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맛 그대로 동두천 부대찌개의 전설,
호수식당

부대찌개는 한식일까? 이 질문에 사람들 대부분 우물쭈물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부대찌개는 한식이다.
동두천에서 부대찌개 본연의 맛을 이어가는 노포를 찾았다.

글. 박찬일 사진. 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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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꿀꿀이죽? 부대찌개의 기원 아마도 부대찌개처럼 흥미롭고 의견이 분분한 음식도 드물 듯하다. 부대찌개는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을 뜻하는 밀키트 판매 최상위권에 올랐다. 거리의 전문점에서도 불티나게 팔린다. 최근에는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들의 유튜브 채널에도 많이 소개된다. 부대찌개를 먹기 위해 한국에 온다는 외국인 여행자도 있다.
소설가 황석영은 이 음식의 기원을 말하면서 월남전을 거론했다. 당시 파월 한국군은 미군의 식단을 공유했는데, 기름진 미군 음식도 하루이틀이지 느끼해서 인기가 급락했다. 그러자 지급받은 고기, 소시지, 햄에 한국에서 보내온 김치 통조림, 마늘, 파를 넣고 푹 끓였더니 맛난 찌개가 되더라는 것이다. 어차피 부대찌개의 시초는 오리무중이니 나름 일리 있는 해석이다.
부대찌개의 역사를 논할 때 이른바 ‘꿀꿀이죽’부터 찾는 사람도 있다. 회현동 남대문시장 일대에 그런 노천 가게가 있었다. 천막 치고 솥 걸고 미군 부대에서 나온 ‘짬’(잔반)을 끓여 한 그릇에 5원, 10원에 팔았던 것이다. 피란지 부산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꿀꿀이죽과 부대찌개는 형제다. 이 음식의 맛을 찾아 동두천으로 갔다. 부대찌개는 평택, 오산, 의정부, 파주, 용산, 이태원 등지에서 많이 먹었다. 미군이 많았던 인천에도 전문점이 있었다. 동두천은 그중 휴전선이 가까운 최북단에 속한다. 의정부에서도 전철이 20~30분 간격으로 다닐 뿐이다. 보산역에 내리니 미2사단이 있다. 주둔 재조정 정책으로 미군은 대부분 평택으로 떠나 거리는 한산하다.
“주말이면 외출 나온 미군으로 동네가 북적북적했죠. 하지만 이젠 동두천부터 의정부까지 있던 많은 미군 부대가 이전해서 조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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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떠난 자리, 미식 여행자들이 채우다 이 한산한 과거의 군사도시를 채우는 건 뜻밖에도 미식 관광객이다. 관광객들은 미군 부대의 영향을 받은 옛 경양식집, 바비큐집 그리고 부대찌개집을 찾는다. 호수식당은 부대찌개 원조다. 어머니가 시작해서 딸(이숙희 대표)로 이어졌다. 이미 40년이 넘었다.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군속(민간인으로 미군 부대서 일하는 사람)들이 재료를 댔어요. 햄과 소시지, 고기 같은 걸 갖고 나오면 우리가 사는 거죠. 군 부대 재료이니 다 면세였고, 알음알음 거래되는 거라 값도 쌌어요. 어머니가 그걸 김치 넣고 끓여 팔았어요.”
사실 옛날엔 정상적인 유통망이 없었다. 시중에 비슷한 물건도 없거니와 값도 비싸고 맛이 달라 쓸 수도 없었다. 결국 ‘뒤로’ 나오는 암시장 물건이 재료였다. 미군 부대 주방에서 일하는 한국인 군속들이 적당히 쓰고 남은 걸 가지고 나오기도 했고, 미군 동거인들이 미군 마트에서 사온 걸 받기도 했다. 그 길이 막히면 시장의 미군 물건 장수한테 샀다.
“먹다 남은 재료를 썼다는 건 일종의 전설이죠. 저희 가게가 생긴 1980년부터는 비록 정상 유통은 아니었어도 멀쩡한 식재료로 찌개를 끓였어요.”
이렇듯 미군 재료와 한국식 양념이 합쳐져 탄생한 부대찌개는 이제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변화하는 시대의 입맛을 대표하는 한식의 일부가 됐다고나 할까.
“우리 집엔 미군이나 미 군속도 꽤 왔어요. 이젠 부대 이전으로 뜸해졌지만요. 이 동네 살다가 타지로 떠난 이가 많은데, 몇십 년 만에 와서 우리 식당을 찾곤 해요. 그들에겐 고향의 음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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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는 이른바 지역적 차이가 있다. 평택·오산·송탄의 경기 남부식, 서울·용산식, 파주·문산의 경기 서북부식, 의정부·동탄의 경기 동북부식 등으로 나뉜다. 통조림 콩과 치즈, 진한 육수의 사용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의정부는 개운한 멸치 육수를 쓰는 집이 많고, 파주식은 대파와 고춧가루를 써서 시원함을 강조하며, 평택 등의 경기 남부식과 서울식은 치즈가 올라가는 경우가 흔하다. 재료 본연의 맛 살린 감칠맛 강한 국물이 매혹적 동두천을 대표하는 호수식당은 따로 육수를 넣지 않고 재료에서 국물이 우러나도록 요리한다. 가장 옛날식 맛을 낸다고 할 수 있다. 요새 부대찌개집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볼로냐 소시지, 지미 딘 소시지 등 열 가지 가까운 육가공 재료를 넣는다.
“요즘 손님들은 특유의 향이 나는 미군식 소시지, 햄을 안 좋아해요. 옛날식이라고 해서 따로 주문해야 과거 방식대로 요리해서 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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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식을 주문하자 정말 특이한 향이 난다. 미국의 육가공품은 이민자들이 각자 자기 출신 국가의 방식을 현지화한 것이다. 이탈리아, 영국, 독일, 아일랜드 등 여러 방식이 적당히 뒤섞여 존재한다. 이런 미국의 햄과 소시지가 한데 어우러진 것이 바로 호수식당 부대찌개다. 특이한 향이 나는 이유는 유럽 육가공에는 각종 허브를 넣는데, 그 방식이 미국 이민자들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유럽식 미국 육가공품이 미군을 통해 동두천의 한식당에서 김치와 함께 냄비에서 끓고 있다는 얘기다. 호수식당에서 이런 맛을 보려면 미리 옛날 식으로 해달라고 주문해야 한다.
바글바글 찌개가 끓는다. 고기의 지방이 녹아 진하고도 감칠 맛 강한 국물 맛이 완성된다. 한 숟갈 뜨니, ‘사람이 만들어낸 가장 유혹적인 맛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고기와 절인 음식에 한국의 맛난 김치가 더해졌으니 이것이야말로 퓨전의 왕이다. 참고로 호수식당에선 ‘부대볶음’이란 요리도 먹어봐야 한다. 이 집이 원조다. 부대찌개에 들어가는 재료를 양파와 함께 볶아 먹는다. 국물이 없으니 농축된 맛이 강해 젊은 세대나 술 손님이 안주로 많이 찾는다.
우리 현대사가 만들어낸 음식, 부대찌개. 호수식당의 부대찌개 맛은 서울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우리 현대사를 떠올리게 할 만큼 여운이 깊었다.

박찬일 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쓰며 사회·문화적으로 노포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는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이 있고 <수요 미식회> 등 주요 방송에 출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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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호수식당 주소 경기도 동두천시 중앙로 312
문의 031-865-3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