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한 거리 두기가 길어지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젠 회복할 때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아 정신 건강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정신과 전문의 김병수 교수에게 들었다.
전례 없는 팬데믹이 종식되어가는 분위기다. 3년 가까이 끌어온 팬데믹은 사회적〮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줬지만 개인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도 등장했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우울증 환자가 늘었을까?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시한 통계를 보면 전체 진료 과목은 환자가 줄었는데 정신과만 늘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활동 폭이 좁아져 운동 등을 하며 기분 전환을 할 수도 없는 데다 사회적 단절로 고립감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김병수정신의학과의원 김병수 원장은 우울감이 곧 병증은 아니기 때문에 우울 장애와 우울증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울 장애가 나타나는 경우 전에 없이 자꾸 회사에 지각하거나 업무를 보기 힘들어지는등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다. 또 대인 관계에도 갈등이
생기거나 사람을 잘 안 만나고 집에서 잠만 자려고 하는 식으로 변하기도 한다. 신체적 변화에서도 우울 장애를 판단할 수 있다. 폭식을 하거나, 반대로 입맛이 떨어져서 체중이 빠지기도 한다. 김 원장은 한 사람이 살면서 우울증에 걸릴 평생 유병률은 의학적으로
20% 정도로, 코로나19로 인해 증가한 우울증 환자는 장애가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절히 대처하면 회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일주일에 3~5회 조깅을 하면 우울증 약을 먹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 의심될 때는 일단 산책을 시작해보세요. 운동 강도가 셀수록 효과가 더 좋아집니다. 뻔한 말 같지만 고혈압 환자한테 ‘짜게 드시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김 원장은 단순 반복 행동에 몰입하는 것도 우울증을 이겨내는 한 방법이라고 알려줬다. 한밤중에 갑자기 몇 년 전에 들었던 모욕적인 말이 떠올라 괴롭다면 ‘왜 그때 바보처럼 그 말을 듣고만 있었을까!’라며 한탄하지 말고 콩나물을 다듬거나 청소를 하거나 다리미질을 해보라고 권했다. 생각은 생각이 아니라 신체로 조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울한 이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기다려주는 것이 우선이에요
김 원장은 마스크를 써야 하는 요즘, 소통에 장애가 생길 위험이 높다고 걱정했다. 표정 연구의 대가인 심리학자 폴 에크만은 얼굴 윗부분은 두려움과 슬픔을 표현하고 아랫부분은 행복감, 분노 등을 표현한다고 했다. 복잡하고 미묘한 정서는 얼굴을 총동원해야 제대로 표현된다.
아무리 말로 당신 마음을 알겠다고 해도 얼굴 표정에 진정성이 담겨 있지 않으면 대화 상대는 ‘내 감정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라고 느낄 수밖 에 없다.
“표정은 말에 가려진 진심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요즘은 마스크로 표정을 가려버려서 정서적 정보의 많은 부분을 놓칠 수밖에 없어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소통이 안 되는 부작용이 커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김 원장은 그럼에도 가족이나 친구가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면 위로의 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누군가 힘들다고 할 때 “너만 힘드냐. 나도 죽겠거든”, “너 정도면 살 만한 거잖아”라는 식의 말은 절대 금물이다. 그럴 게 아니라 “네가 요즘 표정이 굳어 있더라.
무슨 일 있니?”, “목소리가 좀 가라앉아 있는데 힘든 일 있으면 말해봐”라고 상대의 우울한 감정을 인정해주고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울해 보이는 사람을 위로하는 가장 좋은 자세는 기다려주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가 우울해 보일 때 옆에서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네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아무리 옳고 현명한 해법이라도 상대가 원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울한 분들이 나를 대화 상대로 선택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상처도 아물기 때문입니다.”
김 원장은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근무하다 우울증에 걸린 이들의 이야기를 더 잘 들어주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붙인 의원을 개원했다고 한다. 김병수라는 이름을 내건 이유도 정신과 의사는 의사 자체가 진단 도구이자 치료 도구라서 의사가 누구인지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나만의 것을 찾으세요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수년째 1위를 차지했다. 그렇다고 핀란드 국민들은 매일매일 기분이 좋을까? 김 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핀란드의 우울증 유병률은 세계 9위이며,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조사한 138개국의 긍정 정서 경험 점수에서는 28등을 기록했다. 이 조사에서는 파라과이와 파나마, 과테말라가 각각 1, 2, 3위를 차지했다. 김 원장은 행복과 긍정적 감정을 동일시하지 말라며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해라. 행복해야 잘 사는 것이다’라는 말에도 현혹되지 말라고 충고했다. 이런 식으로 몰아가면 사람은 더 불행해 진다며 5,000만 명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에는 5,000만 가지 서로 다른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강조했다.
“다 가진 것 같은데 불행하다는 사람도 있고, 나는 일할 때 괴로운데 전념할 때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행복은 절대로 100% 충족될 수 없고, 비교 대상도 아니며, 누군가가 알려줄 수도 없는 겁니다. 행복을 느끼려면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만의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김 원장은 요즘 자신의 일상을 SNS에 올려 ‘나 잘 살아요’라는 듯이 보여주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오히려 행복을 방해하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잘 산다는 것은 금전적으로 풍족한 상태가 아니라 내 삶에 만족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비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고양이 털을 만져주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도 있고, 거실에서 노을을 바라볼 때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사실에 행복해지는 사람도 있어요. 이처럼 자신만이 느끼는 편안함, 행복감, 즉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기쁨’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의 말처럼 오늘부터 남과 비교하지 말고 소소하지만 나만의 은밀한 기쁨을 찾는 데 몰두해보자. 어느 순간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