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만두 맛을 알아? 만두의 정석,
수원만두

수원은 노포가 많은 도시다. 특히 행궁 주변은 수원의 오랜 역사 지구로 노포가 즐비하다.
그중 의미 있는 노포 한 곳을 찾았다.

글. 박찬일 사진. 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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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만두. 水原이 아니라 ‘壽園’(장수하는 곳)이라고 쓴다.
“수원에 있으니까 수원이라는 뜻도 들어 있어요.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하면 되겠지요.”
수원만두의 안주인 서란지(69)씨의 말이다. 수원만두는 수원 출신에게는 아주 유명한 집이다. 오래되었고, 맛도 좋은 품위 있는 집, 짜장면과 짬뽕이 없는 집. 수원만두를 수식하는 말은 많다. Since 1972 수원만두는 대만(중화민국) 입법원 의원을 지낸 화교 언진정 선생의 후손이 이끌어가고 있다. 화교는 경기도 수원에서 가장 세가 강했다. 자체 학교도 있었고,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며 수원 시민으로 현재까지 살아오고 있다. 언진정 선생은 1935년생으로, 서울대 문리과대학을 졸업하고 자손을 길렀다. 현재 수원만두는 아들 언배의(70), 며느리 서란지 부부가 이끌어간다.
언씨 집안은 수원에서도 유명한 화교 가문으로 한때 승표간장과 일흥원이라는 큰 규모의 중화요릿집을 운영했다. 승표간장은 필자의 기억에도 남아 있는 간장 회사다. 화교의 여러 품목 중에 간장과 된장이 있었는데, 승표간장은 신문광고를 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수원 화교는 그 뿌리를 인천에 두고 있다. 수인선 열차가 있었으므로, 인천에 모였던 화교들이 자연스레 수원으로 들어 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원만두는 사업자등록상 1972년에 역사가 시작됐다. 이제는 없어진 일흥원의 맥을 잇고 있는 셈이고, 수원만두 자체만으로도 50년 역사가 넘었다.
이 집은 앞서 짜장면, 짬뽕이 없다고 했는데 요리 메뉴는 다양하다. 요즘은 보기 힘든 난젠완쯔(난자완스) 같은 요리도 있고, 오향장육은 매우 독특한 맛이다. 돼지족을 써서 쫄깃 쫄깃 씹히며 산뜻한 맛과 향이 난다. 가지런히 썬 오이를 올려 기품이 느껴진다. 만두와 요리를 취급하지만, 오래전 노포 중화 요릿집의 분위기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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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두를 빚게 될 줄은 몰랐어요. 가업이다 보니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온 셈입니다.”
서 대표는 연희동 화교 출신으로 미술을 전공, 미주 지역으로 유학을 갈 계획이었다. 화교들은 1970~1980년대에 한국의 차별을 피해 미주, 호주 등지로 많이 이주했다. 그도 그런 운명을 겪을 줄 알았다. 그러나 수원만두를 지키게 되었다. 상호답게 이곳은 만두가 주력이다. 손님 대부분 만두는 기본으로 먹고, 요리도 주문한다. 다른 중화요릿집에는 없는 탕면과 탄탄면도 인기다. 짜장면과 짬뽕 말고도 다채로운 요리가 있는 중국 음식의 진경(眞景)을 보여주자는 의도였다. 수원 시민들은 그것을 수용했다. 그리고 수원의 자랑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수원에는 이곳 말고도 오래된 중국 노포가 몇 있다. 이곳들의 역사는 수원의 역사이기도 하다. 유명한 여경래·여경옥 형제 주방장이 바로 수원 출신이다.

육즙을 머금은 만두 맛의 비밀 만두를 내온다. 군만두는 옛날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군만두는 이름만 군만두이지 실제로는 튀김만두다. 수원 만두는 기름을 자작하게 두른 뒤 윗면은 찐 것처럼 촉촉하고, 바닥은 기름에 지지는 옛날 군만두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찐 만두는 소부터 중국 특유의 향이 제대로 난다. 사실상 보기 어려운 물만두도 옛 맛을 보여준다. 이것만으로도 수원만두는 존재 가치가 충분하다.
“우리가 손으로 다 빚어요. 친정 어른들 말씀이, 제가 만두 빚을 줄 알았으면 시집보내지 않았을 거래요.(웃음)”
서 대표는 옛날 시아버지(언진정 선생)가 “란즈(란지)가 만두를 예쁘게 빚는다”고 칭찬하셨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 말이 이후 수십 년간 중화요릿집에서 고단한 만두 만들기의 시작이 될 줄 몰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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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쓰며 사회·문화적으로 노포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는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이 있고 <수요 미식회> 등 주요 방송에 출연해왔다.

이 집은 언배의·서란지 부부의 땀과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가게를 크게 수리하고 가구도 다시 들였다. 어쩐지 평범한 만둣집, 중화요릿집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멋진 인테리어와 소품, 가구가 인상적이었다.
“1990년대에 새로 가게를 꾸밀 때 제일 좋은 것으로 다시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이 집에 가거든 의자와 탁자를 유심히 보라. 예술품 수준의 아주 뛰어난 구조와 손길로 만들었다. 훌륭한 중국 장인의 솜씨다. 이곳에서는 만두 한 그릇을 먹어도 품위 있게 즐길 수 있다. 서 대표는 취재팀을 2층으로 안내했다. 현재 1층만 영업장으로 쓰고 있고, 2층은 가게의 역사 현장이자 작업장이다. 시아버지의 활약상이 드러나는 사진과 가게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록물들이 있다.
만두 소를 배합하는 작업장이기도 한데, 어딘가 좀 특이하다. 너무도 정갈하고 깔끔해서 먼지 하나 없다. 흔히 ‘먼지 하나 없다’는 말은 엄청 깨끗하다는 의미로 쓰는데, 이 집은 정말 그 정도 수준이다. 바닥을 손가락으로 쓸어보니 먼지가 묻어나지 않는다. 냉장고 안도 완벽한 위생 상태를 유지해 감탄만 나온다.
서 대표는 오래된 물건 몇 가지를 소개했는데, 그중 하나가 50년 이상 묵은 춘장이다. 중국요리에서는 보통 ‘면장’이라고 하는 장이다. 지금 춘장은 공장에서 만드는 걸 쓰지만 과거에는 각기 만들어 쓰던 흔적이다. 춘장이 오래 묵어서 수분이 완전히 날아가 돌덩이 같다.
수원의 명망 있는 화교 집안 출신으로 연세도 많은 이 부부가 가게에 들이는 정성은 놀랍다. 요리사 유니폼을 입고, 손님을 맞고, 안내하고, 탁자를 닦는다. 이들의 겸손한 태도가 수원 만두의 위엄을 더 빛나게 한다.
“손님들이 우리 가게를 높게 만들어주셨으니 잘해야지요.”
육즙을 머금은 만두 한 점, 향기로운 요리에 취해 수원 화교의 역사와 수원만두의 시간에 대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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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수원만두 주소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8번길 6
문의 031-255-5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