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요리 노포 성남 미락 복집

독을 품었지만 한국인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겨울 별미, 복 요리.
분당에 시원한 국물 맛이 속을 따뜻하 게 데워주는 복 요리 노포가
있다. 이 집이 백년가게로 선정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글. 박찬일 사진. 전재호


성남은 원래 광주군에 속하는 너른 논밭, 야산 지대였다. 서울의 무허가 주택 주민들을 이주시킨 ‘광주대단지’가 지금의 성남이 되었다. 이후에는 모두 알다시피 분당 신도시 건설로 경기도에서도 아주 큰 도시로 성장했다. ‘미락복집’은 분당의 번화한 지역을 피해 오리역 옆 평범한 상가 건물에 자리해 있다. 마침 점심시간이 끝나 주인 내외가 한가롭게 취재팀을 맞았다. 대구, 아귀 등 생선 요리 전문점으로 성장 업력 40년이 넘은, 사연 많은 김춘희(67) 사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대목에서는 웃었고, 어떤 얘기에는 마음으로 울었다. 우여곡절을 겪지 않은 노포가 어디 있으랴. 그래도 김 사장은 아주 담백했다. 복국, 복어탕처럼.
“1981년 딸아이를 낳고 살때 남편이 실직을 했어요. 결국 보증금을 빼서 치킨집을 해보자 한 거예요. 방배동 대로변에 작은 가게를 보증금 500만 원으로 얻고 그 안에 방을 넣었지요.”
지금은 아주 번화한 지역이지만 당시만 해도 가게가 그다지 없는 조용한 주택가였다. 보증금을 빼서 들어왔으니 가게 안에 살림방을 넣었다. 세 식구가 살면서 장사도 했다. 가게가 집이었고, 집이 가게였다. 문제는 그 무렵 길 건너에 치킨집이 문을 열었다. 상도덕이 있던 양반들이라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우리는 같은 업종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치킨은 안 되겠다 하고 다른 걸 찾아보던 중 친구가 추천해서 생선 요리를 시작했다.





“성남 수진이고개에 잘하는 대구탕집이 있다고 해서 가봤는데, 저도 할 수 있겠더라고요. 제 고향이 속초인데, 생선을 먹고 자랐잖아요. 그렇게 해서 대구, 아귀 이런 걸 다루는 집이 된 거예요.”
친정 부모님 모두 함경도 실향민. 이젠 유명해진 갯배가 있는 동네, 청호동의 아바이마을에서 자랐다. 결혼해서 식당을 할 줄 몰랐는데, 그때 명태 먹고 다루던 기억이 맛있는 생선집의 바탕이 되었다.
“처음엔 밥집처럼 일반 식당이었어요. 탁자 4개 놓고 대구탕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대구탕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요리가 좀 있어야 술도 팔고 매출을 올리겠다 싶었거든요.”
그 무렵 방배동 골목에는 아귀찜 전문점이 하나둘 생길 때였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경제가 무섭게 성장하게 되는데, 그 타이밍을 잘 잡은 것이다.
“골목에 생긴 집에 가서 아귀찜을 시켜봤어요. 이거, 할 수 있겠더라고. 그래서 메뉴에 넣었죠. 우리 집은 처음에는 아귀탕, 아귀찜으로 유명해진 거예요.”
한 번만 먹어보면 음식이 척하고 나오는 사람 같다. 손맛이라는게 있고, 요리 머리란 말은 그래서 생긴 것이 아니던가. 남편이 인천 연안부두까지 가서 아귀를 20kg짜리 박스로 몇 개씩 떼어왔다. 그렇게 성장했고, 이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온 게 20년이 넘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근처에 있어서 상권이 이루어진 곳이다.

국물의 비밀은 맹물? 처음엔 아귀와 복을 같이 다루다가 단골들의 요청으로 복 전문으로 바꾸었다. 다수의 노포가 이런 내부적 변화를 겪는다. 미락 복집은 상호대로 복어가 전문이다. 무늬가 까치를 닮아 아름답고 선명한 까치복을 끓인 복어탕을 한 냄비 내준다. 자연산 전문이다. 복어를 다루려고 시험 치르고 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까치복을 냉장고에서 꺼내더니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척척 껍질 벗기고 토막을 친다. 탕이 끓고 한술 떠보니 놀라운 맛이다. 시원하고도 맑은데 혀를 천천히 잡아간다. 다시 국물을 뜨게 만들며 수저질이 빨라진다. 이러면 ‘터지는’ 음식이다. 맑은 탕이라 바로 맛을 뿜어 낼 줄 몰랐는데, 손맛이 뭔지 알았다.

비결이 어디 있어요. 말씀드리자면 맹물을 쓰는 거예요.”
“예?” 맹물이라니!
“복어탕을 어떻게들 끓이나 조사도 해봤지요. 뒤포리라고 밴댕이 말린 거를 많이 쓰더라고요. 생선 뼈도 쓰고, 더러는 닭 뼈도 쓴다고 합니다. 복어가 딱히 어떤 맛을 많이 내는 생선이 아니니까.”
그런데 맹물로 무슨 맛을 낸다는 건가? 뒤포리도 안 쓴다는데. 알고 보니 콩나물이 다 한다. 보통 생선탕이나 찜에는 ‘찜용’이라고 하는, 뿌리가 짧고 통통하며 머리를 뗀 콩나물을 식감이 좋아 많이 쓴다. 머리는 맛이 지저분해진다고 해서 떼어낸다.
“머리에서 고소한 맛이 나와 떼어내지 않아요. 콩나물도 보통 가정에서 쓰는 뿌리가 가늘고 구부러진 걸 쓰고요.”
미나리도 듬뿍 넣는다. 추가 주문하면 얼마 든지 더 준다. 아삭한 미나리 씹는 맛이 좋다. 미나리는 추운 기후에서 잘 자라고 맛도 있다. 무엇보다 이 집의 보배는 김치다. 무김치와 백김치가 나왔는데, 입에 착 붙는다. 이런 걸 ‘선수’의 음식이라 하겠다. 채소며 고춧가루는 남편이 댄다. 남편의 고향이 멀지 않은 안 성인데, 출퇴근 하며 농사를 짓는다. 오랜 영업과 꾸준함은 이 가게를 노포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2020년에는 그런 공을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노포의 특징 중 하나인 간소한 메뉴(전문화 ), 고객의 좋은 평판, 주인의 맛과 재료에 대한 고집 같은 것이 그대로 녹아 있다. 복어는 종류도 많은데, 이 집은 참복과 까치복이 주재료다. 더러 밀복도 쓰는데 이젠 잘 안 잡히는지 덜 들어온다. 하여튼 이 집의 시원한 국물은 복어 맛을 달리 생각하게 만든다. 밖은 추웠지만 더운 복어탕의 기운으로 속은 뜨거웠다. 시원하고도 뜨거운 음식, 한국인만 그렇게 표현한다는 탕의 음식. 노포에서 한 그릇 참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찬일
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쓰며 사회·문화적으로 노포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는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이 있고 <수요 미식회> 등 주요 방송에 출연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