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효심이 담긴 용주사 동종(銅鍾)

용주사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사찰로, 국보 제120호인
용주사 동종을 비롯해 여러 문화재를 볼 수 있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최근 화제를 불러일으킨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덕분에 정조가 재조명받고 있다. 한 여인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다룬 드라마 속 내용처럼 정조는 일편단심 사랑꾼이자 효심 지극한 아들이었다고 한다. 그 효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화성 용주사다. 용주사는 신라 854년에 갈양사로 창건해 고려 952년에 병란으로 소실된 사찰이다. 1789년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花山)으로 옮긴 정조는 이듬해인 1790년에 이곳 절터에 용주사를 창건한다. 아버지의 능인 현륭원에 명복을 빌어주는 능사(陵寺)를 지은 것이다. 정조가 대웅보전 낙성식 전날 밤 용이 여의주를 물어 승천하는 꿈을 꾸고 나서 용주사라 이름 지었다. 용주사는 국왕이 발원해 창건한 사찰이기에 조선의 최고 장인들이 참여할 수 있었고, 사찰의 품격 또한 매우 높다. 이곳엔 문화재도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것이 국보 제120호로 지정된 용주사 동종이다. 고려 시대 대표 범종으로 한국의 3대 범종 동종은 범종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한국 종’이라고 칭할 만큼 독자적 양식을 띤다. 종은 법고(法鼓), 운판(雲板), 목어(木魚)와 더불어 불교 사물(四物) 중 하나로, 소리로 지옥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용주사 동종은 높이 1.44m, 입지름 0.87m, 무게 1.5톤으로, 고려 시대 범종의 모본이 되는 도상과 문양을 표현하고 있어 조형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오대산 상원사종, 성덕대왕 신종과 더불어 한국의 3대 범종으로 손꼽는다. 종의 상단에는 소리의 울림을 돕는 용통(甬筒)이 있고,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龍鈕)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두 발로 힘차게 몸을 들어 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몸체에 새겨진 비천상과 삼존불은 옷자락이 가볍게 날리며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인데, 성덕대왕 신종과 비슷한 조각 양식으로 신라 종의 양식을 매우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다.

용주사에는 동종 외에도 김홍도가 그린 대웅전 후불 탱화(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호), 목조삼세불좌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14호),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보물 제1754) 등 10여 개의 유형문화재가 있다. 자나 깨나 원통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생각뿐이던 정조는 아버지가 그립거나 전날 꿈자리가 사납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능을 찾아 손수 살폈고, 그때마다 용주사에 들러 능을 지키고 보호하길 당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1800년 세상을 떠나며 아버지 곁에 묻혔다. 아버지 어머니 능인 융릉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건릉이다. 융 ·건릉은 용주사에서 5분 거리에 자리한다. 정조의 효심으로 지은 용주사. 동종의 깊고 그윽한 소리에 정조의 애틋한 아버지 사랑이 함께 울려 퍼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