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시흥시의 성장과 번영을
함께한 원도심의
새로운 100년 이야기
소래산 첫마을

2024. 08

소래산에 기대어 형성된 신천동, 대야동은 원도심의 성장과
쇠퇴를 모두 경험한 시흥시의 상징적 지역이다.
100년 역사를 뒤로하고 ‘소래산 첫마을 새로운 100년 도시재생뉴딜사업’으로
미래 100년을 준비하고 있는 소래산 첫마을을 소개한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시흥시청 향토사료실
소래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신천동과 대야동. 한가운데에 소래초등학교가 있다.
“‘소래’ 하면 소래포구를 떠올리는데, 실은 시흥시 신천동과 대야동 일대를 말합니다. 시흥이 시로 승격되기 전 소래읍의 이름을 따서 관공서나 학교, 시설 이름을 지었는데, 소래포구도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시흥시의 경계를 이루는 뱀내천(신천)의 하구라 그렇게 불렀지요.”
신천동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상욱 소래산 첫마을 주민협의회 회장은 “신천동과 대야동은 시흥시청이 최초로 자리 잡은 곳이자 1920년에 개교한 소래초등학교가 아직까지도 건재한 동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소래산 첫마을로 불리는 신천동과 대야동은 조선 시대 이전부터 형성된 자연 부락으로, 1948년 소래면사무소가 개소하면서 행정 타운이 됐다. 당시는 부천군에 속했는데, 1973년 부천이 시로 승격하고 시흥군이던 안양이 시로 승격하면서 시흥군에 편입되었다. 이후 1989년 1월 시흥시가 출범하면서 시흥시청과 유관 단체들이 생겨나 시흥시의 행정·경제 중심지로 발전했다.
“원래 이곳에는 ‘뱀내장’이라는 굉장히 큰 우시장이 있었어요. 1936년부터 전기가 들어올 정도 번성했지요. 소래산은 어른들 놀이터, 뱀내천은 아이들 놀이터였죠. 여름이면 멱 감고 고기 잡느라 하루해가 짧았습니다. 매달 1일, 6일 우시장이 열릴 때면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온갖 장사꾼은 물론 가설 극장까지 세워졌지요. 천막 사이로 들어가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답니다.”
신천동에서 50년 가까이 금은방을 운영하고 있는 전영준 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 지부장은 “1970년대에는 국제상사, 광덕물산, 대우통신, 삼진전자 등 내로라하는 기업의 공장들이 들어와 점점 도시로 변했어요”라며 “여공과 사귀어보려고 때 빼고 광내고 시내를 누비는 총각이 많았는데, 나도 그렇게 아내를 만났습니다”라고 회상했다.
한국전쟁 후 폭격으로 무너진 학교 건물을 대신해 움막을 지어 수업하는 소래초등학교
뱀내장은 북쪽의 부천 상권과 연계해 시흥 상업 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소래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들어선 시흥시 학교 복합 시설 소래너나들이.
지역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마을의 랜드마크다.
실향민과 철거민의 아픔을 보듬은 마을
시흥의 행정·경제 중심지였던 신천동과 대야동은 삶의 터전을 잃고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을 끌어안은 동네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후 정부의 이주 정책에 따라 황해도 연백군과 옹진군에서 온 피란민들이 소래산 자락 허허벌판에 대거 정착한 것이다. 늘 집을 짓고 있는 현장이라 해서 현장마을이라 불렀고, 나중에 온 피란민은 중간마을과 계란마을에 정착했다.
1977년에는 서울시 도시 개발에서 밀려난 양평동 주민 170세대가 이곳으로 이주해 복음자리마을을 만들었다. 빈민 운동가였던 제정구 국회의원과 예수회 소속 정일우 신부는 강제 철거가 시작되자 독일 미제레오르 선교회에서 보내온 10만 달러로 신천리에 있던 복숭아와 포도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빈민 공동체인 복음자리마을을 건설했다.
비록 9평, 12평, 15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집 없는 설움에서 벗어난 주민들은 공동체의 자립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를 결성하고 지역의 특산물인 딸기, 복숭아, 포도로 잼을 만들어 팔았다. 과일 잼으로 유명한 ‘복음자리’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은 휴먼시아아파트가 들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복음자리마을은 강제 철거되거나 철거가 예정된 마을 주민에게는 희망의 본보기가 되었고, 시흥시는 한국 사회운동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떠올랐다. 시민운동, 민중운동, 지역 풀뿌리 운동으로 다양하게 변화된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는 여전히 시흥 지역공동체의 나눔 문화, 경제 활성화와 연대를 위해 다양한 사업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새로운 100년을 꿈꾸는 소래산 첫마을
시흥의 번영·성장과 함께했지만 1997년 시흥시청이 장현동으로 이주한 뒤 우시장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공장들이 사라지면서 상권이 침체되기 시작한 신천동과 대야동은 주택마저 노후화가 가속되면서 쇠락한 원도심이 되었다. 이에 주민들은 더 나은 마을, 더 살기 좋은 마을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주민협의회와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중심이 되어 현대화와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전선 지중화와 가로 경관 개선 사업 등으로 동네 경관을 개선하고, 소래초등학교와 함께 공동체 문화 거점인 시흥시 학교 복합 시설 ‘소래너나들이’를 지었다. 시흥시 1호 극장이었던 시흥극장을 리모델링해 만든 솔내아트센터, 소래산을 오가는 사람들을 위한 소래산족욕장, 호현로 동네 상권 활성화 프로그램 등 다양한 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성욱 회장은 “소래산 첫마을 도시 재생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협력, 시의 강력한 의지와 지원이 성공의 핵심 요소”라며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도시 재생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소래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주거, 문화, 행정, 경제,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소래산 첫마을. 지역의 문화·역사 자원을 활용해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주민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도시 재생의 원칙이라면 소래산 첫마을의 새로운 100년은 첫발을 제대로 떼고 있다. 100년을 함께해온 학교가 마을의 거점이 되어 학부모, 동문회, 지역 주민, 학교, 시흥시가 함께 마음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소래산 첫마을로 놀러 오세요
이상욱(소래산 첫마을 주민협의회 회장)
더숲 소전미술관
김용산 극동건설 회장이 평생 모은 도자기와 서양화, 동양화, 조각 등을 전시하고 있는 갤러리 겸 카페다. 한쪽 벽면에는 책장을 설치해 도서관 분위기를 조성했다.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촬영지이기도 하다.
주소 경기도 시흥시 소래산길 41
문의 031-313-1211
솔내아트센터
1990년대 중반까지 매년 3만~4만 명의 관객이 찾고 시흥시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던 시흥극장이 소래산 첫마을 문화 거점으로 탄생했다. 매주 무료 영화 상영은 물론 지역 예술가들을 위한 공연장이나 전시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주소 경기도 시흥시 호현로 42-8 3·4층
문의 031-362-6708
소래너나들이
소래초등학교에 건립된 학교 복합 시설로 공영 주차장, 도서관, 공연장, 조리실, 문화교실 등이 있어 대야동·신천동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거듭나고 있다. 성공적 도시 재생 사례로 손꼽힌다.
주소 경기도 시흥시 호현로27번길 14
문의 031-435-9505
시보당
1980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한자리를 지키며 신천동의 역사를 함께한 노포 금은방. 공장이 많던 시절에는 명절 귀경 선물로 시계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매장 안에 크고 작은 시계가 가득하다.
주소 경기도 시흥시 호현로 28
문의 031-313-9184
옥천영양돌솥밥
영양돌솥밥, 곤드레돌솥밥으로 유명한 현지인 맛집이다. 두꺼운 돌솥에 지은 고슬고슬한 밥은 물론이고 직접 농사지은 푸성귀로 만든 반찬이 집밥처럼 맛깔스럽다. 반찬으로 나오는 장떡도 인기 만점.
주소 경기도 시흥시 호현로34번길 9-1
문의 031-311-6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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