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 조희숙 한식 세계화요?
우리의 맛을 지키는 것이죠

셰프들의 스승으로 불리는 한식 대가 조희숙 셰프.
2020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로 선정되고, <포브스>가
여성 리더 50인에 선정하는 등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고 있다.
40년 이상 한식을 연구하며 한식 세계화와 발전에 기여해온
조희숙 셰프에게 한식과
관련한 철학을 들어보았다.

글. 이선민 사진. 강신환


‘셰프들의 스승’, ‘한식계의 대모’라 불리는 조희숙 셰프는 40년 넘게 한식 외길을 걸어온 장인이다. 일반인에게는 익숙한 이름이 아닌데 해외에서 그를 먼저 알아보았다. 2019년 미쉐린에서 그녀의 레스토랑에 별 1개를 수여했고, 2020년에는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는 아시아 지역의 요리사, 레스토랑 대표, 기자, 미식가, 오피니언 리더 등으로 이루어진 전문가 그룹이 해마다 아시아 지역 최고의 레스토랑을 선정해 수상하는 행사다. 지난해에는 서울 최초의 ‘미쉐린 멘토 셰프상’ 수상자로 선정됐고, 올해는 <포브스>의 ‘50세 이상 성공한 아시아 여성 50인(50 Over 50)’에 윤여정 배우, 이인경 MBK파트너스 부사장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실력을 인정한 그의 요리 인생은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에서 가정 교사로 근무하던 그녀가 선배의 권유로 세종호텔 한식당 ‘은하수’에서 요리를 시작한 것이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한식의 매력에 빠져 교사에서 요리사로 “그 당시만 해도 요리사라는 명칭이 없었고, 오히려 주방에서 일하는 것을 숨길 정도로 천시하던 직업이었어요. 그러니 존경받는 직업인 선생님을 그만두는 것을 가족이 크게 반대했지요. 하지만 한식을 요리하는 일이 너무 좋았어요. 비록 몸은 힘들어도 요리하는 것이 좋아서 지금까지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세종호텔 은하수에서 10년 넘게 일한 후 노보텔 앰배서더,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 신라호텔의 한식당을 거친 뒤 2005년 미국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저의 총주방장을 맡았다. 세종호텔은 전통적 한식만 취급한 데 비해 다른 호텔은 세계 각국의 요리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조희숙 셰프에게는 세계 선진국 음식처럼 한식의 위상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때만 해도 한식의 세계화라는 말이 없었어요. 호텔의 각국 레스토랑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한식에 대한 인식이 저평가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전통 한식의 범주 안에서 색다른 면모를 끄집어 내려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먹는 맛과 보는 재미, 그릇과 담음새까지 신경 쓰면서 전통 한식을 품격 있게 담아냈더니 손님들이 인정해주시더라고요.” 조희숙 셰프는 외형은 모던하더라도 우리의 전통적 맛은 놓치지 않았다. 외국 손님들은 한식이 지닌 고유한 맛과 멋에 오히려 열광했다. 그녀가 대한항공 기내식 컨설팅을 할 때 자신이 준비한 음식을 보고 “이게 한식이야?”라고 말했다가도 맛을 보고 난 후 “아, 정말 한식이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며 한식의 정체성은 맛에 있다고 강조했다.

K-푸드 열풍 위해서라도 한식 요리사 양성 필수“요즘은 한식을 하는 젊은 요리사가 거의 없습니다. 재료를 손질하는 데 손이 많이 가는 데다 그에 비해 서양식보다 수익은 적으니까 대부분 한식을 하지 않으려 해요. 제가 ‘한식공방’이나 ‘한식공간’을 운영할 때는 후배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다들 배우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요리만 하다가 경영까지 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때 문을 닫자 싶었지요.”
‘한식공간’의 문은 닫았지만 그녀의 한식 연구와 세계화에 대한 관심은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김치 마스터 셰프 선발대회’ 심사위원장을 맡으며 후배 요리사들이 김치에 관심을 갖도록 격려했고, 지방 곳곳을 다니며 향토 요리 개발에 조언을 해주고 있다. 조 셰프는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는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는 소신도 밝혔다.
“우리만의 순수한 색깔을 지닌 한식을 만들 인재가 많아야 한식의 경쟁력이 높아집니다. 음식을 통해 문화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고유의 특성을 발견할 때 세계가 감동하고 다시 찾는 음식이 되니까요. 그래서 국가가 나서서 한식을 하려는 요리사를 지원해 주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것이죠.”
조 셰프는 중국산 김치 수입이 느는 것도 김치에 대한 대접을 제대로 안 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식당에서 김치는 당연히 무한리필로 내놓아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수익을 올리기 위해 결국 저렴한 중국산 김치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녀는 와인처럼 김치에도 등급을 매겨 가치를 올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중국산 김치 소비도 줄고 국내 농업계와 요식업계 모두 살릴 수 있다고.
묵묵히 한식 세계화의 근본을 고민하는 조희숙 셰프. 세계가 먼저 알아본 그녀의 소신이 실현돼 전 세계인이 한식 고유의 맛을 느끼기 위해 한국을 찾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