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 인문학과
소통하고 싶다면?
책고집에서 만납시다

국내 최초 노숙인 대상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며 ‘거리의 인문학자’로 이름을 알린 최준영 대표.
인문학은 학문이 아니라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이라며 질문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수원 화성 부근에 작은 도서관 ‘책고집’을 열었다.

글. 이선민 사진. 전재호

성프란시스대학 교수와 경희대학교 실천인문학센터 교수를 지낸 최준영 대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로 유명하다. 2005년 노숙인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를 처음 연후 미혼모, 재소자, 여성 가장, 자활 참여자 등으로 대상을 넓히며 전국을 누빈다. 그의 별칭이 ‘거지 교수’, ‘거리의 인문학자’인 이유다. 현재 그는 수원에서 인문 독서 공동체이자 작은 도서관 ‘책고집’을 운영하고 있다.
“인문학은 인간의 삶, 사고 또는 인간다움 등 인간의 근원 문제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연구자의 인문학이 아니라 자신을 들여다보는 삶의 인문학, 성찰의 인문학이 필요합니다. 그 첫걸음은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인문학 현상이란 바로 질문하는 사회를 이릅니다. 질문하는 법을 익혀야 생각할 수 있고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 대표는 대표적 인문학자로 꼽는 공자의 말씀을 보면 “공자 왈” 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며, 이는 제자의 질문에 스승이 답한 것으로, 질문이 없었다면 공자의 말씀도 없었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질문하기를 잊어버린 사회 “사회과학이 노하우(know-how)의 학문이라면, 인문학은 노와이(know-why)의 학문입니다. 그리고 이젠 사회과학 시대에서 인문학 시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방법론이 아니라 근원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거죠.”
최 대표는 20세기까지 답을 통해서 잘 사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는 답을 얻기 이전 단계인 ‘왜 그렇게 잘 살아야 하지?’, ‘내 삶은 무엇이지?’, ‘이대로 살면 미래에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회과학적 합리성을 통해 풍요를 얻었지만, 물질적 풍요 속 정신적 빈곤을 초래하며 극단적 개인주의라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이젠 인문학을 통해 인간의 가치를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인문학을 깊이 있게 알기 위해서는 과학 등 여러 학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문의 벽이 무너지는 통섭의 시대예요. 네트워크 과학의 선두주자 마크 뷰캐넌은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과학을 알아야 하고, 과학자라면 예술을 알아야 한다’고 했어요. 예전에는 한 가지만 잘하면 먹고살 수 있다며 스페셜리스트가 되라고 했지만, 이젠 하나만 잘해서는 살 수 없는 시대라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그는 이 외에도 결핍이 오히려 성장의 힘이 된다고 역설하며, 코로나19로 인한 심리적 거리 두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인문학을 통한 온기를 전하기 위해 자신을 찾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고 있다.

작은 도서관 책고집 통해 지역 주민과 인문학으로 소통하다최 대표는 인문학 문화를 지역사회와 나누기 위해 2018년 11월 수원 화성 부근에 사재를 털어 작은 도서관을 열었다. 231m2(70평) 규모의 도서관 벽면에는 개인 도서와 기부받은 책 3,500여 권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런데 사실상 도서관이라기보다는 강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한 해 동안 책고집에서 진행한 인문학 강좌가 80회를 넘었기 때문이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기생충 전문가 서민 교수, 문학평론가 신 형철, 작가 은유 등 내로라하는 전문가가 책고집을 다녀갔다. 유 명인의 강의가 연이어 열리다 보니 입소문이 나 강의가 열릴 때면 100명이 넘는 사람으로 책고집이 가득 차곤 했다. 과학의 중요성 을 강조하는 최 대표는 인문학 강좌에 과학 강좌까지 더하며 내 실을 기했지만,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잠정 중단된 상태다. “책고집이 추구하는 가치에 동참해주시는 분이 많아서 강사를 초청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어요. 코로나19가 끝나면 다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울고 웃는 인문학 강좌를 열어야죠.”
그는 지자체나 기업 등이 여는 인문학 강좌를 찾는 사람들의 면면이 대동소이한 현실을 극복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생계에 몰두해야 하는 우리 이웃은 인문학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책고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 대표는 책고집을 통해 자신과 같은 인문학 강사를 배출해 가난한 분들,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가 인문학을 알려 주겠다는 계획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어, 늘 깨어 있으려 노력하는 최준영 대표의 인문학적 지식이 수원을 넘어 경기도민 누구에게나 전해질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책고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벽면에 이곳을 다녀간 유명인들의 사인이 가득하다.
최준영 대표는 강연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 그리운 어머니, 우리네 삶의 풍경, 인문 독서 공동체 책고집, 책과 영화, 사회와 정치에 관한 단상과 비평 등을 엮어 <결핍의 힘>이라는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