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 _ Vol.173

군포역 앞, 가성비 좋기로 소문난 한우·삼겹살 맛집이 있다.
고깃집으로 백년가게 인증을 받은 제일황소다.

수수한 반찬에서부터 노포 향기가 물씬 군포를 경기 남부권의 신흥 주택 지역으로만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군포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이다. 농사를 많이 짓고, 물산도 많이 모여서 일찌감치 역이 들어섰다. 군포역은 놀랍게도 1905년에 세워졌다. 120년 가까운 역사다. 그래서 오래된 식당도 꽤 많다. 가까운 곳에 설렁탕을 잘하는 백년식당이 하나 있고, 고깃집으로는 노포 자리를 지켜가는 제일황소가 있다. 인터뷰 전에 가게를 섭외하러 들렀더니 젊은 주인이 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2대 주인 이우석(42) 씨다. 며칠 후 인터뷰 약속을 잡았는데, 1대 창업주가 동석했다.
“아들이 이어받아서 하고 있어요. 저는 잘 안 나오고요. 남편은 원래 식당에는 그다지 관여하지 않았고, 다른 사업을 했어요. 이 식당은 내가 일으켰지요.”
한덕순(69) 씨의 말이다. 이 연세면 충분히 가게를 지킬 것 같은데 은퇴하셨단다. 이유가 있다.
“4년 전에 뇌경색이 왔어요. 저녁이었는데 가게 앞에서 누가 제게 단호하게 말하는 거예요. ‘빨리 병원 가라’고요. 돌아서서 보니 아무도 없어요. 불가사의한 일이에요. 겨우 몸을 추슬러 동네 병원에 갔는데, 바로 의식을 잃었죠.”
마침 야간 진료하는 동네 의원이 있었고, 그 문 앞에서 쓰러졌다. 아득하게 의사가 “빨리 119 부릅시다” 하는 외침만 기억이 난다고 했다.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고 종합병원으로 이송돼 무사히 치료할 수 있었다.
“조상님인지 누군지 나보고 병원에 가라고 한 건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들 우석 씨가 가게를 온전히 책임진다. 한 씨는 남편과 함께 다른 지역에서 화원을 운영한다. 나무 기르고, 꽃 보살피고, 농사도 지어서 아들에게 보낸다.
“전 이 가게가 좋더라고요. 돌아다니는 것도 싫어하고…. 자연스레 형제 중에 제가 이어받게 됐어요.”
젊은 나이에 놀러 가고 싶고, 쉬고도 싶을 텐데…. 필자가 “우석 씨는 고생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왔다”고 하자 그저 웃는다. 주 6일 동안 하루 종일 일만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 괜찮단다. 고기를 내는데, 역시 노포라 반찬이 수수한 게 ‘상업적’이지 않다. 뻔히 산 것, 기성품 같은 게 없다. 하나하나 직접 만든 반찬이다. 김치도 다 담근다.
“어머니 때부터 하던 그대로 해야 해요. 단골도 많고 해서 꾀를 못 부립니다.”

돌판에 구운 고기는 씹을수록 감칠맛 돌아 고기는 돌판에서 굽는다. 돌판구이는 요새 거의 볼 수 없어 더 정이 간다. 메뉴를 보니, 투 플러스 등급이다. 이 집은 한우 최상품을 적절한 값에 판다. 한우가 워낙 비싸니 만만한 값은 아니지만, 호사를 부린다면 시켜볼 일이다. 취재해야 하니, 기꺼이 주문했다. 물론 삼겹살도 인기 메뉴다. 천천히 달군 오석(烏石)에 소 비계를 슬슬 문지르고 고기를 굽는다. 맛있는 고깃집에 가서 먹은 후 제일 빤한 소감이 “살살 녹는다”는 말이다. 그래도 첫 느낌이 정확히 이랬다. 게다가 씹을수록 감칠맛이 우러난다. 좋은 고기라는 뜻이다. 두툼하고 진한 고기가 양도 많다.
“동네 장사니까 넉넉하게 드려야지요.”
1인분 200g은 고물가 시대에 보기 어려운 양이라 특별하다. 술 한잔 곁들여 고기를 씹었다. 제일황소라는 상호가 특이하다. 1987년에 창업했으니, 당시엔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암소’가 좋은 고기의 상징이었다.
“시집와서 남편이랑 건재상을 차렸어요. 거래처가 부도나서 저희도 망할 지경이 됐죠. 먹고살려고 이 가건물(건물 자체가 허름하다) 한 칸이 나왔다 해서 계약했어요. 옛날엔 어쨌든 여자가 밥이라도 하고 고기를 구워내면 먹고살 수 있었으니까. 황소는 암소보다 힘이 세고 특이해서 붙였어요.”
그렇게 한 씨는 집안 생계를 맡게 됐다. ‘제일’이란 상호는 집안 당숙이 가까운 곳에 같은 이름의 병원을 하고 있어 가져다 썼다. 복을 불러올 거라 믿었다. 실제로 그리 됐다. 물론 장사가 잘되려면 주인의 인품, 좋은 맛, 운이 맞아야 한다.
“군포역 앞 경기가 괜찮았어요. 88 서울올림픽이 열리면서 밤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죠.”
올림픽이 가져다준 열매였다. 식당들이 24시간 체제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가게도 고깃집으로는 특이하게 밤새 영업했다. 대한민국이 잠들지 않는 시대였다.
“요새는 예전과는 다르죠. 우리도 밤샘 영업을 안 한 지 오래 됐어요. 착실하게 찾아오는 단골 모시고 장사하고 있지요.”
오랜만에 맛있는 고기를 사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갈한 반찬도 좋았다.
“수십 년 주방을 봐주신 아주머니가 이제 연세가 많아 일을 더 못 하실지도 모릅니다. 제일 큰 걱정이네요.”
노포의 손맛은 오래 일한 주인과 직원의 조화가 만들어낸다. 우석 씨의 말을 듣다 보니 내가 더 걱정됐다. 마음씨 좋은 어머니와 아들을 인터뷰하다 보니,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이 넉넉한 군포의 자랑거리 같은 식당이 오래 남아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