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수 교수가 말하는 쇼펜하우어 인생론 행복은 고통을 견디는 것

2024. 05

1800년대를 살았던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21세기 한국에 소환됐다.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라며 염세주의적 자세로 인생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했던,
냉소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던 쇼펜하우어.
30만 부 이상 팔리며 쇼펜하우어 열풍을 주도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저자 강용수 교수를 만나
쇼펜하우어가 독일이 아닌 한국에서 사랑받는 이유를 들어봤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Q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어떤 책인가요?
A 온갖 고민을 안고 사는 40대에게 위로와 용기,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는 자기 계발서입니다. 지식과 경험을 쌓은 20대, 일과 인간관계에 집중해 치열하게 산 30대를 거쳐 40대는 인생의 수많은 시험을 치르고 자리 잡아가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실패도 많이 하고 인간관계에 회의감도 느끼며 상실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나이이기도 하지요. 그러다 보니 쇼펜하우어의 뼈 때리는 조언이 더 와닿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저도 이 책이 이렇게 인기를 얻을 줄은 몰랐습니다.(웃음) 책의 대상을 40대로 했지만, 청년부터 노년까지 두루두루 공감할 부분도 많아 베스트셀러가 된 듯합니다.
Q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졌는데, 정말 비관적 삶을 살았나요?
A 쇼펜하우어는 대학교 강의에서도 거의 다루지 않는 비주류 철학자였습니다. 그래서 잘못 알려진 것이 많은데, 사실 그는 염세주의자가 아닌 지극히 현실주의자였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갈등, 가난한 사람의 배고픔보다 부자들의 권태, 지겨움, 공허함을 먼저 간파했기에 인생에 대해 냉소적인 말을 내뱉었지만 실제로 그는 연애도 많이 했습니다. 건강관리에도 신경 써서 70대까지 살았죠. 낙천적인 데다 웃음도 많았고, 인생을 즐기며 균형적으로 산 긍정주의자였습니다.
Q 그런데 왜 사는 것이 고통의 연속이라고 했을까요?
A 그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에서 고통이 빚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많든 적든 늘 부족하다고 여겨 더 갖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이고, 그로 인해 절망과 고통이 커진다는 거죠. 또 그는 과잉 충족으로 인한 따분함, 지루함, 권태 역시 고통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결핍과 과잉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고통을 느끼는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Q 코로나19 이후 불안정하고 힘든 시기라 쇼펜하우어 철학이 더 공감을 받는 걸까요?
A 그렇죠.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고통은 생물학적 결핍이 아닌, 정신적·정서적 고통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생존을 위한 기본 욕구는 어느 정도 충족된 상태입니다. 대신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소유욕, 시기심, 허영심, 질투, 자존감 상실 등이 더 크죠. 그 부분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조언이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이 아닐까요.
Q 책을 보면 행복한 삶을 위한 조언이 많은데,
그가 말하는 행복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A 어느 철학자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쇼펜하우어도 그랬고요. 그는 고통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데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항해할 때 배에 싣는 바닥짐이 배의 균형을 잡아주듯이 적당한 고통은 인생이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헤쳐나갈 수 있도록 잡아주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견디고, 줄일 때 비로소 행복이 찾아온다고 말했지요.
2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19세기 초 독일 사람이나 2024년의 한국 사람이나 인간의 본성은 유사하기 때문에 쇼펜하우어가 인기 있는 것 아닐까요?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마음의 위기를 현명하게 다스리고 싶은 분, 자신을 돌아보고 집중하고 싶은 분이라면 쇼펜하우어의 조언에 귀 기울여보세요.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행복하게 나이 드는 법

① 행복은 순간이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이 결핍에서 충족으로 넘어가는 ‘짧은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충족은 아주 잠깐이고 곧바로 과잉으로 넘어가면 권태, 지루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행복은 늘 과거형이고, 영원한 행복이나 큰 행복도 없는 거지요. 행복은 순간인 만큼 일상에서 순간순간 만나는 작은 행복에 만족하고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②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라 인간은 지구상의 생물 중 가장 개성이 강하고 능동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남이 시키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노년에 가장 후회되는 일,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과거에 내가 원했던 것을 남 눈치 보느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진정한 행복을 찾고 싶다면 남과 다른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일, 누구나 가는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찾으라고 조언합니다.

③ 고슴도치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라 쇼펜하우어는 친구도 없이 반려견만 데리고 살았지만, 어우러져 사는 것에 대해 조언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홀로서기’와 ‘함께하는 삶’ 사이의 갈등을 고슴도치에 비유합니다. 고슴도치들은 가까이 가면 서로 가시에 찔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시를 눕히고 얼굴을 맞대며 온기를 나눈다고 합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관계도 고슴도치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상처받지 않고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④ 혼자 되는 법을 배우고 즐겨라 친구든, 애인이든, 가족이든 나와 온전히 하나 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각자 개성과 취향, 성향이 달라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이죠. 쇼펜하우어는 지적 능력이 높을수록 혼자 지내려는 경향이 강하고, 지적 능력이 떨어질수록 어울리는 경향이 강하다고 봤습니다. 그런 만큼 어울리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성찰하라고 조언합니다. 또 마음의 평화와 행복은 오직 자신의 고독 안에서 생겨나니 고독을 피하지 말고 독서, 산책, 취미 생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견디고 즐기라고 권합니다.

⑤ 타인에게 호감을 사려고 하지 마라 호감은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때로는 아부, 거짓, 허영을 동원하기도 하지요. 쇼펜하우어는 타인의 평가는 필요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데다 편견덩어리라 결코 정당한 평가를 내리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 평가 때문에 상처받고 자긍심마저 잃을 수 있습니다. 그는 호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자신을 들여다보고 장점을 찾으라고 조언합니다. 자신에게 확신이 생기는 순간 인생이 달라진다면서요.

⑥ 현재를 살아라 동물이 행복한 이유는 고통과 즐거움을 인간보다 적게 느끼기 때문이랍니다. 동물은 인간과 달리 과거의 고통을 담아두지도 않을뿐더러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고 오로지 현재만 살기 때문에 그만큼 근심도 희열도 적습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이미 일어난 고통 혹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현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어리석은 동물은 인간뿐이라고 합니다. 그는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갈 시간은 오늘뿐이라는 생각으로 현재에 충실하라고 강조합니다.

강용수 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관한 논문을 저술했으며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동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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