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우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핑크유자밴드

핑크유자밴드는 암을 극복한 환자들로 구성한 밴드다.
평소 유방 자가 검진 강사로도 활동하며 틈나는 대로 밴드 활동을 하는 이들은 경기도 거리로 나온 예술가,
버스커즈로 활약하며 많은 이에게 위로와 응원을 전하고 있다.

글. 이선민 사진. 전재호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지난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행주산성과 행주산성 역사공원 일원에서도 오랜만에 ‘고양행주문화제’가 열렸다. 체험 행사와 각종 공연이 진행되는 가운데 행사장 한쪽에 펼쳐진 무대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흥겨운 7080 가요와 팝송을 열창하는 가수들의 무대다. 주인공은 고양시 공식 거리 예술단체인 고양버스커즈 회원으로 활동하는 핑크유자밴드다. 강렬한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이들은 흥겨운 박수 소리에 맞춰 1시간 동안 쉼 없이 열창했다. 관객이 이들에게 더욱 주목한 것은 핑크유자밴드 구성원이 유방암을 이겨낸 환자와 그 가족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자 몇몇 사람이 이들을 찾아가 함께 사진을 찍으며 감동을 받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런 풍경은 핑크유자밴드가 공연을 펼치는 곳이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갈수록 유방암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예요.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공연장에서 유방암 환자를 만납니다. 어떤 분은 유방암 발병 후 좌절하고 힘들어하다가 저희 공연을 보고 펑펑 우시며 고맙다고 하셨어요. 우리 밴드가 활동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리더를 맡은 고경자 씨는 핑크유자라는 말이 유방암을 상징하는 핑크 리본의 ‘핑크’와 유방 자가 검진의 앞 글자 ‘유자’를 합친 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가 검진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암이 유방암이라며 자가 검진의 필요성과 암 환자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기 위해 강사로 일하는 사람들이 2015년 밴드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병원과 요양원은 물론, 자신들을 부르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공연을 하고 있다.

유방 자가 검진 필요성을 알리는 강사들이 노래로 메시지 전달 핑크유자밴드 멤버들은 모두 핑크유자밴드강사협의회 소속이다. 핑크유자밴드강사협의회는 한국유방암예방강사협회 산하 단체로, 유방 자가 검진 교육을 통해 조기 검진율을 높이기 위해 여자대학교와 여자고등학교를 비롯해 보건소, 모유수유교실, 다문화 가정, 각 기업체와 유방암 환우회 등에서 활약 중이다. 이들은 유방암 환자와 가족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직접 겪은 암 진단과 치료 과정의 고통스러운 체험을 일반 여성에게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유방 자가 검진을 실천하는 데 일조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강사들이 만든 밴드가 바로 핑크유자밴드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강의할 때 유방이라는 단어를 쓰면 다들 어색해했어요. 그래서 그런 편견을 없애고 다른 암 환자들과 가족에게 용기를 주자는 차원에서 핑크유자밴드를 결성했습니다. 유방암은 치료는 되지만 완치라는 말은 쓸 수 없어요. 그래서 초창기에는 밴드 멤버들이 7~8명이었지만, 중간에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자꾸 발생하면서 현재 3명으로 꾸려가고 있어요.” 고경자 씨는 유방암 환자였다는 신파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밴드로 인정받기 위해 매주 목요일이면 일산에 있는 한 음악실을 빌려 4~5시간씩 연습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공연이 많아도 이 연습 시간만은 반드시 사수하는 것이 이들의 암묵적 규율이다. 또 공연을 통해 얻은 수익은 연말에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한다.

암 환자들이 우리를 보고 힘을 낼 수 있길 고경자 씨는 2005년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녀가 힘을 내고 다시 봉사 활동에 나서기까지 약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수술 후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을 때 남은 인생은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며 보내자는 생각으로 밴드를 만들었어요. 저처럼 다른 멤버들도 더 즐겁게 인생을 즐기고, 그 즐거움을 다른 이들과 나누자는 생각으로 밴드에 참여했어요.”
또 다른 멤버인 임순애 씨는 2011년 암 수술을 받았다. 그녀는 암 수술 후 곧바로 유방 자가 검진 관련 수업과 실습 교육을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에서 수료한 후 핑크유자밴드 강사로 일하고 있다. 평소 통기타를 차던 그녀가 밴드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그 당시 밴드에 필요한 것은 베이스를 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금세 베이스를 익혀 밴드 멤버가 됐다.
“유방암은 전염병이 아니에요.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 우리를 보고 힘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유방이라는 음지의 언어를 이제는 당당하게 쓸 수 있게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커요.” 이들과 달리 고선자 씨는 유방암 환자는 아니다. 고경자 씨의 동생인 고선자 씨는 딸 셋 중 유일하게 유방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다. 고경자 씨와 언니가 밴드를 운영하다가 큰언니가 다시 투 병 생활에 들어가자 힘들어하는 고경자 씨를 돕고자 합류했다. 악기를 다룰 줄 몰랐지만, 건반이 필요하다는 말에 곧바로 건반을 배워 이젠 밴드 안에서 대체 불가 멤버로 성장했다.

경기도 예술 지원은 밴드의 큰 힘 핑크유자밴드가 공연을 많이 할 수 있는 데에는 경기도의 ‘거리로 나온 예술’ 사업의 도움이 컸다. 거리로 나온 예술 사업은 거리에서 공연 또는 미술 작품 전시 등 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재능 있는 생활 예술인과 예술인을 선발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들은 거리로 나온 예술 사업을 통해 경기도 곳곳에서 각종 행사에 참여해 공연하며, 김포와 고양의 버스커즈로도 활약 중이다. “유방암은 완치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암이에요.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재발할 위험도 커요. 관객에게 희망을 주려고 공연을 했는데, 매번 공연 후 느끼는 것이 우리가 응원을 받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공연이 아무리 힘들어도 몸은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간혹 공연 전 이들이 유방암 환자였다는 사실을 밝히면 굳이 그런걸 알리느냐며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럴수록 이들은 더더욱 당당하게 희망을 전하려 노력한다. 매 공연 새로운 옷을 입는다는 이들의 밴드에 대한 열정은 핑크유자밴드 유튜브인 핑크유자TV에서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