여학교들이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