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국물 맛의 진수 남양주 잔고개소머리곰탕

주말이면 도심 근교로 나들이 나온 차량으로 붐비는
남양주시 와부읍 삼패IC 부근. 이곳에 2대째 진한 국물로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는 집이 있다. 바로 잔고개소머리곰탕집이다.

글. 박찬일 사진. 전재호

“청소하기 힘들어도 가마솥에 끓여야 맛이 나지요. 저희 집 자랑입니다.”
1대 대표 이희주(60) 씨의 말이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게 주방 입구이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이 노포의 기운이 서린 가마솥이다. 얼마나 잘 닦고 간수하는지, 반들반들 윤이 난다.
“탕은 국물이고, 이걸 잘 내야 맛이 납니다. 그러니 가마솥을 포기 할 수 없어요.”
이 대표는 이미 아들에게 가게를 물려주었다. 사업자 명의도 넘겼다. 그래도 오래 지킨 가게에 대한 애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아이가 하고 싶다니 믿고 주었어요. 제대하고 일 도와주는 걸 쭉 지켜보니 쓸 만합디다. 대학을 다녔는데, 그만두고 식당을 하고 싶다는 겁니다. 말리다가 꼭 하고 싶다고 해서 한번 해봐라 했지요. 전 농사짓고 싶어서 미련 없이 맡겼어요.”
뒤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 전임(前任) 대표는 이제 원 없이 농사를 짓는다.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읍 덕소리에 소재한 잔고개소머리곰탕에서는 그렇게 대를 이어 불을 지피고 있다.

눈썰미로 익힌 맛에서 명품 소머리곰탕으로 본디 이 동네는 와부면에 속했는데 인구가 늘면서 와부읍이 되었다. 원래 남양주군은 양주군 소속이었다가 1980년에 분리되어 나왔다. 1980년도 무렵 이 지역은 농토와 산악으로 이루어진 농촌이었다.
‘잔고개’라는 단어가 예뻐서 물어보니 ‘높지 않은 언덕’을 뜻한다고 한다. 이 집에서 주력하는 메뉴는 상호처럼 한우 소머리곰탕이다. 양지머리로 끓이는 곰탕도 맛있고, 여름 메뉴로 인기 있는 삼계탕이며 초계국수도 좋다. 꽤 넓은 가게 곳곳이 정갈한 데다 직원들도 싹싹하다. 메뉴가 노포치고는 많은 편인데, 다 이유가 있다. “동네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단골 중심이지요. 최근 주변에 많이 들어선 아파트 사는 사람들은 그다지 잘 아는 가게는 아니에요. 단골들이 먹고 싶어 하는 메뉴를 하나씩 더하다 보니 가짓수가 늘었지요. 여름엔 탕을 많이 찾지 않아 초계국수 같은 계절 메뉴를 냅니다.”
손님은 대부분 이 지역에 오래 살고 있는 토박이들이다. 또 근처에 골프장이 많아 라운드하러 오고 가다 들르는 손님, 그리고 건설 붐을 타고 공사 현장이 많다 보니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아침과 점심을 이곳에서 많이 해결한다. 새벽 6시에 문을 여는 것도 이런 손님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이곳을 열기 전에 요리사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눈썰미로 맛을 잘 잡았다. 이 지역은 전통적 농촌으로 솥 걸어서 탕 끓이고 소, 돼지 잡는 마을 행사가 잦았는데 그때마다 그는 맛 잘 내는 청년이었다고 한다. 그런 눈치가 명품 소머리곰탕의 바탕이 되었다. 요즘이야 유튜브도 있고, 요리책도 많지만 이희주 대표가 가게를 연 40여 년 전에는 그저 감각에 의존해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가게가 어엿하게 노포 반열에 들었으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초창기엔 오리를 팔았다. 당시 오리 사육이 붐이었고, 그 바람을 탄 셈이다. 하지만 금세 인기가 사그라들자 현재의 곰탕이 주메뉴가 되었다. 가게 앞에 오래된 집이 한 채 있는데, 본래 이 대표 가족이 살던 집으로 1층이 식당이었다고 한다.
“부친이 정정하십니다. 올해 아흔인데, 저랑 같이 농사를 지을 정도예요. 어른 모시고 식당 하고 농사짓고 그렇게 살았어요. 아들이 둘 있는데, 마침 둘째가 하겠다고 하니 저는 마음 편하게 물려주고 아버지랑 농사짓는 게 재미있습니다.”
이희주 대표의 아들 우찬(30) 씨는 올해로 5년째 가게를 맡아 하고 있다. 집에서 새벽에 나와 밤 9시나 되어야 일이 끝난다. 젊은 청년이 노포를 끌고 가는 것이 필자 눈에도 대견하다. 쉬는 날도 없이 거의 1년 내내 가게를 지킨다. 별난 청년이다. 우찬 씨가 수줍게 말한다.
“서빙으로 시작해서 이제 불을 봐요. 아직도 잘 몰라서 아버지한테 여쭤보곤 합니다.”
곰탕에 해장국에 메뉴가 여럿 있지만, 기본은 소머리와 양지머리에서 나오는 국이다. 특히 소머리를 다루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머리째 받아서 국물을 낸다. 요즘은 소머리곰탕이라고 해도 뼈 따로 고고 살 발라서 삶은 것을 끓여 내는 집도 많다. 하지만 이집은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종일 끓이던 솥을 자정쯤에 한 번 끄고 청소합니다. 새벽 3시 반쯤 다시 불을 붙여요. 24시간 정도 끓여야 탕이 나옵니다. 양지머리와 소머리 넣는 시간 배분, 타이밍 같은 게 노하우죠. 한 가지 말씀드리면, 양지머리로 국물을 내고 거기에 소머리를 다시 끓여서 진하게 맛을 냅니다. 그게 비결이에요.” 고기양과 국물의 밀도가 조화를 이룬 맛 곰탕, 설렁탕, 양지탕 같은 국물 요리는 고기양과 국물의 밀도가 딱 일치하지 않는다. 그걸 이리저리 맞추는 게 탕집 주방장의 능력이라고, 이 바닥에서는 말한다. 이희주 대표는 그 이치를 알게 되었고, 그게 이 가게가 장수하는 비결 같다.

예전엔 근처에 도축장이 있어 이 대표가 직접 소머리를 떼어오곤 했다. 옛날 소는 머리가 크고 국물이 잘 나왔으며 살집이 좋았다. 가격도 쌌다. 요새는 많이 올랐고, 거세를 하기 때문에 원하는 황소머리를 구하기 어렵다. 아들 우찬 씨도 이 가게에서 전업으로 일한 만 5년 동안 황소머리를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한다.
“황소가 살이 많고 국물도 좋아요. 하지만 이젠 거의 비육하기 때문에 황소가 필요 없잖아요. 그러니 소머리곰탕 내는 일이 더 힘들어진 거지요.”
일소인 황소는 열 살이 넘은 다 자란 소이므로 도축하면 아주 컸다. 요새 암소는 새끼를 낳아야 하니 숫자가 많지만, 황소는 씨소만 남기고 다 거세한다. 거세우는 옛날 황소보다 체중은 많이 나가지만(비육우이므로) 완전히 성숙한 소가 아니므로 머리는 크지 않다. 머리 무게의 대부분은 지방이 차지한다. 이런 면에서 ‘투뿔’이니 하는 근내지방이 많은 한우는 어쩌면 하나의 그늘이라 할 수 있다. 국물 맛이 깊지만 지나치게 뽀얗지 않고 개운한 느낌이 이 집 탕의 특징이다. 먹고 돌아서면 생각나는 맛이다. 남양주 일대의 노포를 찾고 있었는데, 지역 사업 열심히 하는 토박이 로터리클럽 사무국장과 선이 닿아서 소개받아 취재할 수 있었다. 남양주 와부, 덕소 토박이가 인정하는 진짜 맛집이자 노포를 독자들에게 글과 사진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안일옥 주소 경기도 안성시 중앙로411번길 20
문의 031-675-2486

박찬일 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쓰며 사회 문화적으로 노포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는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이 있고 <수요 미식회> 등 주요 방송에 출연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