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통의 피자집 양주 피자성효인방

피자 노포를 보았는가?
경기도 양주시 장흥에 가면 아주 특별한 피자 노포를 만날 수 있다.

글. 박찬일 사진. 전재호

오래된 가게를 ‘노포’라고 부른다. 식당 외에도 이발소, 미용실, 지물포 등 모든 가게는 다 노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더 많은 사람과 접촉하는 만큼 노포라고 하면 식당이 대부분이다. 노포가 제일 듣기 좋아하는 말이 있다. “오래도록 이 가게가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보존해야 할 장소입니다.”
여기에 맛도 좋다면 더할 나위 없다. ‘피자성효인방’이 그런 곳이다. 어렵게 섭외해 대표인 정복모(73) 관장을 만났다. 그가 식당 대표가 아니라 관장인 것은 이유가 있다. 병설한 청암민속박물관 때문이다. 개인 근현대 박물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일 뿐 아니라 소장품과 구성도 최고 수준이다.
“들어간 자금이 말도 못하게 많았죠. 저 안에 있는 수십 개의 근현대사 장면들(대폿집, 학교 교실, 단칸방, 대장간, 극장 등 추억 어린 장소가 망라되어 있다)은 다 제가 꾸민 거예요. 대충 한 게 아니라 작가와 공방에 맡겨서 제대로 제작한 거죠.”
아닌 게 아니라 옛 직업군의 온갖 모델이 등장하는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몸동작과 균형, 표정이 생생하다. 그런데 이것이 다 개인이 일군 것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원래는 무료였어요. 지금은 관리비를 조금이라도 받아야 해서 입장료가 있습니다. 저도 이곳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맡아 줬으면 합니다. 개인이 하기에는 이제 능력이 부칩니다.”

SINCE 1988, 한국식 피자 가게를 열다 예전에는 근처의 일영·장흥 유원지가 계곡이 좋고 물이 맑아서 행락객이 많이 찾았는데, 박물관과 피자집이 있는 곳은 논과 밭 그리고 약간의 민가가 있는 한적한 곳이었다. 요즘은 개발 바람이 불어 이 시설물들의 시야를 가린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구파발역에서 10km가 안 되는 가까운 곳이라 거주지로서도 가치가 생긴 것이다.
“제 평생을 바쳐 일군 박물관이고 피자집이니 그대로 남아 있었으면 해요. 그래서 아예 대기업 다니던 아들(정석원, 44)을 불러서 관리 사장으로 임명하고,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70대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관장은 엄청 몸을 빠르게 움직인다.
“모든 걸 제 손으로 다 하느라 그게 버릇이 됐어요. 많이 움직이니 늙지 않는 건가 봅니다.(웃음)”
피자성효인방은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국내 최고(最古) 피자 식당이다. 더러 프랜차이즈가 남아 있을지는 몰라도 개인 가게 로는 최고령인 듯하다. 정 관장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릴 무렵 이 자리에 피자집을 열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엔 일을 배울 곳도, 모범으로 삼을 가게도 없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미군 부대에 지인이 있어서 방문했고, 그때 007 같은 활약을 펼치게 되었다.
“그때 피자에 관한 책이 있길 해요, 셰프가 있길 해요? 미군 부대가 유일했을 거예요. 무작정 찾아갔죠. 소스 레시피를 가르쳐달라고, 절대 안 된답니다. 불법이래요. 자, 어떡하느냐….”

그는 피자 소스가 미국에서 온다는 데 착안했다. 다 쓴 소스 통은 버릴 것이다. 부대 밖으로 나간 통을 가져오는 건 가능했다. 그는 소스 통 버리는 날을 알아내고 기어이 입수했다.
“지금이야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때는 어디에도 소스 레시피가 없었어요. 통을 보니 원료가 쓰여 있는 겁니다. 오레가노, 소금, 후추, 설탕, 올드 스파이스, 토마토 등등 이런 게 다 쓰여 있었죠. 그 소스는 의정부나 남대문 도깨비시장(미군 부대 유출품을 취급하는 암시장)에 나와 있지 않았어요. 당시만 해도 피자집이 없을 때라 찾는 사람도 없었던 거죠. 제가 이리저리 재료를 구해 우리 집에 맞게 만들었어요. 그게 지금도 변함없는 우리 집 피자 소스입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공간’에서 맛보는 속 편한 피자 가게는 아주 정갈하다. 티끌조차 없다. 정 관장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방 역시 놀라울 정도로 위생적이다. 원래 이 인터뷰는 연기될 상황이었다. 가게 리모델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수선하니 완성한 후 인터뷰하자는 것이었다. “아니다, 우리는 옛 모습을 기록하는 게 목적이다. 그러니 리모델링 마치기 전에 하자.” 이렇게 해서 급히 날을 잡은 사연이 있다.
“새로 건물을 지으려고 했어요. 너무 낡았거든요. 옛날 개인 집을 고쳐서 40여 년 가까이 썼으니 오죽하겠어요. 그런데 누가 그럽디다. 노포는 그 모습을 지켜야 한다고. 그래서 포기하고 리모델링 하는 걸로 결정했죠.”
피자가 나온다. 엄청나게 크다. 12인치(약 30.48cm)는 족히 된다. 그런데 색이 특이하다.

“피자는 이미 우리나라 음식의 일부가 됐죠. 미국식이나 이탈리아식이 아니라 우리 입에 맞아야 해요. 쑥 피자를 개발해 크게 인기를 얻었어요. 지금도 이게 주력 메뉴입니다.”
한라산의 쑥 향이 퍼진다. 특히 발효를 잘해서 먹어도 속이 편안하며, 무엇보다 짜지 않다.
“우리 손님은 미국인이 아니잖아요. 짠 피자는 안 좋아하세요. 대신 아삭한 피클을 같이 만들어서 드려요. 정성을 들이고 있지요.”
그는 한양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ROTC 장교로 전방에서 복무했다. 고시 공부도 했다. 입주 공부를 하던 절의 스님이 ‘청암’이란 법명을 내려주어 지금의 박물관 이름으로 사용했다. 참, 피자 성효인방이라는 유일무이한 이름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피자 ‘城’, ‘孝仁芳’입니다. 어질 인(仁) 자는 아버님 함자에서 따온 거예요. 꽃처럼 아름다운 곳이 되었으면 해서 붙였어요.”
피자와 함께 ‘미니폴’이란 특별한 음식도 있다. 스파게티 그라탱 같은 음식인데, 칼칼한 맛도 좀 난다. 찰고추장을 넣은 작은 떡볶이에 스파게티를 넣고 치즈를 얹어 구워냈다. 한국적 변용이다.
“미니폴은 어릴 때 하던 자치기에서 따온 거예요. 그게 미니폴(작은 막대)이란 뜻이잖아요. 그냥 스파게티 떡볶이라고 하기도 뭣해서 재미있게 이름을 붙여봤어요. 인기 메뉴입니다.”
우리 음식 역사에는 오래된 음식이 아주 많다. 짜장면은 140여 년을 헤아리고, 프라이드치킨도 50년 된 음식이다. 그런 걸 파는 노포도 많다. 피자는 아직 노포가 거의 없다. 이제 우리도 피자 노포를 가질 시대가 된 것이다. 피자성효인방이 그 몫을 해낼 것이다.

박찬일
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쓰며 사회·문화적으로 노포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는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이 있고 <수요 미식회> 등 주요 방송에 출연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