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老鋪)란 대대로 내려오는 오래된 가게를 뜻한다.
요새 인기 있는 말로, 꼭 식당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물포, 떡집, 이발소, 금은방 등 생활 가까이 있는 많은 가게가 오래되면 노포에 해당한다.
다방이나 카페도 있다. ‘왈츠와 닥터만’이 그중 한 곳이다.
커피 박사의 카페 겸 박물관
필자의 노포 리스트는 대개 식당이 차지한다. 내가 요리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양주시 한강 변에 노포 카페가 있다고 들었다.
‘왈츠와 닥터만’, 이름부터 특이했다. 궁금했다. 1989년 부터니까 역사가 좀 있다.
한국의 다방과 카페 역사는 구한말 이후에 시작됐다. 소설가 이상이 ‘제비’라는 다방을 운영한 건 1930년대다. 다방과 달리
간단한 스낵을 같이 팔기도 하고, 나중에는 술을 팔던 곳을 카페라고 했다. 한국의 카페는 현대에 와서 다시 커피 중심으로 바뀌었다.
“아버지가 이곳을 열고, 커피 박물관을 운영하기 시작하셨어요. 평생 수집한 커피와 다방 역사를 모아놓은 곳이죠.”
경기도 남양주시의 너른 대지에 들어선 왈츠와 닥터만 박물관에서는 한강이 바로 내려다보인다. 야무지고 착한 인상의 아들 박정우(38) 대표가 설명한다.
이곳은 커피 박물관과 커피숍, 즉 카페를 겸한다. 꼼꼼히 보니, 아주 신경 써서 지었다. 좋은 자재, 뛰어난 설계. 오래돼서 빛이 나려면
역시 잘 지어야 한다. 아, 그런데 왜 카페 이름이 ‘왈츠와 닥터만’일까?
“아버지가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셨어요. 1980년대에 일본 출장을 갔다가 ‘왈츠’라는 커피 회사를 알게 되었다고 해요.
나이 지긋한 커피 공장장이 커피를 볶으며 ‘아직도 커피는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으셨답니다. ‘커피의 세계가 그리도 깊은 거야?’ 그런 놀라움이었겠지요.”
왈츠라는 브랜드를 한국에 가지고 왔다. 아마 기억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서울에만 70개가 넘는 프랜차이즈가 생겼으니까. 우리가
기억하는 커피 중흥기랄까. 다방에서 ‘카페’로 가는 기점이던 시기에 ‘난다랑’, ‘자댕’ 같은 브랜드가 인기를 끌던 때였다.
다방은 오랜 왕자 자리를 카페에 내주었다.
박 대표의 아버지 박종만(64) 선생은 커피를 공부하다가 기어이 원예학
박사 학위를 땄다. 놀랍게도 ‘왜 우리나라에서는 커피가 나오지 않는 거야?’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공부였다.
그는 특히 하우스가 아닌 노지 재배 커피에 관심을 가졌다.
한국의 기후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지금도 그는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제 상호가 이해된다. ‘왈츠’는 커피 세계에 입문하게 된 회사 이름에서 따왔고,
‘닥터만’은 커피 박사 박종만의 이름에서 따와 지은 것이다. 닥터만은 독일어인 줄 알았다.
피천득, 박완서가 사랑한 커피
카페도 카페지만 명물 커피 박물관을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개
인이 여는 박물관은 사실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우선 수집품의
질과 양에서 공공 박물관에 비교가 안 된다. 운영도 문제다. 전
시실의 디자인, 동선 설계도 대체로 전문적이지 않다. 한데 왈
츠와 닥터만 커피 박물관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박물관
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사재를 쏟아부어 지은 표가 난다. 오
래되고 진귀한 온갖 커피 기계와 역사 물, 골동품급 커피잔이 가
득하다. 제일 흥미로운 건 한국 커피 역사(보통 고종 황제와 그
에게 커피를 공급했다는 손탁이라는 외국인 이야기부터 시작
되는)의 거의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옛 신문 자료와 사진으
로 완성한 전시실 구성이다.
“고종 황제 이전에, 그러니까 드셨다는 기록보다 12년 전에 인
천 해관(세관 )에 커피가 수입된 기록을 아버지가 확인하셨어요.
또 한국에 온 선교사와 천문학자가 커피를 마셨다는 영어 일기
책을 아버지가 보셨지요. 한국 커피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여기 박물관에 들어간 비용이요? 글쎄
요. 아버지 전 재산이 거의 들어갔 을 거예요.”
전문 큐레이터가 기획한 느낌까지 난다.
“100년을 유지하는 게 우리 목표입니다.”
이 카페는 노포답게 옛 명사가 많이 다녀갔다. 수필가 피천득,
소설가 박완서 등이 특히 좋아했다고. 박완서는 늘 책을 읽거
나 북한강을 바라보곤 했는데, 즐겨 드셨던 메뉴는 커피와 크
림수프.
“저희는 식당도 겸합니다. 이곳은 유동 인구가 없는 곳이어서
음식도 팔아야 운영할 수 있어요. 가격도 비쌉니다. 하지만 가
구와 서비스, 음식의 품질을 최상으로 하고 있어요.”
정말 테이블 하나, 커피잔 하나하나가 다 훌륭하다. 이들 부
자가 애를 쓴 건 ‘품질은 사람에서 온다’는 믿음이다. 최돈이
초대 지배인은 2000년까지 근무했는데, 주한 미군 장교클럽
과 노르웨이 호화 유람선에서 일했던 전문 웨이터다. 그가 은
퇴하고 부임한 이가 현재도 일하고 있는 노효식 지배인이다.
왜 그런 의문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외국에 가면 나이 지긋
한 웨이터, 웨이트리스가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
지 하는. 그런 사람은 여기 와서 우리나라에도 노웨이터가 있
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게 된다. 노효식 지배인도 현재는 주말
중심으로 일하고 3대 지배인에게 자리를 넘겼다. 노효식 지배
인은 1969년부터 서비스직에 몸담기 시작해 신라호텔에서 정
년을 맞은 후 박종만 1대 대표가 영입, 이 카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많은 손님이 이 멋진 지배인을 카페 주인으로 착각한
다고.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역시 럭셔리한 잔에 담겨 나온다. 드립 커피도 물론 된다. 향이 그윽한 고급 원두다. 깊이 빠져든다. 커피의 매력이 이런 것이구나. 창밖으로 북한강이 흐른다. 카페와 레스토랑, 박물관 운영 정보는 홈페이지 등 S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커피 박물관은 월요일과 화요일엔 휴관하며, 입장료가 별도로 있다.
박찬일
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쓰며 사회·문화적으로 노포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는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이 있고 <수요 미식회> 등 주요 방송에 출연해왔다.
왈츠와 닥터만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북한강로
856-37
문의 031-576-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