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 경기도 기후대사 지구를 위한
변론을 시작합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 강금실 전 장관은 요즘 지구를 위한 변론 중이다.
지속 가능한 지구별을 위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권리를
찾아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강 전 장관은
경기도의 첫 기후대사다.

글. 이선민 사진. 전재호
고도원


사회생활을 하면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첫 번째라는 것은 큰 무게로 다가온다. 그런데 평생을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하는 데 온 힘을 쏟아부은 사람이 있다. 바로 강금실 경기도 기후대사다.
“인생에는 카이로스(기회)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카이로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항상 카이로스의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을 상승시키라고 말하고 싶어요. 억지로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도 우습고, 또 기회를 놓치는 것도 좋지 않죠. 법무부장관은 준비와 역량 면에서 힘에 부치는 선택이었지만, 당시에는 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매우 강했습니다.”
강 기후대사는 평생을 살면서 자신의 자리에서 요구되는 사회적 요청, 여성으로서 개척자라는 소명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을 키워왔다. 1990년 여성 최초로 형사 단독 판사를 역임했으며, 2000년 로펌 대표를 여성으로서 처음 맡았고, 2006년 서울시장 후보에 여성으로서 처음 도전하는 등 끊임없이 시대적·상황적 요구에 응해왔다. 그녀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첫 여성 장관이라는 자리를 기꺼이 맡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런 그녀가 이제 경기도 첫 기후대사가 되었다.

강금실
재단법인 지구와사람 대표, 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후 판사, 첫 여성 로펌 대표,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부회장, 첫 여성 법무부장관, 첫 여성 서울시장 후보 등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던 영역을 개척해왔다.
2008년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을 마친 후 2015년 지식 공동체 ‘지구와사람’을 창립해 생태대 문명 패러다임 연구와 전파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지구를 위한 변론>, <지구를 위한 법학>(공저), <생명의 정치>, <오래된 영혼>, <서른의 당신에게> 등이 있다.

하늘과 바람, 나무와 강에도 권리가 있다 강 기후대사는 법조인, 정치인으로 엘리트 코스를 성공적으로 걸어오면서 사회와 권력, 진리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던 중 2008년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생명, 문명, 지구라는 전체적 관점에서 삶과 사회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인간과 사회를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더 나은 사회를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하고 선택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됐습니다. 권력이나 정치가 아닌 지구를 돕는 일을 하는 지금 많이 행복합니다. 그 경로로 접어든 지 벌써 15년이 됐고요.”
대학원을 졸업한 후 지식 공동체 ‘지구와사람’을 만들었다. 우주와 지구, 생명과 인간을 이해하고 거기에서 요구되는 윤리적 인간 사회를 생각해보기 위해 만든 공동체로, 학술·교육·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8년째 함께 활동 중이다. 또 강 기후대사는 대중에게 ‘지구법학(Earth Jurisprudence)’이라는 말을 알리는 데 힘썼다. 지구법학은 2001년 미국의 문명사학자 토머스 베리가 만들어낸 용어다. 지구상에 태어난 존재는 모두 자발성을 지녔으며, 자생적으로 사는 생물이다. 인간 사회의 제도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이를 자원화해 우리가 활용하지만, 지구와 생물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태어나고 서식하고 진화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권리의 본질이 보호되어야 우리도 생물권이 파괴되지 않고 살아 숨 쉴 수 있습니다. 생물권은 지구상에 사는 생물의 권역을 말합니다. 인간 사회는 물론이고 태양열로부터 지구를 보호하는 오존층, 태양복사열을 보존해 기온을 유지해주는 대기권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지금 대기권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아지면서 지구가 너무 뜨거워지는게 기후 위기의 문제죠.” 강 기후대사는 지구상의 지위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지금 시대를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후 위기나 생물 다양성 손실 우려 등 전 지구적 위험이 초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꿈에서 행동으로, 도민과 함께하는
기후대사가 돼야죠

현재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가 1차적으로 화석 연료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제에 당면해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통해 모든 산업과 기업이 환경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전환해야 하는 대전환 시대인 것이다. 산업 단지와 기업이 밀집한 경기도가 RE100 비전을 선포한 것에 대해 강 기후대사는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기후로 인한 전환 과정에서의 일자리 문제는 물론 재난 피해, 더 심각해질 수 있는 양극화에 대한 기후 정의 문제, 기후 난민 문제 등이 이미 시작됐고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기도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도민을 위해, 나아가 우리나라를 위해 RE100 비전을 선포하고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저 역시 기후 위기 대응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기후대사를 기꺼이 맡았죠.”
강 기후대사는 특히 경기도가 조직 개편을 통해 기후에너지국을 신설한 것이 매우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전문가와 공무원들이 힘을 모아 시의적절한 정책과 실천 방안을 내놓을 수 있도록 구성했기 때문이다. 또 경기도탄소중립위원회가 첫 활동을 한 날 인터뷰가 있었는데, 위원회에서 오간 의견이 매우 참신했다며 위원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집집마다 미니 태양광을 설치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아끼자’, ‘아파트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공공 전기 요금 제로 아파트를 만들자’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법적으로 정비되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이처럼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견이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의지가 경기도에는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앞으로 해외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거나 주요 도시를 방문해 경기도를 홍보하고 교류 협력 확대에 기여할 생각입니다. 나아가 도민과 정보를 공유하고 교육을 통해 교류해나가야죠. 또 국내 다른 단체와도 교류 협력을 넓혀나가면서 경기도의 선도적 역할을 홍보할 계획입니다.”
쉽게 버리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만나고 아끼고 함께 오래가는 관계로 연대해나가는 것, 그것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강 기후대사. 그녀의 최근 저서 <지구를 위한 변론>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다시 한번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을 떠올린다. 이 곡의 가사에는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상상해보라.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라는 대목이 있다. 만일 레논이 지금 살아 있다면, 아마도 가사를 바꾸어 노래하지 않았을까. ‘Imagine all the ‘beings’ living life in peace….’ 모든 ‘존재’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상상해보라.” ‘사람’이 ‘존재’로 바뀌었을 것이라는 말이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았다.




강 전 장관은 2021년
<지구를 위한 변론>(김영사)을 펴냈다.
그녀는 이 책에 “하늘에도 나무에도
강에도 권리가 있다”면서 모든
존재가 공생하는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을 위한 생각과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