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노을 아래 자리한 오붓한 삶터
“논밭이 있어도 농업용수가 부족해 농사짓기가 힘들었어요. 바닷물이 마을 앞까지 들어왔거든요. 지하수도 바닷물 때문에 마실 수 없어 옆 동네에서 길어다 먹을 정도로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그러다 아산·남양방조제가 준공되면서 먹고살 만해졌습니다.”
김경남 바람새마을 대표는 “아산·남양방조제 공사로 진위천 제방이 높아지면서 하천부지와 웅덩이가 메워져 경작지로 변했고, 일부 저습지는 양식장과 낚시터로 바뀌었다”며 “평택호에서 농업용수가 공급되면서 농사짓기도, 생활하기도 한결 편해졌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대학 졸업 후 병원에서 방사선사로 근무하던 김 대표는 정체된 마을에 빛과 희망이 되고 싶다는 일념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찾은 대안은 친환경 농법.
“유기농으로 벼농사를 짓는다고 하니 사람들이 믿지 않는 거예요. 답답한 마음에 직접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사람들이 직접 논에 와서 농사짓는 과정을 볼 수 있도록 메뚜기 잡기 등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도시 사람들이 유기농 쌀을 믿고 구매할 수 있도록 체험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바람새마을의 시작이었다. 프로그램이 하나둘 쌓이고 사람들이 모이면서 바람새마을이라는 브랜드도 만들었다. 바람새마을은 ‘바다’, ‘람사르’, ‘철새’를 한 글자씩 따서 만든 것이다. 과거에는 바다를 품은 마을이었고, 현재에는 잘 보존된 습지가 있으며, 해마다 철새들이 찾아와 노닐다 가는 마을이라는 뜻을 지녔다. 바람새마을은 2008년 경기도 녹색 농촌 체험 마을, 2009년 농협 팜스테이 마을에 선정되면서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났다.
특히 다른 농촌 체험 마을에서는 할 수 없는 논바닥 머드 체험이 큰 인기를 얻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바닷물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땅을 파면 갯벌이 나오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2008년 오픈 첫해 45일 동안 약 1만 명이 다녀갔고, 방송·신문·잡지 할 것 없이 언론의 집중을 받았다. 그러나 머드 체험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오래가지 못했고, 습지식물을 이용한 공예, 농산물 수확, 머드 비누 만들기, 음식 만들기 등 농촌 체험 프로그램과 텃밭 농장 등을 기본으로 운영하며 새로 찾은 돌파구가 꽃 축제였다.
유채꽃과 핑크뮬리로 맞은 제2의 전성기
“어느 마을분이 유채를 재배하는데, 꽃이 피어 장관을 이루니 사람들이 너도나도 구경을 오더라고요. 그래서 꽃을 심어보자고 생각했죠. 봄에는 유채꽃, 가을에는 핑크뮬리가 피는데 우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반려동물 콘셉트를 더했어요. 반려견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꽃 축제를 만든 거죠.”
백수경 바람새마을 사무장은 “반려동물이 출입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반려인이 강아지를 데리고 핑크뮬리 축제장을 찾았어요”라며 “유채꽃과 핑크뮬리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라고 귀띔했다. 바람새마을은 이렇듯 전통적 농촌 체험에 새로운 아이템을 접목하며 트렌디한 농촌 체험 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바람새마을 지척에는 소풍정원과 캠핑장이 있다. 아산·남양방조제 준공으로 생긴 저수지와 습지를 다양한 테마로 조성한 수변 공원과 캠핑장으로 평택의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소풍정원 수변을 따라 걷다 보면 동요 ‘노을’ 표지판이 있는 진위천 제방길이 나온다. ‘바람새길’이라 이름 붙은 6km 녹색길이 제방을 따라 이어지는데 왼쪽에는 생태가 살아 있는 진위천 습지가, 오른쪽으로는 아름다운 소풍정원과 황금 들녘이 펼쳐진다. 해 질 무렵이면 빨갛게 달아오른 저녁 해가 주위를 붉게 물들이며 서서히 서쪽으로 넘어간다. 그 시각 바람이 머물다 간 바람새마을에서는 분홍색으로 갈아입은 가을이 더욱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