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영 연구위원 2023 대한민국 트렌드
매년 연말이면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트렌드 코리아 >가 출간된다.
수많은 신조어를 발굴해내며 소비 트렌드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으로 유명한 <트렌드 코리아>가
올해는 더 높은 도약을 준비하는 검은토끼의 해가 되기를 기원했다. 2008년부터 대표 트렌드 서적으로 자리매김한
<트렌드 코리아>를 공동 집필해온 전미영 연구위원에게 2023년 트렌드 전망을 알아보았다.
PROFILE 전미영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서울대학교 소비자학 학사·석사·박사. 소비자 행복과 소비자 심리 분야에 관심이 많고, 서울대에서 소비자 조사법과 신상품 개발 방법론을 강의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리서치 애널리스트와 서울대 소비자학과 연구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롯데쇼핑 ESG위원회 위원장,
LG U+ MZ세대 자문단 자문위원, 국토교통부 정책홍보 자문위원, 교보문고 북멘토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소비자학회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으며, <트렌드 차이나>, <나를 돌파하는 힘>을 공저했다.
다수 기업과 소비트렌드 기반 신제품 개발 및 미래 전략 발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신조어 중 하나인 ‘소확행’,‘뉴트로’,‘언택트’,‘필 환경’, ‘가심비’ 등등은 어디서 나온 말일까? 바로 <트렌드 코리아>
집필진이 만든 신조어다.
“약 200~300명에 이르는 트렌드 헌터 집단으로부터 트렌드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이분들은 일반 직장인인데요, 직장이나 생활 속
에서 보이는 트렌드를 수집하는 일을 합니다. 그렇게 취합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른 데이터까지 더해 트렌드를 파악하고, 이를 반영할 수 있는 신조어를 만드는 것이죠.”
2008년부터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발간하는 <트렌드 코리아> 집필진으로 몸담아온 전미영 연구위원은 자신들이
트렌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현상을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정리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2018년 무렵 키오스크와 비대면 주문, 이런 게 많이 등장했어요. 저희 팀은 이런 것에서 사람들이 얻고 싶어 하는 가치가 무엇일까를 고민했습니다.
단순히 편리하면서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접촉했을 때의 부담감을 내려놓고 싶어 한다는 것을 파악한 후 언택트가 우리 사회의 트렌드라고 내놓은 것입니다.”
전 연구위원은 마음속에 담긴 욕망을 단어로 만들어 표현한 것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공감하며 위로받는 것 같다는 의미다. 전 연구위원은 이러한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은 기업이 마케팅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재가 아닌 미래를 고민하며 어떻게 내 아이를 키울지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평균이 실종되어가는 시대, 열 가지 트렌드는?
2023년 트렌드는 ‘평균 실종’, ‘오피스 빅뱅’, ‘체리슈머’, ‘인덱스 관계’, ‘뉴디맨드 전략’, ‘디깅 모멘텀’, ‘알파세대가 온다’, ‘선제적 대응 기술’,
‘공간력’, ‘네버랜드 신드롬’ 등 총 열 가지로 설명된다. 이 중 2023년 전체를 아우르는 트렌드는 평균 실종이다. 평균, 기준, 통상 적인 것에 대한 개념이
무너지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소득의 양극화는 정치·사회 분야로 확산되고, 갈등과 분열이 전 세계적 현상이 되고 있어요. 소비 역시 극과 극을 넘나들고 시장은 ‘승자 독식’으로 굳혀지고 있죠.
중간이 사라지는 시대를 ‘평균 실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른 트렌드 역시 평균이 실종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 연구위원은 알파 세대의 등장이 평균 실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알파 세대란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인 2010년 태생 이전 세대를 말한다.
세대 구분은 15년 간격으로 하는데, 1960년대 베이비 부머가 끝난 후 밀레니얼 세대가 등장했고 그 후 Z세대, 알파 세대까지 15년 간격으로 나온다.
전 연구위원은 이 세대는 평균적인 목표를 추구하기보다 1,000만 유튜버처럼 자신만의 색깔을 찾으려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알파 세대의 부모가 밀레니얼 세대예요. 이들은 국영수뿐 아니라 코딩 같은 실용적 교육도 중요시합니다. 교과서 외에 내 아이가
잘하는 것을 지원하려는 거죠.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는 평균적인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게 바로 평균이 실종되어가는 트렌드를 반영한
교육관이고 알파 세대에게 필요한 교육이기도 하지요.”
세대 구분보다 취향을 존중하며 사업을 펼치길
전미영 연구위원은 요즘 들어 나이 든 사람 중 어른이 되기를 늦추고자 하는 경향도 평균 실종이라고 주장했다. 어른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어른 되기를 한껏
늦추고자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단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사회 활동에서 은퇴하는 진짜 노년은 줄어들고, 일하며 즐기는 청년기가 늘어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젊은 사고방식으로 살아야 사회에서 더 버틸 수 있게 된 측면도 있다. 이는 단지 외모를 젊게 보이고자 하는 성형과 미용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고방식과
가치관 전반에 걸쳐 청년식 사고를 지니게 된 것이다.
“가족을 부양하면서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는 것이 어른으로서 당연하다고 여기던 때가 있어요. 하지만 요즘 60대나 70대 어른을 만나면 예전처럼 꽉 막혀 있거나 권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사회를 더 배우려 하고 연예인에 관심을 갖거나 팬클럽 활동을 하는 분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철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정신적 젊음을 추구하는,
아주 명랑하고 유쾌한 어른이라는 의미로 ‘네버랜드 신드롬’이라고 표현했어요.”
전 연구위원은 피터팬 신드롬이 아닌 네버랜드 신드롬으로 명명한 것은 철없는 피터팬이 아니라, 피터팬 같은 늙지 않은 사람이
모여 사는 네버랜드라는 긍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네버랜드 신드롬을 반영해 경기도가 중장년 사업을 기획할 때 굳이 세대 구분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판교에 위치한 창조혁신센터의 경우 젊은 세대를 위한 디지털 사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는데, 이곳을 중장년도 공유할 수 있는 사업으로 확대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젊은 층, 중장년층, 노년층 등의 구분을 없애고 열린 사고로 기획해야 트렌드에 맞는 사업이 될 것이라 조언했다.
“불황기의 소비자는 가성비와 합리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요. 혜택은 받으면서도 실제로 구매하지 않는 소비자를 체리피커로 일컫는데, 여기에는 얌체 같다는 약간의 부정적 뉘앙스가 있습니다. 체리슈머는 소비자끼리 합치고 나누고 쪼개며 극한의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배달 음식을 시킬 때 배달비가 부담되니까 당근마켓 같은 데서 함께 배달시킬 사람을 찾아서 배달비를 각자 나눠서 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극한의 가성비 추구로 얌체족과는 다른 새로운 소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팬데믹 이후 대사직 시대라 이를 정도로 사직하는 직장인이 늘어나고, 워라밸과 재택근무 및 하이브리드 근무가 뒤섞이며 직장 문화가 바뀌는 트렌드를 반영한 ‘오피스 빅뱅’, 관계의 밀도보다 스펙트럼이 더 중요해진 요즘의 대인 관계를 ‘인덱스 관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트렌드를 안다는 것은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한 방법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현재 내가 이런 것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 연구위원은 위기라고 예측하는 새해를 맞고 있지만, 잘 듣고 잘 보는 토끼처럼 지혜롭고 유연하게 뛰어올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의 부제를 ‘Rabbit Jump’로 지었다고 한다. 불황으로 다소 주춤하기는 하겠지만 웅크렸던 토끼가 더 높이 점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이 시기를 잘 버티고 마침내 비약적 도약을 이뤄낼 경기도민을 기대해본다.
<트렌드 코리아 2023>
<트렌드 코리아 2023>은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김난도 교수와 10명의
저자가 집필했다. 2008년 말에 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09>를 시작으로 매해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내년도 소비 키워드를
‘래빗 점프(Rabbit Jump)’로 정했다.
검은토끼의 해를 맞아 ‘교토삼굴(狡兎三窟)’의
지혜로 토끼처럼 뛰어올라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
어려울수록 트렌드에 대응해 불경기를 이겨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