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캐리커처 ‘니얼굴’ 정은혜 작가

정은혜 작가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화가다.
다운증후군 발달장애인인 작가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전세피해지원센터

2022년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해 주목받은 정은혜 작가는 다운증후군 발달장애인이자 캐리커처 ‘니얼굴’로 유명한 화가다.
“지금까지 4,600명을 그렸어요. 다들 ‘예쁘게 그려주세요’ 해요. 그럼 전 이렇게 말하죠. ‘본래 이쁜데 뭘’. 그래서 제 그림엔 미남미녀만 있어요.”
다운증후군은 다른 장애보다 특히 외모가 두드러져 보여 타인의 시선에 상처받곤 한다. 정은혜 작가도 그랬다. 그런 그가 ‘사람 얼굴’을 그린다. 왜? 정 작가의 어머니 장차현실 씨는 “은혜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그리면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 같다”며 “그림을 의뢰한 분들도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했다.
정은혜 작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집에서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며 정서적·육체적으로 상태가 나빠진 은혜 씨는 그림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잡지에 실린 연예인을 보고 얼굴을 그렸는데, 화가이자 만화가인 장차현실 씨가 보기에 예사롭지 않은 솜씨였다.
은혜 씨가 그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작업실을 꾸몄고, 문호리 리버마켓에도 참여했다. 스무 살이 넘은 발달장애인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동료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더 깊은 동굴 속으로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경기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회장인 장차현실 씨가 장애인 공공 일자리를 운영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은혜 씨가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변하는 모습을 보고 그림에 재능 있는 다른 발달장애인에게도 기회를 주고자 시작했는데, 지금은 20명의 장애인이 일하는 제법 큰 규모의 일자리가 됐다. 정은혜 작가도 그중 한 명이다.

전세피해지원센터2

그림은 세상과 소통하는 기회
“사람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할 때 제일 행복해요. 요즘은 지로(반려견)도 그리고, 나무도 그리고, 꽃도 그려요. 제가 사는 양평은 아름다운 곳이 많아 그 풍경도 그려보려고 해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는데 단번에 인기 작가가 되었고 어느덧 ‘스타 셀러’, ‘완판 작가’ 반열에 올랐다. 지난 12월 14일부터 2024년 2월 17일까지 뉴욕의 리코/마레스카 갤러리에서 <나의 강아지, 지로>전을 개최하며 뉴욕 미술계에도 데뷔했다. 유기견이었던 지로와의 교감과 일상을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작가는 “세상에 버려지고 싶은 개는 없어요. 저는 앞으로도 지로와 함께 살며 지로를 계속 그릴 거예요”라며 소감을 전했다.
정은혜 작가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일까? 장차현실 씨는 “치유이자 존재의 증명”이라고 말했다. 작가로 대해주는 따듯한 시선에 힘을 얻고, 그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사회와 소통하기 때문이다. 농담도 잘하고, 기억력도 좋고, 소신도 확실한 정은혜 작가와의 대화는 꽤 유쾌했다. 그리고 대담 말미에 그가 경기도 예술가들에게 전한 응원 메시지는 뭉클했다.
“저는 동굴 속에 있다가 그림으로 세상에 나왔어요. 포기하지 말고, 내려놓지 말고 저랑 함께해요. 돈도 많이 벌고요.”

info 정은혜 작가는… 캐리커처로 그림에 입문해 이제는 다양한 소재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정형화되지 않은 표현과 개성 있는 색채로 사랑받고 있다. 배우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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