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문산읍에 3대를 이어온 화상(華商) 중국집이 있다. 60년 전통의 유니짜장과 고기튀김은
한번 맛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맛이다.
Since 1963
지도 앱을 보고 가는데도 자꾸 헤맸다. 목적지는 입구가 잘 보이지 않는 2층에 있었다. 역사 60년의 노포 중국집이 빌딩 2층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내 탓이다. 1층 입구엔 낡은 나무로 만든 간판이 세로로 붙어 있다. 은하장. 중국집 이름치곤 예쁘장하고 꿈같은 느낌이다. 반면 주인은 넉넉한 풍채랄까, 하지만 아직 젊어 보이는 얼굴.
“제가 중국집 은하장 3대 주인입니다.”
우술인 쓰부(중국 요리장을 뜻하는 호칭)다. 그는 화교(華僑) 출신 할아버지 우수금 씨가 시작한 은하장(개업 당시는 은하루)을 잇는 젊은 주인장이자 주방장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인근 파주 선유리에서 시작했다. 시장이 있고, 사람들이 흥성하던 때였다.
“저는 거의 기억이 없어요. 1963년도쯤 개업해서 이 자리로 옮긴 게 1983년이니까 제가 아주 어릴 때예요.”
지금 자리는 낮은 빌딩이지만 건축 당시는 위용이 있었다. 2층 넓은 공간을 임대하고 은하루를 은하장으로 바꿨다. 부친 우경업(72) 씨가 웍을 잡았다. 파주 문산은 이북과 가까워 화교가 많이 살았다. 원래 산둥 출신인 우술인의 증조할아버지 집안도 자연스레 장사를 하며 이 지역에 둥지를 틀었다.
“본래 고향은 산둥 무핑이라 합니다. 저는 못 가봤어요.”
은하장은 면과 볶음밥 등 요리를 잘하는 지역 명소였다. 할아버지의 솜씨가 좋았고, 대를 이은 아버지도 서울 조선호텔 중식당 요리사를 거치는 등 고급 요리를 전수한 일급 셰프였다.중국요리는 화교들이 대를 이었지만, 1970년대생 이후부터는 다른 직업군으로 바뀌었다. 힘든 주방 일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공부를 많이 시키는 게 당시 화교 사회 분위기였다. 우술인 주방장도 명동부터 연희동까지 쭉 화교 학교를 다녔다.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고 광고, 뮤직비디오 등을 제작하는 프로듀서 일을 오래 했어요.”
시간 걸려도 전통 방식대로 면 뽑기 고집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은 영영 요리를 안 할 줄 알았다고. 그러다 덜컥 어머니가 심장 수술을 하는 바람에 가게에 나올 수 없게 됐다. 아버지가 그를 호출했다.
“얼떨결에 가게 홀 일을 보게 됐어요. 유니짜장과 탕수육이 유명해져서 서울에서도 손님이 밀어닥쳤죠.”
그러다 어머니가 끝내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이제 그만하겠다고 하셨다.
“어머니 없는 가게에 나오는 게 고통스럽다고…. 결국 제가 주방을 맡게 되었어요.”
오랫동안 부주방장을 맡아오던 삼촌 같은 아저씨 밑에서 일을 배웠다. 2016년경 일이다.
“제가 주방장이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제 또래 화교들은 더이상 요리를 안 합니다. 힘든 일을 선대가 안 시키려 해서요.”
은하장의 명물은 짜장면과 고기튀김이다. 재료를 곱게 다져 끓인 유니짜장은 흔하지 않다. 일일이 칼로 다져서 칼 맛이 살아 있었다. 혀에 부드럽게 감겨 고급스러운 식감을 낸다. 일반 짜장은 옛 맛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면이 익숙하다.
“유행이 바뀌었죠. 노랗고 질긴 면이 대세입니다. 요즘은 배달해도 붇지 않도록 면 개량제를 넣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집은 배달을 하지 않아요.”
선친이 옛날 식대로 하길 바랐다. 면이 하얗고 소스를 잘 머금는다. 소화도 잘된다. 고기튀김은 소스 없는 탕수육 비슷한데, 고기 밑양념을 진하게 한 뒤 튀겨내는 게 다르다. 식초, 간장, 고춧가루 소스에 찍어 먹거나 소금만 묻혀 먹기도 한다.
“우리 집 방식은 소금을 권합니다. 담박하고 고소한 고기튀김 맛을 그대로 표현하는 거죠.”
짜장면 한 젓가락을 말아 올렸다. 달콤하고 구수한 짜장 맛이 입안을 휘감는다. 이내 부드러운 면이 씹힌다. 이 음식이 한중 근대사가 시작된 상징이다. 그리고 140년의 시간이 흘렀다. 가게 카운터에는 ‘YuShuJen’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많은 화교가 귀화했지만, 그는 아직이다.
“전 사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반 이상 한국인이죠. 어머니도 한국인이고요. 그래도 막상 귀화하려니 쉽지 않더라고요.”
세월이 흘러 화교의 삶도 변화를 맞고 있다. 변하지 않은 건 이 노포의 짜장면뿐. 겨울 같지 않은 부드러운 바람이 문산동네를 휘감았다. 혼자 옛날 짜장면 맛을 보러 오는 중년의 사내가 많았다. 그 또래의 솔 푸드 1번은 짜장면이다. 나 역시.
박찬일
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쓰며 사회·문화적으로 노포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는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이 있고 <수요 미식회> 등 주요 방송에 출연했다.
문산 은하장
경기 파주시 문산읍 문향로 78
문의 031-952-4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