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탕에서 스페셜티 커피까지 어바웃 커피

원두와 로스팅, 분쇄 굵기, 물 온도 등에 따라 시시각각 풍미가 달라지는 매력적인 커피의 시대별 변천사.

글. 이정은

또 BTS(방탄소년단)다. 이번엔 커피. 그것도 커피 종주국 자부심 최강인 이탈리아에서. 로마의 중심가에 위치한 캄포 데 피오리 광장의 한 카페에서 ‘지민 카푸치노’를 판매하는데, 로마뿐 아니라 이탈리아 내 타 지역에서도 이 커피를 맛보기 위해 수많은 아미가 찾아온다고. 지민 카푸치노는 지민이 브이라이브에서 만든 달고나 커피로,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BBC 방송에서 K-달고나 커피 제조법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서양음악이 BTS에 의해 K-팝으로 진화했듯이, 서양 음료 커피가 이제는 독창적인 K-커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커피 애호가 고종, 최초의 황실 카페 정관헌 우리나라 커피 역사는 조선 말 서양에 문호를 개방하면서부터 시작한다. 1800년대 후반 조선으로 온 각국의 외교관과 선교사는 조선 왕실과 관료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커피를 바쳤다. 당시에는 커피를 ‘양탕(서양인이 준 탕국)’이라 불렀다. 고종은 아관 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 애호가가 됐다고 한다. 고종은 주로 정관헌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이곳은 다과를 들거나 외교 사절단을 맞아 연회를 베푸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덕수궁 안에 지은 회랑으로 늘 커피 향이 흘렀다. 한 나라 왕이 커피를 애호했으니 시중에 커피 문화가 확산된 건 당연지사. 1911년 남대문 근처에 ‘카페타이거’가 문을 열면서 커피를 파는 업소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끽다점·바·다실·살롱·카페 등 이름도 다양했는데, 수많은 문화 예술인이 모여 사랑을 나누고 예술을 논한 사교와 문화 예술 공간이었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다방 문화는 잠시 쇠퇴기를 맞았으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명동을 중심으로 다시 생겨났다. 명동의 다방은 문화 예술인의 아지트였고, 통기타 청춘의 대명사였다. 팝송을 들으려고 다방을 찾는 젊은이가 많았는데, 그 여세에 힘입어 명동의 쎄시봉 등 음악다방이 성행했다. 또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약속 시간이 지났어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이 다방의 전축 위에서 계속 돌아가던 시절이었다.

나를 위한 작은 사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커피 믹스와 자판기의 등장으로 커피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한국형 커피 문화도 형성됐다. 그러나 1999년에 등장한 스타벅스는 한국인의 커피 취향뿐 아니라 문화에도 적지 않은 파동을 일으켰다. 획일적 맛의 인스턴트 커피에서 다양한 맛의 원두커피가 전파됐고, 테이크아웃 문화가 유행을 선도했다. 어느새 바리스타가 인기 직종으로 떠올랐으며, 핸드 드립이나 콜드브루 등 추출 방식도 다양해졌다.
스페셜티 커피는 가장 높은 등급의 고품질 맛과 향을 지닌 커피로 재배부터 수확, 운반 과정과 로스팅, 추출까지 모든 과정에서 ‘스페셜함’을 추구한다. 값이 비싸더라도 입맛에 맞게 마시고 싶은 욕망이 스페셜티 커피 붐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건강을 생각해서 카페인을 줄인 디카페인 커피, 커피콩 대신 민들레〮치커리〮과라나 열매 등으로 만든 대체 커피까지 등장하면서 커피의 영역도 한층 더 스페셜해지고 있다. 쌉쌀하면서도 달콤하고, 산뜻하면서도 새콤하며, 구수하면서도 깔끔한 커피의 다양한 맛이 일상을 향긋하게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