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환경경제학자
홍종호 서울대학교 교수
탈탄소 시대
지역 경제 성장에 꼭 필요한 정책

지구촌은 요즘 빈번해진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위험도 점점
커지고 있다. 기후 위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기후·환경경제학자 홍종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기후 위기를 새로운 경제성장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글. 이선민 사진. 전재호
고도원

고속 성장을 해온 우리나라 산업계나 학계는 오랫동안 환경과 경제는 함께 성장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기후 위기 시대, 글로벌 기업들이 경제와 환경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며 RE100에 앞장서고 있다. 경제와 환경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계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전 세계 화두인 ESG를 선도하는 것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소비자와 투자자입니다. 기업의 가장 큰 이해관계자인 소비자와 투자자가 환경을 중시하는 기업의 제품을 선호하거든요. 그래서 글로벌 기업은 환경문제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홍종호 교수는 우리나라 환경경제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환경경제학이라는 말이 없던 1980년대부터 환경과 기후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그런 홍 교수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탈탄소 수준이 매우 낮은 것은 안타깝기만 하다.
“OECD 38개국의 전력 공급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평균 33%입니다. 그런데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5%밖에 되지 않습니다. 인식이나 정책, 실적도 꼴찌예요. 탄소 배출이 많다는 중국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30%대입니다. 독일은 올 상반기에 52%를 찍었고, 덴마크는 88%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막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만큼 뒤처지지 않기 위해 기후 위기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것만이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홍 교수는 기후 문제가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주체임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위기를 해결하는 첫걸음이라고 주장했다. 뜨거워진 지구는 우리의 먹고사는 일상생활부터 기업의 경영전략에 이르기까지 각국의 경제활동 전반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 지난 3년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역시 지구 온도 상승이 야생동물의 생존율을 높여 초래한 인류의 위기 중 하나였다. 이 글로벌 감염병은 관광업과 요식업, 항공업과 물류업을 마비시키며 일자리를 빼앗았고 경제활동 사슬을 교란했다. 이 때문에 2023년 현재 전 세계가 경기 불황과 높은 인플레이션에 신음하고 있다. ‘기후 위기’가 ‘질병 위기’로, 다시 ‘경제 위기’로 이어지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EU 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45%까지 높일 계획이며,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 위기 대응을 사회경제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습니다. 탈탄소 국가로의 전환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반드시 해야 하고, 또 생존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입니다.”



재생에너지가 지역 균형 발전의 원동력 홍 교수는 탈탄소 시대에 탄소를 계속 배출하는 식으로 경제활동을 하면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지자체와 국가, 기업, 국민 모두가 깨닫고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한 기상 현상으로 폭우가 쏟아지면서 작년에는 신림동 반지하 주택 침수, 포항 지하 주차장 침수, 올해 들어 오송 지하 차도 침수 등이 연달아 발생해 인명 피해가 극심합니다. 이런 비극적인 참사는 매우 후진적인 기후 피해입니다. 국민에게 기후 위기에 대한 홍보를 하고 폭우가 쏟아져도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기 경보 체계와 차수벽을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런 부분을 잘 준비하면 다른 나라는 태풍이나 가뭄 때문에 큰 피해를 봐도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나라의 힘이 더 강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기후 위기 시대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 교수는 경기도의 RE100 정책처럼 지자체별로 재생에너지 경쟁을 벌이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재생 에너지가 지역 균형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기도, 울산, 경상북도, 전라남도 등에서 태양광·풍력·해상풍력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가 아니면 수출도 못 하는 환경에서 기업은 당연히 재생에너지를 잘 공급해주는 지역을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경기도가 재생에너지를 잘 공급해준다면 기업들이 서로 공장을 짓겠다고 나설 것입니다. 그러면 경기도가 탈탄소 시대의 승자가 되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인구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인구 감소로 고민하는 지역에서 재생에너지로 승부한다면 자연스럽게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죠.”
홍 교수는 경기도가 산업단지 지붕이나 농촌 지역에 태양광발전 시설을 조성하는 등 RE100 정책을 펼치는 것에 대해 정말 지금 필요한 정책으로 매우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경기도는 최근 산업단지의 지붕과 유휴부지에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시설 설치를 의무화해 전기를 생산하는 ‘경기 RE100’ 1호 산업단지를 화성시에 조성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평택 산업단지의 지붕에서 생산하는 태양에너지를 삼성전자가 향후 20년간 구매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홍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우리 민족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이 필요한 순간이라며,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탈탄소 경제성장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생에너지를 늘린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연을 살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자연 파괴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바다 수온이 높아져 바닷속 생물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습다. 우리나라의 바다 농사인 굴·전복 양식이 실패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우리나라 수산업은 큰 위기에 봉착하는 거죠. 이렇듯 기후변화와 경제는 밀접한 관계입니다.”



이제 막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우리나라가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기후 위기 대응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그것만이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고 생존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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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더라도 미래 세대를 위해 탈탄소 정책 가속화 필요 또 홍 교수는 전기 요금을 정상화해 국민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산업계나 가정의 전기 요금이 전 세계적으로 너무 싸다는 것이다. 싸다 보니 아껴 쓰지 않게 되고, 그러면 또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유럽의 경우 2022년 에너지 공급 위기가 극심했을 때 자국 전기 요금을 최대 10배까지 올린 적도 있다.
“영국의 전기 요금은 작년 10월 기준으로 우리나라보다 6.8배 높습니다. 그 전에는 2~3배 정도였거든요. 유럽의 전기 요금은 원가 상승분을 반영하고 세금도 많이 붙는 구조입니다. 대신 정부 재정으로 어려운 분들의 전기 요금을 보조해주는 거예요. 부자들은 요금이 비싸도 낼 여력이 있잖아요. 대신 에너지 복지에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더 촘촘하게 바우처를 지급하면 됩니다. 전기 요금은 정상화하되, 어려운 분들을 위해 충분한 지원을 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 방향입니다. ”
홍 교수는 전 세계가 에너지 공급 위기를 피부로 느끼며 더욱 가열차게 탈탄소 정책을 펼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전기 요금을 현실화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기 요금이 싸기 때문에 기업들도 에너지 효율을 위한 기술 투자에 대한 관심이 낮고, 재편되는 국제 질서에 뒤처지게 된다.”고 말했다.
전 세계가 RE100으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2030년 이전 한국 기업은 해외로 나가고, 해외 기업은 우리나라에 투자하지 않는 상황이 올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덧붙였다.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못살던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기적의 역사를 써 내려온 나라답게 다시 한번 저력을 발휘하자는 홍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경기도는 최근 산업단지 RE100 사업을 통해 평택 산업단지 지붕에서 생산하는 태양에너지를
삼성전자가 향후 20년간 구매하기로 협약을 맺은 바 있다.

홍종호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시간 주립대학교와 코넬 대학교에서 환경경제학과 재정학을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과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기후·환경·에너지경제학과 지속가능발전 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원장,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및 지속가능발전연구소 소장, 한국환경경제학회 회장, 아시아환경·자원경제학회(AAERE) 회장,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했으며, 서울대 ESG위원회 위원, 사단법인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 등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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