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우영우처럼 김예원 변호사가 꿈꾸는
‘모두 같이 사는 세상’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방영
이후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화제를 모은
김예원 변호사. 그녀 역시 시각장애인으로
현실의 우영우로 살고 있다.
수임료를 받지 않고 공익 사건을 전담하며
소외된 이웃을 돕는 김 변호사에게
‘같이 사는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글. 이선민 사진 제공. 김예원

김예원 변호사에게 인터뷰를 부탁하며 시각장애를 딛고 변호사가 된 사연을 듣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다행히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한 가지 지적을 받고 아뿔싸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김 변호사가 ‘딛고’라는 표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해온 것이다.
“장애인이라고 하면 ‘비정상’이라는 편견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아요. ‘비정상이니까 도와줘야 하는 존재인 데다 불쌍한 존재고, 좋은 시민은 그 불쌍한 비정상인을 잘 도와줄 준비가 된 사람이다’는 식의 생각이죠. 그 편견을 장애인 당사자 탓으로 떠넘기기도 하는데, 가령 장애인에게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내지는 ‘장애를 극복한’이라는 식의 생각도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접근이라기보다는 장애가 있지만 열심히 노력해 비장애인처럼 살아내라는 무언의 강요나 폭력으로 다가올 때가 있죠. 사실 다 똑같은 사람이고, 삶의 방식이나 방법이 조금 다를 뿐인 데도요.”
그렇다. 장애를 비정상으로 여기다 보니 필자 역시 다른 변호사와 똑같은 변호사 김예원으로 보기보다 ‘장애’를 극복했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김 변호사와의 인터뷰는 이렇듯 반성에서 시작했다.

아이들은 몸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큰 학대로 다가와요 김 변호사는 200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현재 장애인권법센터라는 비영리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수임료를 내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들만 지원하기에 공익 사건을 전담한다. 주로 장애가 있거나 나이가 너무 어리거나, 심각하게 가난하거나 교육 기회를 전혀 제공받지 못해 스스로 권리를 찾기 어려운 사람들을 변호한다.
“사실 제가 태어날 때 의료 사고로 한쪽 눈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한쪽 눈은 의안이고 다른 한쪽 눈으로만 살아온 시각장애인이기도 합니다. 제가 왜 한쪽 눈을 잃었는지 중학생이 되어서야 엄마에게 들어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이미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였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세상에는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권리를 포기하는 상황도 많겠구나. 저는 나중에 그런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꼭 변호사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고, 누군가의 편이 되어 돕는 일이라면 뭐든 좋다고 생각했죠.”

김 변호사는 아동과 여성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그녀는 우리나라의 여성 인권과 아동 인권이 세계적 기준에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여성 인권의 경우 보건이나 교육 부문은 성 평등 지수가 높은 반면, 의사 결정 부분은 아시아권에서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며 사회적 자원과 기회가 불평등하게 분배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이라고 해석했다. 아동 인권 지수가 낮은 것도 구조적 이유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아기에서 어린이가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대학 입시를 향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를 교육 대상으로만 보려 하죠. 또 안전한 사회적 돌봄이 부족하고, 아동을 미성숙한 존재로 여겨 의사 결정권이나 참여권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훈련도 받지 않아요. 이런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에 아동의 인권침해가 끊이지 않는 거예요.”
김 변호사는 아동 학대의 80%가 부모로부터 발생한다며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만이 아동 학대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오히려 몸에는 상처가 나지 않지만 정신적 피해가 큰 정서적 학대가 더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한 아동 권리 단체에서 아이들에게 ‘부모님께 들은 말 중 어떤 말이 가장 상처가 되었는지’ 물었어요, 그중 100가지를 선정해 발표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꾸 똑같은 말 하게 할래?’나 ‘창피하지도 않니?’ 등 무심코 던지는 말이 아이들 마음속에 오랫동안 가시로 남아 있더라고요. 나이를 불문하고 좀 더 다정하면서 부드럽게 말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위의 아이들을 관찰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아이 스스로 권리를 옹호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기에 조금이라도 이상해 보이면 그 아이를 위해 신고해야 한다는 부탁이었다.

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그냥 같은 사람으로 대해주면 돼요 장안의 화제였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는 고기능성 자폐라 두뇌가 천재적인 것으로 나온다. 김 변호사는 고기능성 자폐 따위의 어색한 말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심심찮게 뱉어내는 말로, 장애를 계급화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녀도 인권침해 상담 전화를 받다 보면 “너도 장애인이냐”며 시비를 거는 사람을 더러 만난다고 털어놓았다. 맞다고 하면 “몇 급 장애인이냐” 물은 뒤 “한쪽 눈은 보인다니 C급 장애인이네” 하며 킬킬거린다고. 그런데 장애 계급화가 능력주의와 연결되면 짐짓 더 잔인해진다고 말하는 김 변호사. 같이 살아도 되는 장애와 격리해야 마땅한 장애를 감히 나누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천재성으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어일우(어차피 일등은 우영우)’라는 캐릭터를 보며 ‘저 정도는 돼야 (장애인이라도) 길거리를 돌아다닐 만한 자격이 있지’라는 식의 위험한 생각과 같은 맥락이다.

내가 우영우를 좋아하는 이유는 자폐가 있음에도 놀라운 실력과 천재성으로 이를 극복한 장애인이라서가 아니에요. 변호사로서 의뢰인을 대하거나 사건을 마주하고 고민하는 자세, 자신을 평범하지 않은 사람으로 규정짓는 세상에서 나름대로 적응하며 명랑한 직업인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진심으로 공감하기 때문이죠.”
김 변호사는 많은 사람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며 ‘한국에는 저런 법리가 있구나’, ‘차갑게만 느껴지던 법이 사실은 마음을 중시하기도 하는구나’ 정도를 생각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김 변호사에게 그녀가 꿈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비장애인인 우리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물었다.
“회사에 입사하거나 새 학기가 되어 같은 반 친구들을 만날 때 서로 잘 어울리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을 하면 됩니다. 상대가 장애인이라 내가 비장애인으로서 기울일 노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 만난 저 사람과 나는 어떻게 하면 의사소통을 잘하고 좀 더 친해질 수 있을까 하는 관점으로 다가가는 거죠. 매뉴얼대로 할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 좋은 관계가 열립니다.”

현재 김 변호사는 미국 듀크 대학교에서 법 제도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다. 내년까지 범죄 피해자 지원에 관한 연구를 할 계획이다. 물론 피해자를 지원하는 형사 절차와 체계에 대한 연구도 함께 진행한다. 그녀가 이처럼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공익 사건을 해결하는 변호사로서 살아남고 싶어서다. 객관적 판단을 해야 하는 판사나 검사와 달리, 변호사는 누군가의 편이 되어 곁에 서 있기에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는 김예원 변호사. 그녀가 경기도민에게 일상을 따뜻하게 채워가는 의외의 일들이 삶 속에 가득하길 바란다는 응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