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접으면 돼
코딱지 대장 김영만의 종기접기 인생학
1800년대를 살았던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21세기 한국에 소환됐다.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라며 염세주의적 자세로 인생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했던,
냉소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던 쇼펜하우어.
30만 부 이상 팔리며 쇼펜하우어 열풍을 주도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저자 강용수 교수를 만나
쇼펜하우어가 독일이 아닌 한국에서 사랑받는 이유를 들어봤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요즘처럼 즐길 거리가 많지 않던 1980~1990년대, 매일 아침 TV 앞으로 ‘코딱지’ 친구들을 불러 모은 김영만 원장.
“코딱지 친구들 안녕? 오늘은 선생님하고 아주 재미있게 생긴 헬리콥터를 만들어보아요. 어때요, 간단하지요?”
색종이뿐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빨대, 휴지심 같은 재료로 만든 놀잇감은 당시 아이들로 하여금 입체 미술이라는 세계를 접하게 한 새로운 세상이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며 종이접기라는 한길을 걸어온 김영만 원장이 최근 <코딱지 대장 김영만>이라는 에세이집을 펴냈다.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힘들게 살아가는 요즘 청년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망한 것 같아도 희망 한 자락은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저도 사업을 하다 쫄딱 망했지만, 색종이라는 희망을 만나 지금까지 살아왔거든요. 서른 살 넘어 처음 만난 종이접기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에세이집 출간이 제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어요.”
김 원장은 요즘도 학교나 단체 등에서 강의·강연을 하고 여러 행사에서 종이접기를 가르칠 뿐 아니라 그간 쌓아온 삶의 이력을 바탕으로 예전 코딱지였던 30~40대 청장년층에게 각종 토크 콘서트에서 삶의 지혜를 전하고 있다. 가을에 종이조형 전시회를 열 계획이라는 그가 종이접기 세계에 어떻게 입문하게 됐는지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요즘 예전 코딱지였던 30~40대를 만나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고백했다. 그들 역시 자신을 만나면 눈물을 보일 정도로 반겨준다고.
그들이 지금은 코딱지를 키우는 어려움을 털어놓을 때마다
그는 딱 한마디 조언한다. “놀게 해라.”
사업 실패로 만난 종이접기 세상
김 원장은 에세이집에서 청소년기에 겪은 가난, 사업 실패와 도전으로 일군 화려한 성공, 이어 찾아온 우울증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학비도 내기 힘들었던 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대기업에 광고 담당으로 취업했지만, 30대 초반에 퇴사하고 광고 기획사 창업에 도전했다. 그러나 창업은 그야말로 문도 열지 못하고 망해버렸다. 자녀를 둔 가장이라 인생에서 가장 암담한 시기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암담했던 순간이 바로 색종이라는 운명을 만난 시간이기도 했다.
“사업 실패로 힘들 때 일본에 거주하는 친구 집에서 신세를 졌어요. 우연히 친구 딸을 현지 유치원에 데려다줬다가 종이접기를 처음 접했죠. 당시 한국에는 그런 게 없었어요. 종이 한 장이 내 손끝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하는 데 푹 빠져
1년 정도 독학을 했습니다.”
당시 색종이 관련 책이 나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일본 서적을 번역한 데다 너무 어려워 헤매기 일쑤였다. 그는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매일 새로운 색종이 작품을 만들어나갔다.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무료로 종이접기 교육을 해주겠다고 여기저기 문을 두드렸지만 수없이 거절당하다 그의 실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일거리가 늘었다.
“처음 강의때 수강생이 꼬마 4명이었어요. 종이접기만 하면 코딱지들이 재미를 느끼겠어요? 그래서 만든 종이접기 작품으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코딱지라고 불렀는데, ‘코딱지들’ 하고 부르면 딴짓하던 아이들도 전부 쳐다보더라고요.”
김 원장의 세상은 그렇게 열렸고, 그는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는 종이접기 분야를 개척해 초통령으로 자리 잡았다.
김 원장은 색종이를 잘못 접었다고 해서 큰일 나지 않듯,
청장년도 좀 틀려도 괜찮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 역시 사업이
망하지 않았다면 지금이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이는 실컷 놀아야 한다
그는 요즘 예전 코딱지였던 30~40대를 만나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고백했다. 그들 역시 자신을 만나면 눈물을 보일 정도로 반겨준다고. 그들이 지금은 코딱지를 키우는 어려움을 털어놓을 때마다 그는 딱 한마디 조언한다. “놀게 해라.”
“휴대폰 치우고, 컴퓨터 치우고, 장난감 치우고 무조건 바깥에서 신나게 놀게 하라고 말해요. 노는 것이 전부 사회적 구성 요소거든요. 놀면서 배우는 게 바로 인성이에요. 국어책의 ‘ㄱ’ 가르치고 ‘ㅁ’ 가르치고 그것만이 교육은 아니거든요. 많이 놀아야 건강해지고 창의성도 쑥쑥 커집니다. 그래서 예전 코딱지 엄마 아빠한테 제가 하는 말이 ‘아이들 놀게 해주세요’, ‘편하게 해주세요’예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얘기를 좀 많이 하는 편이죠.”
그는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요즘 자신의 자녀에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옛날로 돌아가는 시간을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공부하라는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놀게 하라는 것이다. 단, 휴대폰이나 컴퓨터는 없어야 한다. 그냥 멍 때리며 하루를 보내더라도 그 순간이 아이에게는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 아니었으니 아이에게는 무엇보다 관용이 필요한데, 자꾸 닦달하는 요즘 부모를 볼 때면 안타깝다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눈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닌 마음으로요. 제가 엄마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어머니들, 이제부터 하루에 한 번씩 늦은 시간이라도 좋으니까 잠들기 전에 얼굴 보고 한 번 웃어주세요. 말하지 않아도 돼요. 그러고 나서 자면 그다음부터는 아이의 속마음이 다 나와요’라고 말해요.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너무 아이들을 무시하고 ‘야, 내가 엄마 아빠니까 너는 말 잘 들어야 해’라고 하거든요. 그건 교육이 아니에요. 아이와 멀어질 수밖에 없는 아주 좋지 않은 태도죠.”
김 원장은 지금의 30~40대가 많이 힘든 세대라며, 노년층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면 젊은 세대를 배려하고 이해해주라고 말한다. 세대 간 갈등을 줄여야 젊은 세대에게 희망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생 종이를 마음 내키는 대로 접고, 오리고, 자르고, 붙여서 만든 조형 작품들.
아직 제목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가을 전시회 때는 그 이름을 만날 수 있다.
도전 후 실패해도 괜찮다, 종이접기 망쳐도 큰일 안 나듯
김 원장은 색종이를 잘못 접었다고 해서 큰일 나지 않듯, 청장년도 좀 틀려도 괜찮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 역시 사업이 망하지 않았다면 지금이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모든 게 허물어지고 무너져도, 요즘 말로 폭망해도 하나는 남는다며 실패하더라도 희망이 무엇인지 찾는다면 반드시 보일 거라고 위로했다.
“이것저것 많이 해봐야 합니다.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꼭 밥벌이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도 종이접기가 밥벌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그냥 종이접기가 좋아 많은 사람과 해보고 싶었을 뿐이죠. 그래서 지금도 저는 이 일이 즐겁습니다. 나이 들어서도 열심히 살게 되는 이유가 제가 좋아하고 즐기는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젊을수록 즐겁게 할 일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생을 풍요로우면서도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 중 하나라고 강조하는 김영만 원장. 그가 지금도 나이와 상관없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유다.
MBC <마이리틀 텔레비전(마리텔)〉과 어린이들의 인지 발달, 정서 함양, 창의 인성 교육 활동을 위한 KBS (종이나라), <김영만 선생님과 함께 만들어요>(보육사), <코딱지 대장 김영만>(참새책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