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로 기회 잡고 예술로 감동 전하는 샌드 아트 박은수 작가

세상 흔하디흔한 모래가 박은수 작가에게는 ‘기회’였다.
마흔 넘어 만난 샌드 아트로
예술가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최경록

혼자 눈물 흘리는 아이에게 도움의 손길이 모여 새싹이 싹트고, 새싹이 민들레 홀씨로 자라 꿈을 찾아 날아간다는 이야기가 경쾌한 음악과 함께 모래 그림으로 이어지자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양평어린이도서관이 주관한 찾아가는 샌드 아트 북 콘서트 ‘빛나는 모래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아이들에게 모래로 감동을 전하는 주인공은 샌드 아트 작가 박은수 씨. 샌드 아트는 라이트 박스 위에 고운 모래로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종합 공연 예술이다.
“TV에서 봤는데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저게 내가 갈 길이다’ 싶더라고요. 결혼 후 평범한 주부로 살면서 예술에 대한 갈망이 있었어요. 그래서 방송통신대 의상학과에 다니고 메이크업도 배웠죠. 그런데 나이와 경력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던 참이었거든요.”
박은수 작가는 지난 2012년 42세의 나이에 샌드 아트를 만났다. 샌드 아트 1세대인 최은영 작가를 사사한 그녀는 ‘귀에서 먼지와 모래가 나올 정도’로 연습해 그 이듬해 한 방송사 영상 공모에서 수상하며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우연히 본 샌드 아트로 인생 2막을 연 것이다 .

예술인 기회소득은 관객이 쳐주는 박수 샌드 아트는 성격도 바꿔놓았다. 내성적이라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두려워했는데, 지금은 무대에 서면 오히려 자신감이 차 오른다. 무대 공포증을 이겨내기 위해 재능 기부로 수년 동안 매달 했던 교도소 공연은 보람과 긍지도 심어주었다.
“짧은 시간 안에 감동을 주어야 하기에 무엇보다 스토리가 중요해요. 음악이 배경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음악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야 하고요. 영상으로도 제작하다 보니 영상 편집도 해야 하죠. 어디 그뿐인가요? 다른 공연에 비해 장비가 많이 필요해서 장비도 잘 다뤄야 합니다.”
샌드 아트가 종합예술이다 보니 알아야 할 것도, 해야 할 일도 많다.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라 끊임없이 담금질했다.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관객이 있어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박은수 작가는 예술인 기회소득도 일종의 ‘관객의 박수’와 같다고 말한다. 또한 활동을 시작하는 예술가들에게는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도 샌드 아트를 처음 배울 때 비싼 레슨비가 부담됐는데, 그때 예술인 기회소득이 있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코로나 엔데믹 선언 이후 공연 요청이 봇물처럼 밀려드는 지금, 박은수 작가는 학교 공연을 우선순위에 둔다. 한참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주입식 교육이 아닌 감성적 공연으로 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달할 수 있고 체험 등을 통해 예술적 표현 능력도 키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나 사막에 가면 널린 게 모래다. 그러나 그 보잘것없는 모래 한 줌이 샌드 아트에서는 예술로 승화되어 감동을 주는 귀한 존재다. 세상에 쓸모없는, 하찮은 존재는 없다. 샌드 아트를 하면서 박은수 작가가 깨달은, 그리고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