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으로 이어간 희망의 선율 피아니스트 이훈의
끝나지 않은 도전

2024. 12

경기도 장애인 오케스트라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왼손 피아니스트 이훈.
독일과 미국에서 유학하며 피아니스트로의 꿈을 키워온 그에게 뇌출혈이라는 큰 시련이 닥쳤다.
그 후 각고의 재활 과정을 거쳐 다시 피아노 앞에 앉은 이훈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글. 이선민
사진. 전재호
지난 6월 경기문화재단 아트홀에서 ‘아트살롱’ 특강이 열렸다. 이 특강은 음악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진로 및 취업 등에 대해 고민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여기서 특별 공연으로 진행된 피아노 연주는 참가자들에게 용기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불편한 걸음걸이로 무대에 오른 이를 보며 ‘저 사람이 피아노를 친다고?’ 의문을 갖는 이가 대부분. 그러나 막상 연주가 시작되자 다들 감탄사를 연발했다. 왼손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다니! 큰 감동을 선사한 이는 다름 아닌 ‘왼손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이훈 피아니스트였다. 경기도는 지난 9월 많은 이에게 감동을 선사한 이훈 피아니스트를 경기도 장애인 오케스트라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언젠가는 경기도 장애인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협연을 하고 싶다는 이훈 피아니스트가 걸어온 삶은 기적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손가락 하나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어요.
그런데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마다 신경이 자극되며 조금씩 오른손으로 감각이 전달되는 것을 느꼈죠.
그때 피아노가 제게 주는 힘을 깨달았고, 피아노는 저에게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재활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뇌졸중으로 좌절된
피아니스트의 꿈
어린 시절 피아노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훈 피아니스트는 초등학교 합창대회에서 반주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피아니스트의 길을 꿈꾸기 시작했다. 선화예술고등학교 재학 중 유학길에 올라 독일, 네덜란드를 거쳐 2012년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을 눈앞에 두고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쓰러지며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그날은 평소처럼 일상적인 날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쓰러진 후 긴 시간 동안 코마 상태에 있었고, 깨어났을 때는 오른쪽 팔과 다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어요. 좌뇌의 60%가 손상되어 언어도 잃은 상태였죠. 정말 앞이 캄캄했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 꿈을 이뤄가던 중 닥친 시련은 가혹했다. 다리와 팔의 마비뿐 아니라 언어장애까지 겹치면서 일상생활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훈 피아니스트는 피아노에 대한 열정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수년간의 재활 치료와 함께 피아노를 통해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처음에는 손가락 하나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어요. 그런데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마다 신경이 자극되며 조금씩 오른손으로 감각이 전달되는 것을 느꼈죠. 그때 피아노가 제게 주는 힘을 깨달았고, 피아노는 저에게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재활의 원동력이었습니다.”
피아노를 통해 매일 자신과 싸우며 그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점점 회복했다. 이 과정에서 음악의 치유력을 몸소 경험한 이훈 피아니스트는, 피아노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왼손 연주의 시작,
기적을 써 내려간 시간들
피아노를 통한 재활을 하던 그가 다시 피아니스트로 거듭나게 된 계기는 은사의 조언 덕분이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지 4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훈 피아니스트는 우연히 선화예술고등학교 시절 은사 전영혜 교수님(경희대 음대 명예교수)을 만났다. 그 은사는 유럽은 제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부상을 입은 많은 군인 피아니스트들이 생겼고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 그 후 왼손으로만 연주한 곡들 (예를 들어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이 만들어졌다며 그에게 왼손 연주에 도전해 보라고 권유했다.
“선생님께서 ‘왼손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우리나라에는 아직 왼손 피아니스트가 없지만 제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고요. 만약 그때 그런 조언을 듣지 못했다면 피아노를 그만두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후 그는 라벨과 스크랴빈 등 여러 작곡가가 만든 왼손 피아노곡을 연습하며 왼손 연주에 점차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왼손으로만 연주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 손만으로도 무대를 압도하는 연주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훈 피아니스트의 이런 의지와 노력을 알게 된 신시내티 대학교에서는 이례적으로 그에게 미국에서 일곱 번의 연주회를 끝내는 조건으로 박사학위를 수여하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포기했던 박사학위를 받겠다는 열의로 피땀 어린 연습 끝에 2017년 영광의 박사학위(DMA)를 받을 수 있었다.
경기도 장애인 오케스트라가 더 많은 도민에게 알려지고 후원을 받아, 많은 분이 음악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음악은 장애인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닌 삶을 살아갈 힘이자 사회와 연결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경기도민이 함께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훈
선화예술중학교를 거쳐 선화예술고등학교 재학 중 독일로 건너가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뤼베크 국립음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국립예술대에서 학업을 이어 갔다. 이탈리아 Le muse 콩쿠르, Terme AMA Calabria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2012년 8월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 음악 박사학위 논문 집필 중 뇌졸중으로 오른쪽 마비와 언어장애가 생겼다. 수술과 재활 치료를 거쳐 2016년 7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왼손 피아니스트로 첫 독주회를 열었다. 이후 독주회와 디지털 앨범 발매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기도 장애인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새로운 도전
현재 이훈 피아니스트는 경기도 장애인 오케스트라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음악이 장애인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널리 알리고 있다. 그는 피아노가 신체와 뇌를 자극해 발달장애인의 재활에 효과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아노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신체와 뇌를 동시에 자극하는 최고의 도구입니다. 발달장애인들이 피아노를 치면 뇌가 자극받아 집중력과 협동심이 발달합니다. 단순한 악기 연주를 넘어 그들의 삶과 사회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거죠.”
음악이 자신의 삶을 회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이훈 피아니스트는 경기도 장애인 오케스트라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후원으로 이어져 장애인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경기도 장애인 오케스트라가 더 많은 도민에게 알려지고 후원을 받아 음악을 통해 많은 분이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음악은 장애인들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닌 삶을 살아갈 힘이자 사회와 연결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이 함께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훈 피아니스트의 하루는 피아노 연습과 산책으로 가득 차 있다. 오전에는 피아노 연습을 하고, 오후에는 산책으로 신체 회복을 도모하며, 저녁에도 피아노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에게 피아노는 단순한 재활 도구를 넘어 삶의 전부다. 그리고 지난 11월 5일 독주회에서 오른손으로 건반을 눌러 음을 내는 기적을 선보인 이훈 피아니스트. 꼼짝도 하지 않던 오른손을 움직여 건반 음을 내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그를 위해 작곡을 했던 작곡가 김보현 선생님을 비롯해 독일에서 그의 연주회를 듣기 위해 방한한 독일 친구들, 가족들 모두 뜨거운 눈물을 흘린 감동의 시간이었다.
“저는 언젠가 양손으로 피아노를 연주할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목표를 향해 오늘도 연습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왼손 피아니스트로서 무대에 서는 것도 자랑스럽지만, 피아노를 통해 조금씩 오른손을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더 큰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훈 피아니스트는 경기도가 자신에게 공연할 기회를 준다면 그곳이 어디든 도민 앞에서 행복하게 연주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훈 피아니스트의 현재는 여전히 장애와 좌절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연주해 나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의 미래는 피아노와 함께 더 많은 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파하는 기적으로 가득 찰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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