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놀이 즐기던 유원지에서 예술 공원으로 변신한 이야기 안양 석수동
안양유원지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국민 유원지로 불릴 만큼 산수가 수려했다.
한때는 한국 영화의 산실이었다가 지금은 국내외 유명 미술가의
작품이 즐비한 거대한 갤러리 마을이 되었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경기문화재단
삼성산의 등고선을 모티브로 한 안양전망대
삼성산의 울창한 숲이 청량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안양예술공원 무장애 숲길은 예술 작품을 따라 걷는 숲길로 유명하다. 걷는 내내 유명 작가의 미술 작품이 설치되어 있어 예술적 감성까지 충족시키는 곳이다. 그 숲길에서 독일의 유명한 설치미술가 볼프강 빈터와 베르톨트 회르벨트를 만났다. 두 작가는 지난 2005년에 시작한 안양 공공 예술 프로젝트(APAP)에 ‘안양상자집–사라진(탑)에 대한 헌정’을 설치하면서 안양과 인연을 맺었다. 안양예술공원의 대표 작품으로 사랑받은 ‘안양상자집–사라진(탑)에 대한 헌정’은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손상된 부분이 많고 주변 환경도 변해 보강이 필요했다.
볼프강 빈터는 “음료수 상자를 재활용한 작품으로 관람객에게 영적 에너지를 전달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며 “안양예술공원처럼 숲과 예술이 공존하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다”고 덧붙였다.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 숲과 계곡에 조성된 안양예술공원은 산수가 좋아 예로부터 명승지로 불리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안양역장 혼다 사고로가 천연 풀장을 만들어 ‘안양 풀’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는데, 서울 근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휴양지였다고. 광복 후에는 안양유원지로 이름을 바꾸면서 대형 풀장이 들어서고 온갖 위락 시설이 갖춰지면서 국민 관광지가 되었다. 안양유원지는 1970년대까지 명성이 자자해 한 해 평균 100만 명이 찾아와 성수기에는 유원지 입구에 임시 역이 생길 정도였다. 매시간 정차했는데, 1967년 당시 기차표가 왕복 40원이었다.
1970년대까지 서울 근교에서 가장 인기 있던 안양유원지
한국 영화 산업을 이끈 안양촬영소
한국 영화 산업을 이끈 문화 예술 도시
안양유원지를 품고 있는 동네는 석수동(石水洞). 맑은 물이 흐른다는 뜻으로 자연과 역사,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작은 동네지만 통일신라시대 화강석제 당간지주, 중초사지 당간지주,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마애종(암벽에 새겨진 종), 거북이 모양 비석 받침인 안양사 귀부, 정조 시대에 축조한 무지개 돌다리인 만안교 등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삼막사와 안양사 등 천년 고찰도 두 곳이나 있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예술 도시로도 이름이 높았다. 1954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종합 촬영 시설인 안양촬영소가 설립되어 우리나라 영화 산업을 이끌었다. 1966년 신상옥 감독이 신필름으로 이름을 바꾸며 1970년대 중반까지 150여 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등 한국 영화의 산실 역할을 했다. 현재 관악현대아파트 단지가 그곳이다.
수도권 최대 국민 관광지였던 안양유원지도 행락객들이 버린 오물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면서 계곡이 오염되기 시작했고, 1977년 사상 유례없는 안양 대홍수로 계곡이 바위와 토사에 묻혀버렸다. 그렇게 안양유원지는 지난 이야기가 되었다.
기암 괴석과 폭포를 모티브로 한 벽천광장
불교 중심지였던 이곳에 오래전 있었을지 모르는 불탑을 형상화한 ‘안양상자집–사라진(탑)에 대한 헌정’
일상에서 만나는 자연과 어우러진 예술 작품
추억으로 남았던 이곳이 다시 전환점을 맞은 것은 2005년 안양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안양예술공원으로 재탄생하면서부터다. 3년마다 열리는 안양 공공 예술 프로젝트는 전 세계 작가들이 안양예술공원을 중심으로 안양의 역사와 문화, 지형을 콘셉트로 다양한 공공 예술 작품을 선보인다.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 ‘안양 파빌리온’을 시작으로 투명한 원통 구조물을 직각으로 연결한 ‘리.볼.버’, 투명한 원통 모양 터널과 연결된 기하학적 공연장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 삼성산의 등고선 데이터를 연장해 산 형태로 확장한 ‘안양전망대’ 등 50여 점의 예술 작품을 숲길 중간중간에 마주할 수 있다.
“안양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마을도 한층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분들이 예전의 안양유원지가 맞느냐며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석수동과 안양예술공원 곳곳을 소개해준 박재국 안양예술공원번영회 회장은 “예술 마을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번영회와 주민들이 합심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상인들도 예술 활동을 해보자는 취지로 매년 소상공인 그림 그리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관악 학생 미술 실기 대회 수상작을 공원 산책길에 전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에서 진행한 ‘우수골목상권 육성사업’과 ‘대표골목상권 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벽화 거리를 조성하고, 특화 상품을 개발하는 등 누구나 즐겨 찾는 명소가 되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안양(安養)’은 불교에서 마음을 편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하는 극락정토의 세계로,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은 없는 자유롭고 아늑한 이상향을 말한다.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자연과 사람, 예술이 하나 되는 석수동이 예술 세계에서 추구하는 안양은 아닐는지. 거대한 갤러리 마을에서 보낸 한나절은 감탄과 힐링의 연속이었다.

석수동으로 놀러 오세요

“삼성산과 관악산으로 둘러싸인 석수동에는 안양예술공원을 비롯해 박물관과 문화재가 즐비하답니다.”

박재국(안양예술공원번영회 회장)
안양사
신라 시대에 지었다가 16세기 폐사된 안양사를 계승해 다시 세운 비구니 사찰. 삼성산 기슭에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고려 시대에 만든 귀부와 부도가 자리 잡고 있다.
주소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131번길 103
문의 031-471-4848
만안교와 만안교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에 참배하러 갈 때 행렬의 편의를 위해 만든 돌다리. 원래 왕의 행차로에는 나무 다리를 가설했다가 행차 후 바로 철거하고 행차가 있을 때 다시 가설했는데, 번거롭기도 하고 평상시 다리를 이용할 수 없는 백성의 고통이 많아 항구적 돌다리를 놓게 되었다. 다리 남쪽 측면에는 축조 당시에 세운 비석이 있다.
주소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김중업건축박물관과 안양박물관
안양예술공원 초입에 있는 김중업건축박물관과 안양박물관은 (주)유유산업 안양공장 건물이었다. 우리나라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김중업이 1959년에 설계한 초기작이기도 한 안양공장은 건물에 조각 작품을 접목하는 등 독특한 형태를 띤다. 안양박물관에서는 선사시대 유물부터 근현대 유물까지 안양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김중업건축박물관에서는 김중업의 건축 유산을 엿볼 수 있다.
주소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103번길 4
문의 031-687-0909
맛있는 찌개
안양예술공원 음식 문화 거리에 있는 식당.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으로, 옛날식 생고기찌개와 닭볶음탕이 메인 메뉴다. 된장, 고추장으로 기본 간한 돼지고기찌개는 구수하면서도 얼큰하다. 반찬으로 나온 김치와 두부를 넣어 끓이면 감칠맛 나는 김치찌개가 된다. 바삭한 실타래감자전과 매콤한 주꾸미도 별미다.
주소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 162 1층
문의 031-473-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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