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으로 한 동네에서 48년을 장사했다는 건
그만큼 지역민에게 맛으로 신뢰를 얻었다는 방증이다.
평양, 함흥 등 이북식 냉면이 아니라 오로지 서민의
입맛에 맞춘 의정부 제일시장에 있는 곰보냉면이 그렇다.
글. 박찬일
사진. 전재호
냉면으로 대를 이은 48년
요새는 고급 평양냉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냉면 대중화를 이끈 건 허름한 동네 냉면집이었다. 굳이 메밀 함량이 어떠니, ‘오리지널’이니 하는 말 없이 맛있는 냉면집은 인기를 끌었다. 가게 밖 ‘냉면’이라고 쓴 빨간색 깃발이 펄럭이고, 면 삶는 솥이 김을 뿜어낸다. 함흥식이니 평양식이니 하는 구분은 호사였고 그냥 물냉면, 비빔냉면으로 구분했다. 소나 돼지보다 싼 닭고기 고명이 흔했고, 육수의 품질을 논하지도 않았다. 그저 사리 양이 중요했다. 모두 배가 고팠고, 더운 날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은 계절의 통과의례였다.
의정부에 있는 곰보냉면도 그런 집이다.
“지금도 양이 많은 편인데 예전에는 훨씬 더 많았어요. 점차 드시는 양이 줄어들더군요. 곱빼기는 정말 산더미처럼 담아냈던 기억이 납니다.”
현재 대표 이태진(48) 씨의 설명이다. 그는 이 가게와 역사를 같이했다.
“가게 문을 연 해와 제가 태어난 해가 같아요.”
이 대표 부모님은 다른 지역에서 사업을 하다가 우연히 의정부에 왔다. 그 시절 흔히 그랬듯이 먹는 장사가 그래도 낫다고 시장 한쪽에 일고여덟 평짜리 가게를 얻어 국수 장사를 시작했다.
“냉면이 기술이 좀 있어야 만드니까 잔치국수보다는 장사도 잘되고 가격도 좋았겠지요. 부모님이 어디서 배워와서 냉면집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보통 호사가들이 냉면집을 메이저니 마이너니 구분한다.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대체로 가격이 높거나 식당 운영 주체가 실향민이면 메이저라고 하는 듯하다. 말하자면 원조 개념이다. 요즘으로 치면 한 그릇에 1만5,000원 내외 하는 유명 냉면집들을 말한다. 하지만 서민이 다니는 집들은 대개 마이너다. 이는 대중적이며 친숙한 집들을 의미한다. 메이저와 마이너는 맛을 나누는 기준도 아니다. 대중적인 냉면집들이 우리나라 냉면의 ‘바닥’ 역사를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든 이런 냉면집이 있다. 적절한 가격, 입에 붙는 맛, 게다가 우리 외식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냉면 시대를 끌고 온 집들이다.
대중적인 동네 냉면 맛의 정겨움
의정부는 경기 북부의 관문으로 과거부터 중요한 길목이었다. 한국전쟁 때도 요지였고, 경기 북부의 사람과 산물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핵심 지역이었다. 이후 서울의 배후 도시로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흡수했다. 의정부는 군사 지역으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근처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어요. 오가는 군인도 많고, 멀리 연천, 전곡 등 경기 북부에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지요. 냉면 한 그릇 먹고 가시는 게 그때 분위기였나 봐요. 더울 땐 얼마나 손님이 몰려오는지 하루 3,000그릇도 넘게 팔았다고 합니다.”
이제 그런 영화는 없다. 사람은 줄었지만, 식당은 오히려 많아졌다. 간단하게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가. 이곳 메뉴라야 단출하다.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있고, 여기에 곱빼기를 선택할 수 있다. 회냉면도 있는데 생긴 지 오래된 메뉴는 아니다. 비빔냉면을 시켰다. 고무줄처럼 질긴 면을 이로 끊어가며 먹다 보니 땀이 난다. 이열치열이란 말, 꼭 더운 음식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렇게 매운 음식을 다 포함한다. 차갑지만 얼얼한 양념에 몸이 젖어든다. 먹고 나니 개운하고 포만감도 느껴진다.
“예전에는 새벽에도 냉면을 드시러 오는 손님이 있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이 근처에 장이 서니까 장꾼들이 새벽같이 와서 한 그릇 드시고 일을 시작했을 것 같아요. 또 한때 우리나라가 24시간 돌아가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밤 장사, 새벽 장사 많이 하고 유흥업도 잘되고…. 그때 사람들이 움직였으니까 새벽에도 냉면을 팔았던 거죠.”
비빔냉면 한 그릇을 먹고 있으니 촬영용으로
물냉면도 한 그릇 나왔다. 어어, 나도 모르게 젓가락이 간다.
그러고는 뚝딱 한 그릇 먹어치웠다.
냉면은 역시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요즘 유행어로
‘흡입’하듯 먹어야 제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적인 동네 냉면의 맛!
잊고 있던 음식을 먹으니 오래전 사람들이 생각났다.
집에서 냉면 만들어주시던 어머니도 그리워지고.
“예전에는 새벽에도 냉면을 드시러 오는 손님이 있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이 근처에 장이 서니까 장꾼들이 새벽같이 와서 한 그릇 드시고 일을 시작했을 것 같아요. 또 한때 우리나라가 24시간 돌아가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밤 장사, 새벽 장사 많이 하고 유흥업도 잘되고…. 그때 사람들이 움직였으니까 새벽에도 냉면을 팔았던 거죠.”
이 대표의 분석이다. 옛날엔 냉면을 꼭 냉면집에서만 판 건 아니다. 뜨거운 음식을 파는 식당들은 한여름에 손님이 줄어드니 냉면을 개발해 팔았다. 정식으로 육수 내고 하기 어려우니 보통 열무냉면 같은 게 많았다. 중국집에서조차 여름 한정 메뉴로 냉면을 내놓았다. 짬뽕, 짜장 같은 더운 음식이 덜 팔리니 나온 대안이다. 여담이지만, 한국 중국집에서 파는 냉면은 중국에는 없다. 순 한국 개발품이다.
비빔냉면 한 그릇을 먹고 있으니 촬영용으로 물냉면도 한 그릇 나왔다. 어어, 나도 모르게 젓가락이 간다. 그러고는 뚝딱 한 그릇 먹어치웠다. 냉면은 역시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요즘 유행어로 ‘흡입’하듯 먹어야 제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적인 동네 냉면의 맛! 잊고 있던 음식을 먹으니 오래전 사람들이 생각났다. 집에서 냉면 만들어주시던 어머니도 그리워지고.
박찬일
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써서 사회·문화적으로 노포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는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이 있고 <수요미식회> 등 주요 방송에 출연했다.
곰보냉면
주소 경기도 의정부시 태평로73번길 20 의정부제일시장 나동 1층 32, 44~46호
문의 031-848-1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