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다.
경기도 전통사찰 제28호로지정되었으며,
원효대사가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알려졌다.
사진. 경기도청
전국에는 원효대사의 흔적이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사찰이 있다. 경기도에도 신륵사, 원효사, 아미타사 등이 있다. 그
중 평택에 있는 수도사는 원효대사가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오도 성지로 추정하는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1년(661) 원효대사가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던 중 이 근처 바위굴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다. 자다
깬 그는 목이 말랐고, 주변을 더듬어보니 바가지에 물이 들어 있어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러나 다음 날 일어나 물을 마시던 바가지가 해골인 것을 보고는 구토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깨달음을 얻는다. ‘마음이 생기면 우주 만물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해골 물과 깨끗한 물이 서로 다르지 않으니 세상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먹기에 달렸구나!’
결국 의상대사만 당나라로 향하고 원효대사는 다시 서라벌(경주)로 돌아갔다.
두 스님이 하룻밤을 묵은 무덤가 혹은 토굴이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신라 시대, 서라벌에서 당나라로 향하는 경로를 짚어보면
현재의 평택항에서 바다를 건너 중국에 간 것으로 보인다. 평택항은 예로부터 중국으로 갈 수 있는 단거리 항구로 많은 물자가 오가고 유학생 교류가 잦았다.
의상대사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 스님도 이곳에서 바다를 건넜다고 한다. 따라서 지리학상 수도사가 오도 성지일 확률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수도사는 신라 문성왕 14년(852) 염거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이후 사세가 크게 번창했으나 도적이 들끓어 노략질이 심하고 승려를 납치하는
일이 발생해 절이 비게 되었으며, 산 사태까지 나서 폐사가 되기도 했다.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이 전해지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조선 선조 25년 (1592)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곧 복원했고, 1911년 불에 타 폐사로 남아 있던 것을 1960년 영석대사가 중창했다. 1965년부터 정암대사가 중수해 오늘에 이르렀으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보전을 비롯해 산신각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고, 대웅전 북쪽에 정토선원이 있다. 유물로는 염거의 부도(浮屠)로 추정하는 사리탑이 전하며, 절 주위에는 탑재와 석물이 흩어져 있다.
음식을 통해 생명에 대한 고마움과 자비심 배워
수도사에는 원효대사를 소재로 한 공간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 동굴 형태로 만들어놓고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던날 밤의 행적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꾸몄다. 영상을 통해 그 유명한 해골 물 깨우침이 일어나는 순간, 관람객이 서 있던 바닥 내부에 조명이 켜지면서 해골 모형이 드러난다.
대웅전 뒤쪽으로 대나무가 우거진 작은 산책 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해탈수(解脫水)라는 현판을 건 사각의 반듯한 건축물이 나온다.
건물 한쪽에는 해골에서 물이 솟아나오는 방이 있고, 다른 방은 못과 같은 형태로 뚫려 하늘이 훤히 보인다. 못 주변에는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마련했다. 명상을 하는 선방이다.
주소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호암길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