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백년식당 모아보기
이 노포는 양평에서도 유명하지만 서울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양평이나 강원도를 오가는 여행자 사이에서 잠시 들러 꼭 맛봐야
할 식당으로 유명한 신내보리밥집이다.
since 1989, 여행자를 사로잡은 착한 식당
“새벽부터 나물 무치고 밥 짓고 하다 보니 어느새 인생이 이리 멀리 왔어요.”
한순자(74) 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양평은 지도상 경기도의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다.
한숨만 달리면 강원도다. 한 씨의 친정은 여주시 천서리다. 막국수로 유명하고, 관광 명소 이포보가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시집와서 애들 낳고 농사짓고 살다가 보리밥집을 하게 됐네요.”
신내보리밥집은 서울, 경기도, 강원도를 오가는 많은 관광객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이 지역을 오가던 중 배가 출출해지면 ‘고향다운 맛’을 찾는 여행자가 많았다.
“보리밥을 한다니까 다 좋아했지요. 단골 중에는 연예인이나 정치인도 많아요.”
홀에 자리 잡고 앉아 이 집의 명물인 오리로스구이를 시켰다. 닭백숙과 오리백숙도 있는데, 그건 미리 주문해야 한다.
고기가 달큼하고 잡내가 없다. 무엇보다 제일로 치는 건 보리밥이다. 구수한 된장찌개가 딸려 나오는데, 나물 반찬만 아홉 가지다. 비름나물에 냉이무침,
무나물, 시래기와 고춧잎무침도 달다. 계절별로 나물 구색은 바뀐다. 나물을 밥에 올려 고추장 넣어 비벼도 되고, 반찬처럼 그냥 먹어도
맛있다. 하나같이 맛이 순하고 깊다.
“왜 아홉 가지가 되었냐면, 한 상 낼 때마다 둥근 쟁반을 쓰는데 나물 그릇이 딱 아홉 개 들어가요. 찌개 놓고 장도 놔야 하니까 거기에 맞췄지 뭐.”
계절별로 나물 아홉 가지를 맞추려면 고된 일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세팅’되는 바람에 늘 그렇게 해왔다며 선하게 웃는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식당이 원래 전형적인 농가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홀은 원래 마당이었는데, 하늘을 가렸다. 비가 떨어지니 지붕을 올린 것이다.
주방 자리는 외양간이었다고 한다. 소, 돼지 키우고 마당에 닭도 기르던 평범한 농가였다.
“사랑채, 안방, 건넌방 다 손님이 들어차서 방을 쓸 수 없었어요. 정신이 없었죠 뭐.(웃음)”
딸이자 이 노포를 물려받은 배연정(49) 씨의 말이다. 어머니 한 씨가 언젠가 해외여행을 가려고 했을 때 지문이 안 나와서 애를 먹었다는 얘기를 꺼냈다. 그런 우리의 엄마들이 오늘을 만들었다.
“어휴, 일을 많이 했어요. 요새도 일이 많아요. 밭일도 해야 하고…. 딸에게 물려줬어도 내가 도와줘야지. 나물 간 맞추고 그런 건 아직도 내가 해요.”
국산 나물과 국산 기름으로 맛을 내 속 편한 보리밥
이 집 나물은 특이한 맛이 난다. 흔히 사 먹는 나물 반찬과는 격이 다르다.
“가능한 한 우리가 농사지은 걸 쓴다, 화학조미료는 절대 넣지 않는다, 참기름과 들기름으로 무칠 때도 국산 기름만 쓴다. 이런 원칙이 있어요.”
그래서 먹고 난 후 속이 편했던 모양이다.
“1989년 가게를 시작했을 때 밥 한 상에 1,500원 정도였어요.
요새는 1만 원이니까 많이 올랐네요. 오리와 닭도 그때부터 팔았어요. 우리가 길러서 직접 잡았죠. 남편이 그 작업을 했어요. 그러니 손님이 참 많았지요.”
물론 지금은 가내 도축이 금지돼 거래처를 두고 도축한 걸 쓴다. 보리밥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체 양곡이었다. 보리밥을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옛날 보리밥 맛을 찾는 사람이 많이 생겨났다. 신내보리밥집은 호시절을 만난 셈이다.
“보리밥은 입에 착착 붙는 음식이 아니잖아요. 거칠고 까슬하지요. 그래서 몸에 좋다고 하고요. 우리도 손님 몸에 좋은 음식을 팔아서 좋아요.”
한 씨는 남매를 뒀다. 둘 다 도시로 나갔는데 딸 연정 씨가 남편과 함께 고향에 오겠다고 했다. 다행히 신내보리밥집의 역사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아직은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세요. 저도 열심히 배우고 있고요. 저희는 가족 경영이에요. 사촌들도 같이 일하거든요. 보리밥집을 오래오래 할 겁니다.”
연정 씨의 다짐이다. 신내보리밥집의 역사에서 특별한 게 있다. 일 도와 주는 동네 아주머니 직원들이 오랫동안 일한다. 최근에는 창업 때부터 함께해온 직원이 78세까지 일하고
퇴직했다. 좋은 가게는 직원이 오래 일한다는 공통점을 이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신내보리밥집 직원들은 오늘도 나물 몇 가마니와 씨름해야 한다. 다듬고 데치고 무친다.
“기름도 여전히 여기 면에 나가 단골집에서 짜요. 2주에 한 번은 깨 한 가마니씩 짜야 하는데, 모두 국산을 써요. 우리가 농사지은 걸 쓰지요.”
가게 밖에서 사진을 찍는데, 한 씨의 표정이 딱 우리 엄마들의 그것과 같아서 잠깐 울컥했다. 초겨울 해가 저물고 있었다.
박찬일
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쓰며 사회·문화적으로 노포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는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이 있고 <수요 미식회> 등 주요 방송에 출연해왔다.
신내보리밥집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공서울길 39
문의 031-771-9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