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평론가 강유정 교수 일상에서 문화 즐기기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문화 콘텐츠가 대한민국 국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갈수록 문화의 중요성이 커지는 요즘, 강유정 교수에게 일상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들었다.

글. 이선민 사진. 전재호
고도원

문화생활이라는 말은 매우 친숙하지만, 막상 누군가가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느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할 때가 많다. 문화가 클래식 음악이나 명화 감상처럼 고상하고 우아한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은 아닐까.
“뭔가 잘 갖춰진 데다 세련되고 우아한 문화도 있지만, 내가 즐기는 것 자체가 문화이기 때문에 등급을 나눌 필요가 없어요. 어머님들이 임영웅을 좋아해서 공연을 보러 가고 음반을 사면서 그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쌓는 것도 문화라고 할 수 있거든요.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거리’를 찾는 것이고, 그게 바로 문화생활이죠.”
대중문화평론가이자 강남대학교 한영 문화콘텐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강유정 교수는 문화생활이 앎의 영역이 아닌, 호기심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알아야 즐기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면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으면 바로 일상에서 즐기는 문화생활이 된다는 것이다.

호기심을 갖는 것이 문화생활의 시작 그렇다면 일상에서 문화를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 교수는 먼저 짧은 뉴스를 놓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보라고 조언한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정치 뉴스에 관심을 갖는 분도 많은데, 그러다 보면 정작 눈길을 줘야 할 중요한 부분을 놓치기 쉽거든요. 매일 제목만이라도 문화 면을 훑는 습관을 갖다 보면 문화에 관심이 생기고, 언젠가는 즐기게 될 거예요.”
또 넷플릭스 같은 OTT를 즐길 때 좋아하는 것만 골라 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것도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트렌드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것이기에 문화적 트렌드를 파악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어 강 교수는 문화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의 역할 혹은 쓸모에서 벗어나 심신이 풍족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유정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5년 조선일보·경향신문·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과 영화 평론으로 등단해 ‘신춘문예 3관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박은영 강유정의 무비부비>, EBS <시네마 천국> 등에 오랫동안 출연 했고 진행도 했다. 경향신문에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영화 글쓰기 강의>, <죽음은 예술이 된다>, <타인을 앓다>, <스무 살 영화관>, <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 등이 있다.



고도원

쓸모에서 벗어나 나를 찾는 과정이 문화 “우리는 엄마, 딸, 선생님 등 자신의 ‘쓸모’에 맞춰 사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그 쓸모에 자신이 미치지 못한다 싶으면 자긍심이 바닥나면서 마음이 가난해지는 거예요. 쓸모라는 효용성이 아닌, 가치에 의미를 두고 싶다면 쓸데없어 보이는 문화생활이라도 즐길 필요가 있어요. 자신의 쓸모에서 벗어날수록 근본적 모습을 돌아볼 수 있거든요. 그게 바로 문화 생활의 효과라고 할 수 있죠.”
쓰임새를 지나치게 따지는 사회 분위기가 젠더 갈등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 강 교수의 판단이다. 남녀 간 사랑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쓰임새나 목적을 따지지 않고 발전시켜나가는 관계인데 남자로서, 여자로서 누가 손해를 보고 이익을 보는지 따지다 보니 극한의 젠더 갈등을 겪는 것 아니겠느냐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효용이 아닌, 의미에 가치 두기

강 교수의 쓸모없는 일을 할 여유를 가지라는 조언은 자녀 교육에도 해당된다. 부모라면 누구나 문화적 소양이 풍부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면 못마땅해하고 타박하며 아이와 갈등을 일으킨다.
“아이들은 쓸데없는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고 내면의 힘을 키웁니다. 아이들이 뭔가를 시도하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배우고 다시 시작하는 경험을 쌓는 데 문화 활동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강 교수는 경험과 학습을 구분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학습 시장만 발달한 교육 환경을 안타까워했다. 피아노를 가르칠 때도 학원에 보내 하루빨리 실력을 늘려야 한다고 조급해한다. 경험하고 느끼는 게 아니라 피아노마저 학습이 된다는 의미다. 강 교수는 쉽게 바꿀 수 없는 여건이지만, 이럴 때일 수록 부모가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끔은 쓸모없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의미 있고 가치 있다는 생각, 이익보다 의미에 가치를 두어야 문화생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SNS로 갈등을 겪는 부모와 자녀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모는 쓸데없이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에 아이를 야단친다. 하지만 자녀 입장에서 휴대폰은 재미를 느끼고 새로운 것을 접하는 세상이다. 요즘 아이들을 ‘디지털 네이티브’로 부르는 이유다. 강 교수는 부모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문화지만 야단치기보다는 아이가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주 물어보라고 조언했다. 별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SNS에 빠져 있던 아이도 부모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지 깨닫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문화적 소양이 풍부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가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하도록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역동성 넘치는 경기도,
콘텐츠 중심 경기도 될 잠재력 풍부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인 것이 문화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 <기생충>, BTS 등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문화는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강 교수는 이익이 아닌 의미에 가치를 두고 당장의 수익보다 꾸준히 투자한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영화를 보면서 미국을 숭배하던 할리우드 키드처럼 그 나라를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아메리칸 드림을 만들어낸 게 바로 문화의 힘입니다. 서구의 지식인들이 일본에 대한 로망을 갖게 된 것도 20세기 초 일본 작가들이 보여준 문학작품 때문이에요.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어도 국격처럼 자부심을 높이는 것이 바로 문화입니다.”
강 교수는 백범 김구 선생이 문화의 힘을 아셨기에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경기도가 문화적으로 가장 크게 성장하는 지자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구도 많고 지역이 남북으로 넓어 각 지역의 개성이 살아나면 다이내믹한 경기도가 될 것이란다.
“인구는 기본 소비의 최소 단위예요. 콘텐츠가 있을 때 기본 소비가 돼야 또 다른 콘텐츠가 만들어지거든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으니 그 바탕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인구가 많다는 것은 갈등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그 갈등으로 많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어요. 시끌벅적하게 싸우면서 다양한 결과물을 얻고, 그것이 역동성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 어떤 지자체보다 젊은 세대가 많은 데다 인구도 많으니 콘텐츠 중심 경기도가 될 잠재력이 충분합니다.”
강 교수의 말처럼 경기도민이 함께 만들어갈 경기도의 미래가 바로 다이내믹 경기도이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