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에서 통합돌봄을 실천하며 이끄는 여성. 의료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김영림을 만난다.
교통사고, 요가, 봉사 활동, 안산의료사협 조합원, 의료사협 이사장,
발로뛰어봉사단, 사회적기업, 지역 일자리 창출, 지역사회 공헌
의료복지, 통합돌봄,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자원봉사, 지역사회,
건강, 나눔, 민주적 운영
교통사고의 상처가 한 여성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였다. 1990년대 후반, 심각한 사고 후유증으로 고통받던 김영림은 요가를 만났다. 요가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다.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안정되고 편안해졌다. 김영림은 이런 변화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1999년 요가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고 안산YWCA, 시흥시마사회문화센터, 반월동행정복지센터 등에서 요가를 가르치며 건강의 기쁨을 나누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에 그녀는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과 인연을 맺었다.
“안산에 온 지가 1990년도⋯. 오래됐어요. 결혼해서 집을 좀 알아보고 하다 보니까 안산까지 왔어요. 조합원이 된 것도 요가를 통해서 만나기는 했는데 지인분이 이제 ‘이런 활동을 한다, 좀 소모임 활동도 하고 요가 지도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저는 그때 이제 항상 모든 사람들이 정말 요가를 통해서 많이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기꺼이 와서 한번 내가 지도를 해보자 그래갖고 그때부터 이제 요가 지도를 했죠.”
김영림은 요가를 지도하는 봉사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독거노인들의 현실을 보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반찬 봉사부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 시작한 작은 봉사는 점차 확대되어 현재는 매주 80여 명의 어르신들에게 반찬을 전달하는 큰 활동으로 성장했다. '발로뛰어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체계화된 이 봉사 활동은 안산의료사협의 자랑이 되었다.
김영림은 “봉사는 받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함께 성장하게 만든다. 나 역시 봉사를 통해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더 큰 책임을 맡게 되었다.”고 말했다. 조합원에서 자원봉사자로, 대의원과 이사를 거쳐 2019년에는 이사장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쉼 없이 공부하며, 사회복지사 자격증, 케어코디네이터 과정, 안전대응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배움을 이끈 것은, 봉사와 조합원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익히려는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여기서 봉사부터 시작했거든요. 요가 지도도 하지만 어르신들 반찬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같이 참여를 하게 돼서 조합원에서 자원봉사 대의원으로, 또 자원봉사 이사로, 또 이사장까지 오게 됐는데 그 와중에 이제 ‘조합원들을 위해서 뭘 할까?’, ‘직원들을 위해서 뭘 할까?’ 하다 보니까 그런 공부도 좀 하게 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아파서 찾아오는 병원이 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예방과 돌봄의 파트너가 되고자 한다.” 김영림을 만난 안산의료사협 회의실에서 들은 첫 마디였다. 24년간 이어온 의료사협의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의료사협이 다른 의료기관과 가장 다른 점은 ‘통합돌봄’이다. “의료만으로는 안 되고, 돌봄만으로도 안 된다.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 김영림은 의료와 돌봄의 균형이 의료사협만의 고유한 미션이라고 강조한다.
“통합돌봄을 하게 되거든요. 의료만 있어도 안 되고 또 돌봄만 있어도 안 되잖아요. 의료사협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파서 찾아오는 병원이 아니고 조합원들이 스스로 자기 건강도 챙기고 서로 건강을 돌보는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예방 활동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산악회, 합창단, 라인댄스 등 19개의 소모임을 통해 조합원들이 자연스럽게 건강을 관리하도록 돕는다. 의료사협은 찾아가는 의료 서비스도 제공한다. 재택의료와 가정간호를 통해 병원에 오기 힘든 이웃들을 직접 찾아간다. 김영림은 ‘이윤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지속가능한 의료 모델을 만드는 것’이 의료사협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한다.
“우리는 정부나 민간 의료기관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의료사협의 존재 이유입니다.”
김영림은 안산의료사협이 누구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8,000여 세대의 조합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정신은 조합원이 소비자에 그치지 않고 활동가, 노동자가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김영림은 ‘3원칙’ 속에 그런 정신이 집약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직원이 굉장히 많습니다. 노인 일자리하고 또 장애인활동지원사 선생님들이 많으세요. 한 300여 분 정도 계시고 또 재가 서비스하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도 계시고. 전체로 따지면 거의 700여 명. 조합원으로서 그냥 일반 활동들을 하고 봉사 활동을 하다가 직원이 되기도 하고, 소모임 활동하다가 직원으로 일을 하시는 분들도 많고.”
“‘3원칙’이라고 해서 조합원들이 출자를 하고 이용을 하고 운영을 하는 원칙으로 가거든요. 출자금을 통해서 건물이나 아니면 의료기기를 사고, 이제 그 출자를 통해서 만든 시설을 다시 또 이용하는 거죠. 그리고 세 번째는 조합원들이 직접 운영을 하는 거예요. 임원들을 뽑고, 그다음에 총회를 통해서 어떤 사업을 할 건지 그런 결정을 짓는. 그래서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죠.”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경영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조합원이 모이고, 더 큰 신뢰를 얻는다. 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오히려 의료사협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저희가 1호예요.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제 이익이 나면 다시 또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하는 그런 사업들을 하고 있거든요. 지금 지역에서 한 700개 정도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그것만으로도 큰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안산의료사협의 힘은 ‘사람’이다. 김영미에게 조합의 성과는 ‘돈’이 아니라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성장하는 것에 있다. 그래서 의료사협 ‘발로뛰어봉사단’의 가치는 특별하다. 연말이면 '발로뛰어봉사단'은 더 바빠진다. 300~400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여 김장 담그기에 나선다. 정성스레 담근 김장김치는 400여 가구에 전달된다. 그는 “의료사협이 운영되는 데 자원봉사가 없다면 아마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림의 이 말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봉사자들의 헌신은 조합 운영의 핵심 동력이 된다.
“저희가 2012년도인가? 그때부터 이제 ‘발로뛰어봉사단’이라고 ‘볼룬티어[Volunteer]’를 ‘발로 뛰어’로⋯ 이름을 잘 지었어요. 처음에는 재가 서비스를 하고 있는 팀에서 어르신들 방문을 해보니까 반찬을 좀 만들어서 갖다 드리면 어르신들이 좀 식사를 제대로 하시고 건강이 좋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자발적으로 돈을 좀 모으고 또 요리도 하고 그러던 게 지금은 이제 한 80여 분 정도를 저희가 반찬을 만들어서 일주일에 한 번 지속적으로 하고 있거든요. 각종 행사나 이런 걸 할 때 다 (자원봉사자들이) 지원해서 해주시기 때문에 아마 의료사협이 운영되는 거에 있어서 굉장히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김영림은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벗고 ‘조합원 김영림’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왜냐하면 ‘조합원’이 그의 활동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김영림에게 조합원은 단순히 서비스를 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봉사와 참여를 통해 성장하고 더 큰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동적 주체다.
“제가 이사장 역할을 하지만 저도 조합원이거든요. 이사장 역할을 내려놓으면 다시 조합원으로 갈 것이고. (임원들이) 조합원들을 위해서 조합을 제대로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조합원들은 끝까지 우리를 믿고 따라줄 거다’. 그래서 저희가 어떤 위기나 어떤 힘든 상황이 있을 때마다 저는 ‘조합원들을 믿는다’, 그 힘으로 아마 이렇게 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 내가 이걸 왜 했을까.’ 그런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었어요.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생각도 많이 들고. 근데 지금은 ‘잘했다’ 말하고 싶어요. 조금 힘들었지만 함께 나누고 일할 수 있는 이런 곳이 제게 역할을 주신 것 자체가 굉장히 또 보람도 되고 기쁜 일이 아닐까.”
김영림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특별한 계획은 없다. 다만 항상 ‘내가 뭘 하고 싶은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려 한다. 그저 열심히 나답게 살면 될 것 같다. 내가 어떻게 기억되느냐는 기억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 바람을 전했다.
“어쨌든 우리가 세상에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같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주위에 많이 관심도 갖고 서로 함께 돌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