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과 장구의 월드 클래스 김소라 · 현승훈

연희와 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 전통 타악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타악 연주가
김소라 · 현승훈 부부를 여주에서 만났다.
집단성이 강한 국악에서 타악 솔리스트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이 부부의 신명 나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지난해 12월 28일, 국립극장에서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다. 전통 타악 연주가 김소라 씨와 고(故) 김정기 작가의 협업 프로젝트 ‘상상: SangSang’으로, 김정기 작가의 그림과 퍼포먼스 영상에 장구 · 생황 ·아쟁·양금 ·피리 등의 국악기 연주가 어우러진 컬래버레이션 콘서트였다.
현장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로 유명해진 김정기 작가는 ‘라이브 드로잉’의 창시자다. 김소라 씨는 장구 하나로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월드 뮤지션. 두 예술가는 이제껏 접하지 못한 새로운 장르를 통해 예술적 가치와 발전 가능성을 찾고, 각 자의 상상 속 예술 세계에서 그림과 음악이 서로 어우러져 펼치는 또 하나의 예술 장르를 탄생시키기 위해 2021년부터 협업을 시작했다.
“김정기 작가님의 ‘라이브 드로잉’ 유튜브 영상을 봤는데, 배경음악이 많이 아쉽더라고요. 좀 더 특색 있고 예술성 있는 음악이면 좋지 않을까 싶어 찾아뵙고 협업을 제안했죠. 작가님은 저희 음악을 들어보시고 흔쾌히 승낙하셨습니다. 붓 터치가 강한 작가님 화풍이나 그림 소재에 저희 연주가 잘 어울린다고요. 그래서 아주 즐겁게 작품을 만들었지요.”



김정기 작가는 마치 백지 위에서 노래하듯 작은 디테일부터 큰 울림까지 밀도 높은 그림을 끝없이 그려가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표현했고, 김소라 씨는 전통 장단과 선율, 고유의 음색과 성음으로 김정기 작가의 그림에 색과 움직임을 더했다.
그렇게 ‘Sing in the Picture’ 작품 여섯 점이 탄생했다. 그런데 합동 공연을 두 달여 앞 둔 지난해 10월 3일, 김정기 작가가 프랑스 파리에서 일정을 마친 뒤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중 심장마비로 별세하고 말았다.
“공연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작가님을 위해서라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어요. 아트 필름 형식으로 만든 여섯 점의 작품에 연주곡 세 곡을 더했지요. 비록 작가님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아트 필름 영상 속에서 작가님의 예술 세계를 충분히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도 좋아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리는 국악인 그렇게 2022년 마지막을 의미 있는 공연으로 마무리한 김소라 씨와 남편 현승훈 씨를 여주시 보금자리에서 만났다. 아홉 살에 장구를 처음 접하면서 국악 영재로 불린 김소라 씨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7-2호 정읍 농악 이수자이기도 하다. 남편 현승훈 씨 역시 북을 치는 국악인이다. 김덕수 사물 놀이패 공연을 보러 갔다가 북의 매력에 빠진 현승훈 씨는 오랫동안 김덕수 사물놀이패에서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연주와 공연 기획을 하고 있다.
김소라 · 현승훈 부부는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우리 전통 타악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사실 국악기 중에서도 장구나 북은 다른 악기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까닭에 북 · 장구가 메인인 연주곡이나 공연이 별로 없는데, 두 사람은 이 두 악기가 충분히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10여 년 전부터 연주곡을 만들고, 다른 예술가와 합주 또는 협업을 하면서 타악기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타악기는 선율이 없고 어디에나 잘 버무려지는 특징이 있어서 그런지 외국에서 특히 좋아하더라고요.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축제인 영국 워메드(WOMAD) 페스티벌에서 2019년에 공연을 했는데, 3,000~4,000명이나 되는 관객이 저희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추임새를 넣는 거예요. 그때 그 전율을 잊을 수가 없네요.”
2018 월드 뮤직 엑스포 ‘WOMEX’ 공식 쇼케이스 아티스트, 2018 북미 월드 뮤직 서밋 ‘Mundial Montréal’ 공식 쇼케이스 아티스트에 동시 선정되면서 유럽과 북미 월드 뮤직 시장에 성공적 데뷔 무대를 마친 김소라 · 현승훈 부부는 이후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7개국 25개 도시의 유명 극장과 페스티벌 단독 월드 투어를 진행하며 세계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다양한 콘텐츠로 여주의
문화 예술 부흥에도 기여
“젊은 연주자로서 우리만의 색을 가지기 위해 20~30대를 쉬지 않고 달려왔어요. 올해는 국내 활동을 하면서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해요. 여주에 사는 예술인으로서 여주의 문화 예술 부흥에도 기여할 생각이고요. 특히 여주는 국악을 정립한 세종대왕이 잠든 곳이잖아요. 국악인으로서 세종대왕의 업적과 뜻을 기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지난 2017년 공연차 방문했다가 아름다운 풍광에 마음을 빼앗겨 아예 여주로 이사 온 김소라 · 현승훈 부부는 그동안 한국도자재단과 함께 ‘도자 전시 특별전-타악기 연주가 김소라 공연’ 영상을 만들어 여주시 유튜브 채널과 필라델피아 포크 페스티벌 온라인 플랫폼에 공개하고, 여주세종문화재단의 초대로 ‘타악기의 항해’라는 공연을 하는 등 여주의 자연, 문화와 공연 예술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또 전통 예술원을 설립해 여주 청소년들이 즐길 만한 문화 공간과 전통 연희를 배울 수 있는 학습 공간을 조성할 생각이다.
장구에 프로젝션 매핑 기술을 입혀 스토리를 영상과 소리로 전하는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기도 하고, 현대무용가와 오케스트라, 화가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하는 등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멈추지 않는 김소라 ·현승훈 부부. 전통 장단을 바탕으로 새로운 타법을 선보이며 ‘국악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이 부부의 신명 나는 공연 영상은 홈페이지(www.sorakim.org), 유튜브(Kim So Ra)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