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사
운길산 8부 능선에 자리한 수종사는 조계종 봉선사 말사로 대한민국 명승 제109호다.
가을이면 500년 수령의 노란 은행나무 사이로 두물머리의 푸른 물결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조선 초기 학자 서거정은 “동방의 사찰 가운데 제일의 전망”이라 극찬했다. 우리나라 다도를 정립한 조선 후기 승려 초의선사는 이곳의 물맛을 천하일품이라 평했다.
정약용은 수종사의 세 가지 즐거움을 “동남쪽 봉우리에 석양이 붉게 물드는 것을 보는 즐거움, 강 위에 햇빛이 반짝이며 창문으로 비쳐 들어오는 것을 느끼는 즐거움,
한밤중 달이 대낮처럼 밝아 주변을 보는 즐거움”이라 자랑했다. 경기 남양주시 운길산의 중턱에 자리한 고찰 수종사(水鐘寺)를 두고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다.
수종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세조 5년(1459년)에 창건했다고 전해 내려온다. 세조가 금강산을 다녀오는 길에 두물머리에서 하룻밤 묵었는데,
운길산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었다. 다음 날 종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보니 바위틈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동굴 속에 18나한상이 모셔져 있어 이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로 불렀다고 한다.
이후 세월의 무게 때문에 스러져가던 수종사는 고종 황제의 시주로 다시 중창했으나 한국전쟁 때 불탔다.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74년 이후부터 시작된 불사(佛事) 덕분.
대웅보전을 시작으로 약사전, 종각, 응진전, 선불장, 삼정헌 등이 시나브로 세워져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왕의 명령으로 지은 절인 만큼 문화재도 많다. 대웅보전과 선불장 사이에는 모양이 서로 다른 탑 3개 중 2개가 보물로 지정됐다. 태종의 다섯 번째 딸 정혜옹주의
사리탑(보물 제2013호), 1493년에 건축한 팔각5층석탑(보물 제1808호)이 그것이다. 정혜옹주 사리탑 내부에서는 뚜껑이 있는 청자호 안에 금제9층탑과 은으로
도금한 사리기가 발견되어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또 팔각5층석탑에서는 여러 구의 금동불상이 수습되었는데, 이 불상군은 조선 전기의 불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차 맛도, 눈맛도 황홀한 절경
산 중턱에 자리한 탓에 수종사에 오르면 북한강, 남한강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한강과 나지막한 산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산수화가 따로 없다. 사계절 내내 꽃·신록·단풍·설경이 아름답고,
일출·일몰·운해까지 하루 종일 신비스러운 전망을 보여주니 서거정과 정약용이 천하제일이라고 극찬할 만도 하다.
수종사는 풍경뿐 아니라 물맛도 일품이다. 물맛이 좋으니 차 맛도 당연히 좋을 것. 조안면 능내리에서 나고 자란 정약용은 초의 선사, 추사 김정희와 함께 이곳에서 차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수종사는 이런 차 문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다도실 삼정헌을 만들었 다. 테이블마다 놓인 다기로 직접 차를 우려 마시는데, 다도의 순서를 안내해놓아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향긋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들면 전면의 통창을 통해 두물머리가 시원하게 내려 다보인다. 차 맛도 눈맛도 좋은 수종사의 핫 플레이스지만 찻값은 받지 않는다. 산 중턱의 절을 찾아 힘겹게 올랐으니
그저 편히 쉬고 차나 한잔하고 가라는 뜻이다.
삼정헌 옆 두물머리의 수려한 풍광이 내려다보이는 자리 한 귀퉁이에 묵언(默言)이라고 쓰인 푯말이 있다. 푯말을 보는 순간 입이 다물어진다. 말을 삼키자 바람 소리, 새소리, 나뭇잎 사각대는 소리만이 들린다.
수종사에서는 잠시 말을 잊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