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문인과 함흥차사가 걷던 경흥길 영평팔경길
영평은 현재 일동면, 이동면 등 포천 북부 지역의 옛 이름이다.
예부터 빼어난 경관으로 시인과 묵객(墨客)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였다.
경흥길 제7길 영평팔경길은 자연의 웅장함과 옛 문인의 이야기를 따라 걷는 길이다.
글. 이인철 사진. 전재호
양사언의 유산과 마주하다
화적연, 와룡암, 선유담, 낙귀정지, 금수정, 백로주, 창옥병, 청학동. 포천의 아름답고 유서 깊은 여덟 곳을 묶어 ‘영평8경’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한탄강을 따라 펼쳐진 이 명소를 찾아가는 길이 바로 영평팔경길이다. 영중농협에서 출발하자마자 영평8경 중 제4경 낙귀정지(樂歸亭址) 안내판이 나온다. 지금은 정자 터에 주춧돌만 남아 있는데, 영의정으로 등용된 중신 황 씨가 관직을 떠나 고향에 돌아와 집 근처에 정자 하나를 짓고 ‘낙귀정’이라 이름을 지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이후 황 씨는 나라를 배반한 혐의로 사약을 받고 죽었는데, 끝까지 무죄를 항변했음에도 살던 집을 빼앗기고 부인, 자식까지 처벌받았다고 한다. 이 설화는 황 씨의 사연을 안타깝게 여긴 마을 사람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다.
경흥길
경기도는 의정부시, 포천시,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경흥대로의 옛 노선을 연구해 고증하고,
원형 노선을 바탕으로 경흥길을 조성했다.
Info
코스 정보
영중농협 ⇨ 낙귀정지 ⇨ 금수정 ⇨ 운산리자연생태공원 ⇨ 주상절리길(구라이길) ⇨ 한탄강지질공원
소요 시간
5시간 30분
거리
18.2km
난이도
구라이길 구간에서는 자연이 빚은 폭포와 주상절리를 감상하며 걷는다.
황 씨의 슬픈 전설을 뒤로하고 영평천을 따라 1시간쯤 걷자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금수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수정은 영평8경의 2경으로 조선 시대 많은 묵객이 이곳을 방문해 시를 짓고 기록을 남겼다. 금수정의 원래 이름은 우두정이지만 안평대군, 김구, 한호와 함께 조선의 문장가로 불리는 양사언이 이름을 바꾸었다. 정자의 주인이 된 양사언은 안동 김씨의 김(金)과 정자가 있는 창수연의 수(水)를 따서 ‘금수정(金水停)’이라고 이름 지었다. 정자에는 양사언의 <봉래시집(蓬萊詩集)>에 수록된 한시 ‘금수정’이 나온다. 이곳을 떠나기 전 양사언의 시를 읊조려본다.
단염청풍지(丹染靑渢枝) 붉은 단풍 푸른 나뭇가지에 들고
천향낙계자(天香落桂子) 천향은 계수나무 열매에 떨어지는데
불견면중인(不見眠中人) 눈앞에 사람도 보이지 않으며
공여석상자(空餘石上字) 부질없이 돌 위에 글씨만 남기네
영평팔경길은 한탄강의 시원한 물소리를 따라 걷는 구간이 많다.
함흥차사가 지나던 주상절리길
금수정 주변에는 많은 암각문이 있다. 조선 최고 명필 한석봉을 비롯해 유명인들의 글씨가 남아 있다. 여유가 있다면 암각문을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금수정 바로 뒤에는 안동 김씨 고가 터가 있다. 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거주했던 안동 김씨의 종택이 있던 곳으로 원래 종택을 언제 지었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건물은 한국전쟁 때 모두 소실됐으며, 전쟁이 끝난 후 후손들이 터를 정리하고 주변에 경작지를 조성했다.
금수정을 벗어나면 포천의 논밭을 배경으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다소 지루한 구간이지만, 길 옆으로 핀 들꽃이 눈을 즐겁게 한다.
운산리자연생태공원에 들어서자 상쾌한 숲 향기가 온몸을 적신다. 단풍나무, 소나무, 잣나무 군락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공원을 수놓은 억새 물결이 가을맞이를 준비 중이다. 운산리자연생태공원을 지나면 구라이골이 나온다. 구라이골은 ‘굴’과 ‘바위’의 합성어로 ‘굴바위’라고도 불리는데, 수풀이 우거지는 여름에는 협곡이 굴처럼 생겼다 해 붙은 이름이다. 50만 년 전 북쪽의 강원도 평강군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만들어낸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으로, 성벽처럼 생긴 주상절리가 장관을 이룬다.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하늘다리에서 잠시 멈춰 이 멋진 풍경을 감상하길 추천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50만 년 전 북쪽의 강원도 평강군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만들어낸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하늘다리를 지나면 포천의 한탄강 주상절리길과 이어진다. 초입에 함흥차사가 지나던 길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함흥차사는 심부름을 간 사람이 소식이 없거나 화답이 좀처럼 오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조선 초 태조 이성계를 모시러 함흥에 갔다 돌아오지 않은 사신을 이르는 말이었다. 이성계가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함흥으로 떠나자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태종 이방원이 아버지를 도성으로 모셔오려고 함흥으로 여러 번 사신을 보냈다. 하지만 이성계는 이방원을 괘씸하게 여겨 한양으로 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사신들을 죽이거나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포천시 경흥로는 바로 함흥차사가 지나던 길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시작됐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걷던 함흥차사의 마음이 어땠을까. 당시 함흥차사를 생각하며 한탄강의 시원한 물소리를 따라 40여 분간 걸어 목적지 한탄강세계지질공원에 도착했다. 영평팔경길에서 마주한 자연이 빚은 아름다운 풍광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다. 어쩌면 옛 문인들은 그 여운을 시로, 글로 남기지 않았을까?
허영호
산악인이자 탐험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3극점과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른 인류 최초의 산악인이다.
드림앤어드벤처 대표로 등반, 트레킹 등 다양한 영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그는 경비행기 세계 일주도 준비 중이다.
Tip

사진 촬영 명소

금수정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에 있는 정자로 영평천의 멋진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정자 현판의 글씨는 양사언이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인근에 있는 안동 김씨 고택도 촬영 명소다.
하늘다리
굽이굽이 흐르는 한탄강을 배경으로 촬영하기 좋은 장소다. 용암이 빚은 깎아지른 듯한 주상절리의 멋진 모습도 한눈에 들어온다.
Info

시작점 찾아가기
버스 도봉산역광역환승센터 ⇨ 영중농협(1386)
주소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로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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