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정서와 창의력 기르는 데
연극만 한 게 없죠
H작업실 이정수 연출가

제21회 의정부음악극축제 창작 음악극 쇼케이스
‘Next Wave’ 최우수 작품으로 H작업실의 <아르센 뤼팽 연대기>가 선정되었다.
예술성과 독창성을 높이 평가받은 이 작품을 연출한 초등학교 교사 이정수 씨를 만났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서울동원초등학교 4학년 6반 교실, 방학 중인데도 몇몇 선생님이 모여 인형 만들기에 한창이다. 서울시교육청 교원 학습 공동체 ‘어쩌다 낭독팀’이 입체 낭독극을 공연하기 위해 소품을 준비 하고 있는 것.
“낭독만 하면 재미없잖아요. 인형이나 팝업 북 등을 이용해 색다른 재미를 줘야지요. 지금 준비하는 공연은 <똥색은 똥색>이라는 작품으로 세계 전래 동화와 우리나라 전래 동화, 창작동화를 각색해서 만들었습니다.”
선생님들과 함께 공연 준비를 하던 이정수 연출가는 “‘피부색은 달라도 똥색은 다 같다’를 주제로, 아이들 시선으로 ‘평등과 다문화’를 해석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동극에 관심이 많은 초등학교 교사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다. 아동극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연출가일 뿐 아니라 일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교사(경복초등학교)이기 때문이다. “연극에 관심이 많아 교대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아동·청소년 연극을 배웠어요. 연극을 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요. 전 아이들에게 배우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소양을 연극 안에서 경험해보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경험을 통해 적성을 찾을 수도 있고요.”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아르센 뤼팽 연대기>
연출가이자 교사로 살아온 지 벌써 15년째. 그동안 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아이들과 함께 ‘전국어린이연극잔치’ 등 연극제에도 자주 참가했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서울경기어린이연극잔치’를 별도로 만들어 참여하고 있다. 전국어린이연극잔치는 전국 지역 대회에서 뽑힌 팀이 다시 겨루어 금상, 은상, 동상을 받는 연극제로 경연 대회 형식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연극을 만들고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재미가 경연 스트레스 때문에 사라지는 것. 이런 단점을 보완하고자 만든 것이 ‘어린이 창작의 주인공이 되다. 연극 준비도 연극만큼 즐거워야.’라는 캐치프레이즈의 서울경기어린이 연극잔치다. 원하는 팀은 누구든 참가할 수 있고, 심사도 심사위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참가자와 운영 위원들이 함께 한다.

심사위원은 평가보다는 주로 조언을 해준다. 작년에는 서울과 경기 지역 7개 학교 연극팀이 참가해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올해는 더 많은 학교가 참가해 10월에 오프라인으로 열릴 예정이다. 이정수 연출가는 ‘H작업실’이라는 팀을 이끌고 있다. 지난 6월에 열린 제21회 의정부음악극축제 창작 음악극 쇼케이스 ‘Next Wave’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아르센 뤼팽 연대기>도 H작업실 작품. 경기 인천지역에서 근무하는 초등학교 교사의 연극 모임인 ‘학마을’을 모태로 해서 만든 극단이라 H작업실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첫 작품은 <구름을 좋아해>.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미카가 친구들과 함께 하늘을 날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담은 종이 오브제극인데, 어려움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라 애착이 크다고. 이 작품은 ‘비아프린지 페스티벌’, ‘종로 아이들극장’, ‘아시테지 in 인천’ 등에서 공연했고, 지금도 계속 초청을 받아 공연하고 있다. <아르센 뤼팽 연대기>는 소설 <루팡>을 각색해 이머시브 시어터 형태로 만든 뮤지컬이다.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란 관객이 객석과 무대가 구분되지 않은 넓은 공간에서 배우들과 섞여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공연에 참여하는 연극이나 공연을 말한다. “참여를 강요하는 작품은 진정한 이머시브 시어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당황하지 않도록 공연 전에 ‘당신을 유람선에 승선한 승객으로 초대한다’는 초대장을 발송했습니다. 관객이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의 시민이 되어 자연스럽게 극을 즐길 수 있도록 말이지요.”

다양한 형태의 어린이 전용 극장 필요 “의정부음악극축제는 제가 연극원에서 공부하던 시절부터 좋아한 축제라 공식 초청작은 빼놓지 않고 관람했습니다. 저도 언젠가 출품하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상까지 받게 되어 기분이 좋네요. 의정부문화재단에서 쇼케이스 제작 비용을 지원해주셔서 무대 제작도 했고, 최우수상 상금으로 다소 미흡했던 음악도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이정수 연출가는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필요할 때마다 예산과 장소를 지원받으니 주머니 가벼운 예술가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라며 “<아르센 뤼팽 연대기>도 펀드를 받아 더 완성도 높은 공연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고양시 토박이인 이정수 연출가는 경기도 공연장 중 고양아람누리의 새라새극장을 좋아하는데,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런 공간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 아쉽다고. 특히 어린이 전용 극장이 절대적으로 필요 하다고 강조한다.
아시테지(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의 지원을 받아 방정환의 <노래 주머니>를 찾아가는 형태로 초등학교에서 공연하고 있고, 청소년 소설 <스피릿 베어>도 연극으로 만들어 찾아가는 공연으로 진행 중인 이정수 연출가.
그는 연극을 통해 아이들이 배우는 게 참 많다고 말한다. 무대에 오르면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소통 방식을 배우게 된다. 또 무엇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서 예술가적 관점을 갖게 되어 삶이 한층 풍요로워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들이 그런 예술적 소양을 경험하길 바라며 학교와 무대에서 그 재능을 펼치고 있다.



tip 의정부음악극축제
올해로 제21회를 맞은 의정부음악극축제는 매년 5월 문화와 정보의 도시 의정부에서 펼쳐지는 국제 공연 예술 축제다. 해외 초청 공연작을 통해 세계 예술인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국내 예술인들의 공연에서는 발전하는 우리 문화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야외에 설치한 특별 무대와 로비에서 열리는 콘서트 무대에는 아마추어 공연 단체부터 전문 공연 단체까지 자유로이 참여 가능하다. 특히 ‘Next Wave’는 새롭게 시도한 음악극을 발굴하고 창작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쇼케이스 제작 비용과 공연장 대여, 상금 등을 지원해주어 젊은 예술인들이 열정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