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동네에 오래 살았어요. 이 동네는 서오릉과 서울 은평구가 겹치는 권역으로 볼 수 있어요. 자가용이 늘고 레저 문화가 발달하면서 서울 외곽으로 밥 먹으러 오는 시민이 몰려들었죠.”
1990년대 일이다. 서오릉 갈비길이랄까, 갈비타운이랄까. 은평구 역촌동을 벗어나면 고기 굽는 연기가 퍼져나가는 지역이었다. 그는 거기서 노점을 했다.
“말 그대로 포장마차 노점이었어요. 갈빗집이 많으니까 저는 장작 사다가 닭을 구웠지요. 뭐, 그때는 거의 다 무허가였으니까 다들 그렇게 시작했지요. 한마디로 거리에서 닭 굽는 기술로 시작한 거예요.”
사실, 이 가게를 소개한 사람은 지난 호 용인 ‘고기리막국수’ 김윤정 대표다. 업계 친구인가 했더니 아니었다.
“아, 고기리 김윤정 대표님요.(웃음) 기억에 남는 손님이에요. 그게 아주 우스운 일로 시작된 거예요.” 김윤정 대표가 이 집 닭이 맛있다 해서 찾아왔는데, 가게에서 귀고리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했단다. 김군철 대표의 지시로 전 직원이 귀고리를 찾기 위해 몰려들자, 김윤정 대표는 감동을 받을 수밖에. 이렇게나 크고 손님이 많아 번잡한 가게에서 손님이 부주의해서 귀고리를 잃어버렸다는데 직원들이 ‘내 일처럼’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니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평소 대표가 어떻게 직원을 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주방 안으로 들어가보니 요리사 한 분이 열심히 닭 속을 채우고 있다.
“우리 집 최고 보물이십니다. 오래 근무하셨어요. 이 분 안 계시면 우리 가게 안 돌아갑니다.”
말을 참 듣기 좋게 한다. 직원 아끼는 가게는 오래간다. ‘신호등’이란 상호는 이 가게 앞에 신호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호는 손님들이 잊지 못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이름이 같은 가게가 몇 개 나온다. 체인은 아니고, 아는 사람들이나 ‘제자’들이 차린 가게다.
“무작정 편지 쓰거나 찾아와 기술 배우겠다는 분들이 있었어요. 저는 체인 안 한다 해도 자꾸 요청하시니, 그럼 저 장작 가마에 가서 일 배우면 가게 내드린다 했죠.”
가마에 가보았다. 가게는 크게 홀이 반이고 주방이 반인데, 그 주방의 반이 또 가마 전용실이다. 장작 가마 4개가 돌아간다. 장작은 참나무를 쓴다. 문을 닫는 방식이 아니고 열려 있어서 열기가 장난 아니다. 3~4m 떨어져서 보는데도 열기가 훅훅 끼친다. 김 대표가 20년 해온 일이고, 이 분야의 권위자이니 직원들도 힘든 환경이지만 열심히 일한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염지한 닭 속이 채워져 있다. 인삼이 꽤 큼직하고 찹쌀과 여러 재료가 들어간다. 그렇게 준비한 닭이 장작불에 딱 맞춰 익는 온도와 시간, 조건을 아는 데 10년이 걸렸다.
“저 가마에 그냥 돌린다고 닭이 익는 게 아니에요. 마르지 않고 촉촉하되 겉은 바삭하고, 안에 든 쌀은 또 맛있게 딱 익어야 해요. 그게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그는 직진하는 스타일이다. 말이나 태도, 표정이 그랬다. ‘꼼수’ 쓰지 않고 맛있게 굽는 방식에 도달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고 한다. 그게 지금의 신호등장작구이를 있게 한 노하우다.
“장작불 온도가 일정하지 않죠. 닭이 꽂혀 있는 단마다 온도가 다르니까 때 맞춰 빼서 바꿔줘야 합니다. 그게 참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렇게 한 시간 남짓 익혀야 최고 맛이 나온다.
주문한 닭이 나왔다. 내기 전에 가마에서 일하는 요리사가 닭을 뜨거운 철판에 한 번 꾹 누르는데, 이게 묘미다. 닭고기와 그 안의 찹쌀이 지져지면서 누룽지가 된다. 닭은 간이 딱 맞는다. 곁들여 내는 ‘치킨무’조차도 맛있다.
김 대표는 “장작구이의 성패는 가슴살이 좌우합니다”라고 했는데, 과연 그럴까. 닭은 원래 통째로 구우면 참 애매하다. 장시간 익히면 날개는 너무 익고, 가슴살은 퍽퍽해진다. 다릿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그는 가슴살의 맛도, 부드러움도 잡아냈다.
“장작구이는 오래 구우면 가슴살의 수분이 빠지고 퍽퍽해져요. 우리 집은 그걸 딱 계산합니다. 게맛살 아시죠? 그것처럼 찢어져야 해요. 불 조절에 그 기술이 숨어 있죠.”
과연 가슴살도 부드럽게 익었다. 다리는 쫄깃하다. ‘1인 1닭’ 하고 싶은 맛이다.
“어떻게 보면 이 동네가 경기도 유원지랄까, 그런 곳이에요. 그러니 단골이 없을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깐깐하고 좋은 손님이 많아요. 저도 항상 긴장하죠.”
남자답고 호방한 김 대표의 인터뷰는 즐거웠지만, 이런 닭을 또 언제 먹어보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