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를 만나다, 자운서원

파주에서는 사적 제525호로 지정된,
율곡 이이의 덕을 기린 자운서원과
가족묘가 자리한 율곡 이이 유적을 만날 수 있다.

글. 이정은 사진. 문화재청, 공공누리, 경기관광포털

율곡 이이 하면 흔히 강릉 오죽헌을 떠올리지만 오죽헌은 태어난 곳이고, 어린 시절 학문을 익히고 관직에서 물러나 후진을 양성하며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파주다. 그의 호 율곡이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서 유래했을 만큼 파주는 그의 학문과 사상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에 파주 법원읍에는 율곡 이이를 기리는 유적지(사적 제525호)가 조성되어 있는데, 위패를 모신 자운서원과 율곡기념관, 모친 신사임당과 이이를 포함한 가족묘가 있다.
자운서원은 율곡의 사후 조선 광해군 때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앙하기 위해 파주 자운산 기슭에 지역 유림이 창건한 서원으로, 효종이 ‘자운(慈雲)’ 현판을 하사하면서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사액서원은 유럽으로 치면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 격으로 옥스퍼드〮케임브리지〮런던 대학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후 숙종 39년인 1713년에 율곡의 학문을 이어받은 김장생과 박세채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지방 교육을 담당하다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문을 닫는다. 1970년대 정화사업으로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율곡의 정신이 깃든 500년 된 느티나무 유적지에 들어서면 왼쪽 언덕으로 숙종 때 명필 김수증이 예서체로 썼다는 ‘자운서원 묘정비’가 있고, 안으로 더 들어가면 율곡기념관과 자운서원이 나온다.
자운서원 좌우로는 기숙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있고, 그 뒤 중앙에는 강당인 강인당이 자리하고 있다. 강인당 뒤 내삼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가장 뒤쪽에 율곡 사당인 문성사가 나온다. 강당이 앞에 있고 사당이 뒤에 있는 서원의 전형적 형태인 전학후묘(前學後廟) 배치가 특징이다.
자운서원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으니, 마치 강인당을 호위하듯 양옆에 서 있는 500년 된 우람한 느티나무다. 향교나 서원에는 주로 은행나무를 심는데, 이곳에는 특이하게 느티나무를 심었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수로 심는 느티나무는 여름에는 무성한 그늘을, 가을에는 멋진 단풍을 선사한다. 또 초파일 전후에는 어린잎으로 느티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으니, 민생을 중요하게 여긴 율곡 정신을 기리기 위해 느티나무를 심은 것은 아닐까?
자운서원 왼편으로는 율곡의 부모, 율곡 내외를 비롯해 한 가족묘 13기가 모여 있는데, 율곡 내외의 묘가 부모인 이원수와 신사임당의 합장묘보다 더 위에 있다. 효를 중시한 조선 시대에도 자녀가 입신한 경우 그 묘는 부모의 묘소보다 위쪽에 두기도 했다고 한다.
사임당 내외의 묘와 율곡 내외의 묘 앞에는 묘비와 망주석·문인석·석등이 놓여 있는데, 조촐하고 소박하다. 율곡이 죽었을 당시 장례 비용이 없어 친구들이 십시일반 모아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묘역은 꽤 높은 곳에 위치해 멀리 임진강과 화석정이 한눈에 굽어 보인다. 화석정은 율곡의 5대조가 1443년에 지어 대물림한 정자로, 그 아랫마을에 율곡의 본가가 있었다. 율곡은 화석정에서 제자들과 함께 시와 학문 논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정자 안에는 율곡이 여덟 살 때 지었다는 시도 있으니, 임진강의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한 수 읊어봐도 좋겠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