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의 명물 부곡통닭

먹거리 시장으로 유명한 의왕 부곡도깨비시장.
이곳에서 닭으로 전설을 써 내려가는 통닭집을 찾았다.

글. 박찬일 사진. 전재호

“부모님이 이 지역에서 통닭집을 차리고 제가 물려받았어요. 제 자식이 3대로 물려받았으면 해요.”
2대 사장 황대성(44) 씨의 말이다. 통닭집, 치킨집이 2대를 이어가는 것도 드문 일이고, 그것도 노포라니 더 놀랍다. 의왕시 삼동에 있는 ‘부곡통닭’은 황영근(73) 씨와 이행순(64) 씨 부부가 1975년에 차린 통닭집이다. 만 47년이다. 이름부터 창업 당시 그대로다. Since 1975, 맛은 그대로 가격도 착한 통닭 가게는 시장 한쪽에 있는데,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오랜 단골이 많아 인기가 높다. 이 일대는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전통시장인 부곡도깨비시장이다. 행정구역은 의왕시에 속하지만 ‘부곡’이라는 옛 지명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부곡(의왕)은 서울과 수원을 잇는 철도역이 있어서 이름이 알려졌는데, 근처의 안양과 수원이 큰 도시가 되는 동안 작지만 독자적 도시로 성장했다.

부곡통닭은 엄청 깔끔하다. 기름을 쓰는 업소에서 이런 위생상태는 대표의 영업 철학을 대변한다.
“어머니가 워낙 깔끔하세요. 제게 가게를 물려주시고 지금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십니다.”
황 대표 부모님이 이 동네에 와서 생업을 삼은 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당시만 해도 통닭집은 생닭을 진열하고 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튀겨 주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 광경을 보았으니까요. 아버지는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고 어머니가 닭을 튀기셨죠.”
노포가 된 통닭집이라니! 프랜차이즈가 대세인 시대에 참으로 특별한 경우다. 여기서 통닭은 옛날통닭을 말한다. 가볍게 밀가루를 묻혀 튀기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닭에 칼집을 넣어 가마솥에 튀긴 걸 말한다. 치킨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양념 파우더를 입혀 튀기는 현대식 프라이드치킨을 뜻한다.

메뉴판만 봐도 치킨의 시대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 수 있다. 옛날통닭 1만2,900원, 1975프라이드 1만3,900원. 엄청 싸다. 닭 크기는 표준에 속하는 10호 닭이다. 옛날통닭과 1975년은 우리 치킨 외식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1970년대 중반, 옛날식 통닭에서 프라이드치킨으로 대세가 넘어갔다는 뜻이다. 이 가게는 이 두 가지를 같이 하면서 변하는 시대와 힘겹게 싸워왔다.
부곡통닭은 어떻게 이런 싼값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배달 앱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다. 수수료를 내지 않으니 닭을 싸게 제공할 수 있다. 또 가게에 직접 와서 먹는 걸 유도하고 있다. 이곳은 안주가 다양하다. 생맥주를 철저하게 관리해서 맛이 좋은 것도 매출에 한몫한다.
의왕시는 전형적인 소도시이면서 농촌도 병존했다. 그래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다. 황대성 대표의 부친이 오토바이를 몰고 배달할 때부터 있던 일이다.
“요즘도 배달 주문 전화가 ‘월암리 감나무집에 통닭 한 마리 보내줘요’ 하는 식입니다.(웃음) 또는 ‘파란 철 대문집 알죠?’ 이러세요. 오랜 단골들이에요. 아버지 시대엔 그렇게 주문을 받았어요. 뭐, 지번 갖고 다니지 않던 시대의 일화죠.”
의왕시는 역사가 특이한데, 서울 배후 도시이면서 농촌이고, 수원〮안양과 연계 도시이면서 공업 도시이기도 하다. 철도를 만드는 유명한 회사 현대로템 본사가 이곳에 있다. 현대로템은 원래 대우중공업이었다.
“대우중공업이 들어서면서 노동자가 많이 유입됐어요. 그분 들이 저희 집 손님이셨죠. 통닭에 맥주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어요. 어쩌면 우리 가게는 그런 사회사를 다 안고 있는 곳이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 통닭이 프라이드치킨으로 바뀌면서 생맥줏집이 도시 구석구석에 들어서고, 호프집이란 이름으로 대세가 되었다. 1980년대 일이다. 그 시대를 마음으로 복원하려면, 부곡통닭에 가서 프라이드치킨이든 통닭이든 맥주와 함께 뜯으면 된다.

옛날식 가마솥에 튀긴 추억의 맛 부엌으로 들어가봤다. 튀김기가 특이하다. 옛날식 가마솥을 닮았다.
“가마솥을 오래 쓰다가 현대식으로 개조한 걸 찾았어요. 노포라면 조리 도구도 역사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현대 기술로 만든 가마솥이라…. 둥근 가마솥 모양 밑으로 가열하는 설비가 붙어 있다. 기름을 깨끗하게 정제하는 장비도 가동된다. 가마솥 통닭은 옛날 추억의 먹거리로 외형만 의미 있는 게 아니다. 가마솥은 기름 속에서 닭이 고루 회전하며 열이 잘 전달되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더 편리한 현대식 튀김기를 도입할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게 좋았어요. 부모님이 키우신 가게이니 제가 누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죠. 맛있게 해야 하고, 옛 단골도 모셔야 하고, 변화보다 전통을 지켜야 하고….”
젊은 대표로서 상당히 피곤한 일일 수도 있다. 노포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 있다. “이 집 변했네.” 그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한다. 작은 변화도 고민해야 한다.

이 집 주력 메뉴인 옛날통닭은 조리법도 변하지 않았다. 황 대표의 부모님이 통닭 가게를 하게 된 것은 닭전이 아주 크고 유명했으며, 오늘날 통닭 거리로 널리 알려진 수원에서 닭집을 하던 친척의 영향이 크다. 부곡통닭은 여전히 그때 그 방식대로 닭을 튀긴다.
“염지를 안 합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생닭을 바로 기름에 튀 겨요. 그리고 그대로 나갑니다.”
진짜 옛날 맛이다. 소금 맛 하나로 먹는 닭이다. 그래서 프라이드치킨에 길들여진 사람은 아쉬운 맛이 아닐 수 있다. 염지(鹽漬)는 1980년대 이후 알려진 기술이다. 소금과 향신료에 절여서 닭 맛을 좋게 하는 것인데, 과학적으로 결코 나쁜 방식은 아니다. 다만, 염지를 하면서 첨가물을 과도하게 넣는 경우가 많아 이미지가 나빠졌다.
“저희는 주문하면 바로 양념해서 만드는 1975년식 프라이드치킨도 있으니까 옛날통닭만큼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대로 내자고 생각했어요. 전통은 그렇게 해야 지켜지지 않을까 해요.”
옛날통닭과 프라이드치킨을 각각 한 마리씩 시켰다. 과거와 현대가 한 탁자에 올랐다. 통닭집도 노포가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뿌듯함이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