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차별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마술사 정원민

마술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마법처럼 보여주는 예술이다.
여기, 그 말에 딱 맞는 주인공이 있다.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의족 마술사 정원민 씨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화려한 조명과 음악이 흐르는 무대 위로 의족을 드러낸 마술사가 등장한다. 관객들은 놀란 눈으로 그의 의족을 힐끔거린다. ‘다리가 불편한데 마술을 할 수 있나?’ 하는 의심의 눈초리다. 하지만 관객들은 신기한 마술에 금세 빠져든다. 자꾸 눈길이 가던 마술사의 의족은 잊힌 지 오래다. 장애가 보이지 않으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다 똑같다. 한쪽 다리에 의족을 찬 정원민 씨가 마술을 하는 이유다.
“마술을 처음 시작했을 때 불가능할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몸을 쓰는 일인데, 그 다리로 되겠느냐고. 그런 편견과 차별을 깨고 싶어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무대 마술을 택했습니다.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의족도 당당히 보여주고요.”
마술은 움직임이 적은 테이블 마술(클로즈업 마술)과 무대 전체를 활용하는 무대 마술(스테이지 마술)로 나뉜다. 원민 씨는 앉아서 마술을 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무대 마술을 택했다. 그리고 자신의 몸도 마술 도구로 사용한다. 혹자는 장애를 이용하느냐고 질책하는데, 그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몇 해 전부터 장애 인식 개선 마술을 선보이고 있는데, 의족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하면 관객이 집중해 메시지 전달이 더 잘됐다. 그는 자신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인식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원민 씨는 앉아서 마술을 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무대 마술을 택했다.
자신의 몸도 마술 도구로 사용하는 그는 자신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인식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마술을 통해 관객과 소통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원민 씨. 그는 어떻게 마술과 인연을 맺게 됐을까? 일곱 살 때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뒤 많은 시선과 편견에 부딪치며 자신감까지 잃어버렸다. 성격도 소심하고 소극적으로 변해 사람들 앞에 도통 나서질 못했다. 그런데 우연히 대학교 마술 동아리에 들어가 축제 무대에 서면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큰 박수에 놀랐고, 감동이 밀려왔다. 마술이 그를 세상 밖으로 나가도록 용기와 희망을 준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자’는 생각에 그는 대학 졸업 후 전문적 마술사 교육을 받고 마술사가 되었다. 2016년과 2017년에는 대한민국 장애인 예술 경연 대회에 참가해 연거푸 상을 받고 장애인계로 눈을 돌렸다. 마술을 한 지 5~6년째 되던 해였다.
“대회에 참가해 많은 장애 예술인을 만나면서 새로운 영역을 발견했어요. 나만이 할 수 있는, 세상에 하나뿐인 마술, 바로 장애 인식 개선 마술이었어요. 장애인도 똑같다는 메시지를 담아 마술로 보여주는 거지요. 다리를 보여주면서 제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녹였더니 관객들이 더 몰입하고 공감하더라고요.”
관객의 반응에 힘을 얻은 그는 로프, 꽃 등 다양한 소재로 장애 인식 개선 마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장애인, 소외 계층을 찾아가며 공연하거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마술을 가르친다. ‘당신도 나처럼 할 수 있다고, 우리도 비장애인처럼 할 수 있다고.’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마술사
“마술은 제작비 등 경비가 많이 드는 분야예요.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을 하기 어려워 경제적 부담이 더 컸지요. 그런 상황에서 지원금을 받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마술을 한 지 11년 차. 제법 잘나가던 원민 씨에게도 코로나19는 큰 역경이었다. 경기문화재단에서는 예술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원민 씨는 그중 ‘경기 청년예술인 자립준비금’을 지원받았다. 청년 예술인의 예술 활동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는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서류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 예술인을 위해 사업 계획서 서류 준비와 작성을 도와주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원민 씨는 그동안 무대 마술에 전념해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은 유튜브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테이블 마술에 도전하고 있다. ‘의족마술사 정원민’이라는 채널을 통해 집에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간단한 마술을 가르쳐주고 구독자가 궁금해하는 마술 비법도 소개하는데, 제법 인기가 많다.
얼마 전에는 구독자 170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꾹TV와 컬래버레이션 영상을 찍어 많은 구독자에게 장애 인식 개선 마술을 소개했다.
“제게 마술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언젠가 이런 말을 하셨어요. ‘눈을 즐겁게 하는 마술도 있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마술도 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을 즐겁게 하는 마술이다. 그런 마술을 할 줄 아는 마술사가 되어야 한다’ 라고요. 데이비드 코퍼필드처럼 화려한 마술을 선보이는 것도 좋지만, 소소하더라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마술을 하고 싶습니다.” 많은 편견과 시선을 이겨내고 마술을 통해 장애를 극복한 마술사 정원민 씨. 그는 편견과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마술을 한다. 꿈을 향해 내딛는 그의 발걸음에 장애는 결코 장벽이 되지 않는다.


다름을 존중하면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 안녕하세요.
    마술사 정원민입니다.
    제가 이제부터 마술을 보여드릴 텐데요,
    이것이 뭔지 아시나요? 로프지요.



  • 로프 3개가 있는데 길이가 어떤가요?
    하나는 짧고, 하나는 길고,
    다른 하나는 중간이네요.
    옆 사람을 한번 봐주시겠어요? 똑같이 생겼나요?
    머리 모양도 다르고, 눈동자 색도 다르고, 성별도 다릅니다.


  • 어때요? 길이가 같아졌지요.
    장애도 그렇습니다. 약간의 모습이나 특성만 다를 뿐이에요.
    장애를 보지 않고 사람을 본다면 이 로프처럼 똑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 똑같으면 아름다울까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게 아닐까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차별하지 않고,
    편견이 사라진다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이 3개의 로프처럼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