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장사익의
즐거운 인생

소리꾼 장사익이 세 번의 성대 수술을 하고 혹독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건강해진 모습으로 노래 공양을 시작했다. 10년 후를 위해 첫 벽돌을 쌓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장사익에게 인생을 꽃피울 비결을 들어보았다.

글. 이선민 사진. 전재호

우리는 한동안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미덕인 시대를 살았다. 봄을 지나 여름의 기운이 느껴지는 요즘 들어 다시 사람을 만나려 하지만 그 미덕을 버리기가 어디 쉬운가. 그런데 여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다”라고 목청을 높인 이가 있다. 바로 장사익이다.
“인류의 역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부딪히면서 쌓여왔어요. 그런데 서로 멀어지는 게 미덕인 시대가 됐죠. 아직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다시 만나야 하는 시간이 왔어요. 일상을 되찾는 게 행복인데, 일상이 별건가요? 애인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서 술 한잔하고 밥 먹는 거죠. 가족도 만나고 아픈 사람도 만나고요.”
허허로운 웃음으로 다시 만남을 이야기하는 그 역시 팬데믹 기간 동안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2016년 성대 수술을 했는데 2018년 재수술을 해야 했고,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세 번째 수술을 했다. 게다가 소리꾼이 설 무대가 사라져 막막했고, 공연을 못하니 함께하는 스태프도 어려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소리꾼이 노래를 못 하게 된 건 마라톤 선수에게 다리가 성하지 않으니 달리지 말라는 것과 같아요. 팬데믹 기간을 힘들게 보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무리하지 않고 재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더라고요. 덕분에 지금 노래를 할 수 있으니 전화위복인 셈이지요.”




그는 오히려 재활을 거치며 새로운 창법, 발성법까지 습득한 좋은 기회였다고 자평했다. 목만 사용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성악처럼 배의 힘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됐다고. 덕분에 지금은 10시간 내내 노래를 불러도 목소리가 변하지 않는단다. “인생은 즐거움보다 슬프고 힘든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행복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고 견뎌내고 나면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오는 거죠.” 그가 역경을 딛고 다시 무대에 올라 들려주는 한 맺힌 소리는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낸 우리를 위로하는 노래 공양인 셈이다.

과정을 차근차근 밟다 보면 무엇이라도 나오지 않겄소? 장사익은 나이 마흔다섯에 데뷔한 늦깎이 소리꾼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딸기 장수, 보험회사 직원, 외판원, 경리 과장, 카센터 직원등 무려 열다섯 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우연히 김덕수 사물놀이패에 들어가 태평소를 불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 나오는 태평소 소리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그렇게 연주자로 지내던 그가 공연 후 뒤풀이 자리에서 부른 ‘대전블루스’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한 맺힌 그의 음색에 반한 지인들이 신나게 한판 벌여보자며 성화를 부려 홍대 앞 소극장 무대에 섰는데, 100명 정원인 공연장에 400명씩 몰리며 아예 가수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국화한테 봄여름에 뭐 하다 이제야 피었는지 물어볼 수 있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꽃처럼 가을에 피는 사람도 있고, 봄이나 여름에 피는 사람도 있지요.”

가수 데뷔는 늦었지만 그의 삶은 음악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기타와 피아노, 태평소, 대금 등 여러 악기를 다루었을 뿐아니라 가요를 배웠고 국악과 클래식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 내공이 쌓여 모두가 그의 노래에 열광하는 것인지 모른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과정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옛날엔 누구를 좋아하게 되면 밤새 시집을 뒤적이며 이것저것 좋은 구절을 짜깁기해서 연애 편지를 썼죠. 결과물은 연애 편지지만 그 과정은 시집을 탐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러면서 누군가는 시인이 되기도 했죠. 요즘 사람들은 연애 편지를 쓸 때도 스마트폰을 켜면 거기 다 있어요. 과정이 사라진 삶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장사익은 지금은 고인이 된 산악인 박영석과 나눈 인상 깊은 대화도 들려줬다. 마지막 등반을 가기 전 그를 찾아온 박영석은 자신의 최종 목표는 안나푸르나 정상이지만 당장은 자신이 걸어야 할 1m에 집중한다고 말했단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1m를 완수 하지 못하면 안나푸르나는커녕 등반 자체를 실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1m, 1m를 묵묵히 걷다 보면 어느새 목표하던 안나푸르나에 도착해 있다고. 장사익은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자신을 담금질해 때를 기다리는 과정을 거친 사람은 결과와 상관없이 행복합니다. 그리고 10년만 파고들면 안 되는 게 없더라고요. 목표를 정하고 그 길을 향해 1m, 1m 걷듯이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원하던 곳에 도달할 거예요. 또 목표까지 가지 못하면 어때요! 목표도 없고 하루하루 대충 살던 사람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 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는 노래 외에도 캘리그래피, 마라톤, 사진 등 취미 생활도 끊임없이 연습하고 노력하며 전시회를 열 정도로 파고든다. 일단 시작하면 10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매달리고 쌓아온 그가 하는 말에서는 단단한 힘이 느껴진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무대로 노래 공양 받으시오 그는 올해 들어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많은 이의 기립 박수를 받고, 평택〮구리〮울산 등 전국을 돌며 공연을 재개했다. 무대에 올라 1~2시간 동안 몰입하다 보면 몸이 힘든 줄도 모른다는 그의 노래는 여전히 명불허전이다. 그의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전율이 느껴진다거나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말한다. 탁한 듯 한이 서린 목소리의 힘이기도 하지만 가사의 위력이기도 하다. “‘찔레꽃’처럼 제가 작사한 노래도 있지만 대부분 다른 사람의 시에서 가져왔어요. 평소 시집을 많이 읽는데, 제가 가사를 쓰는 것보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시에 담겨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소리에 집중하고 제 가슴에 꽂히는 시를 가사로 삼고 있지요. 당분간 공연은 쉬고 좋은 시에 곡을 붙이는 작업을 해서 다시 관객을 만날 예정입니다.” 요즘 그에게 꽂힌 시는 마동기 시인의 ‘우화의 강’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중략)/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장사익은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만나자’고 외치며 다시 무대에 설 예정이다. 10월 5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소리꾼의 진심을 전해줄 그의 무대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