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과 이웃한 관인문화마을은 포천 최북단 마을로 한국전쟁 격전지였다. 폐허가 된 마을을 미군이 재건했고, 1980년대 이후 노후화로 쇠락의 길을 걷다가 마을재생사업으로 새 역사를 쓰고 있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영웅아, 누나 왔다 간다!”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 앞에서 한 무리의 중년 여성이 웃음꽃을 피우며 사진 찍기에 열심이다. 임영웅의 족적을 따라가는 일명 ‘웅지순례지’ 중 한 곳인 관인문화마을이다.
“임영웅 씨가 우리 마을에 와서 노래로 봉사 활동을 여러 번 했어요.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벽화를 그렸는데, 입소문이 나서 팬들이 많이 찾아오시네요. 덕분에 우리 동네도 덩달아 유명해졌어요.”
관인문화마을(이하 관인마을)의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조춘희 관인문화재생연구회 대표는 2017년부터 자발적으로 깨끗한 마을 만들기를 실천했는데, 그 작은 노력들이 모여 다양한 재생사업에 선정되었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며 마을을 소개했다.
미 보병 제40사단의 재건으로 전쟁의 아픔 치유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철원과 이웃하고 있는 관인마을은 포천시 최북단 마을이다. 위치로 보면 삼엄한 군사 지역일 것 같지만 철원평야의 한 자락을 차지할 정도로 드넓은 농토를 자랑하는 평온한 농촌이다. 후삼국시대, 궁예의 학정을 못 이긴 어진 관리들이 관직을 버리고 모여 살던 동네라 ‘관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45년 광복 이후 북한 땅이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이 수복했고, 김일성이 원통해 보름을 통곡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어른들 말씀에 의하면 한국전쟁 통에는 불바다가 따로 없었답니다. 피란 갔다 와 보니 마을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고 해요. 그걸 미 보병 제40사단이 재건해 주었지요. 관인면사무소 중앙 로터리를 중심으로 방사형 길이 뻗어나가고, 사이사이에 골목이 모세혈관처럼 연결되도록 조성했는데, 40사단 엠블럼인 구름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는 모양(sunburst)이었습니다.”
미 보병 제40사단의 지원으로 면사무소, 초등학교, 중학교, 체육관, 우체국 등 주요 공공시설이 세워지면서 새롭게 탄생한 관인마을은 전후 대한민국의 아픔을 치유하고 북한과 남한 사이에서 새롭게 계획된 도시로 마을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70년대까지 관인마을은 번성을 누렸다. 소읍인데도 인구가 1만 명이 넘었고 우시장,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당시 소문난 옷 가게였던 한일상회 이병항 씨는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동대문까지 가서 옷을 떼다 팔았다고 한다. 그 거리가 무려 136km였는데, 돈 버는 재미에 힘든 줄 몰랐다고.
문화 재생으로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주변 신도시로 주거지와 상권이 대거 이동하면서 반백년 동안 물리적 성장은 멈추고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닫힌 가게와 빈 건물이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본 조춘희 대표는 주민 몇몇과 함께 뜻을 모아 마을 청소부터 시작했다. 쓰레기를 치우고 꽃밭을 만들고 거리를 정돈하자 한결 정감어린 단정한 마을이 됐다.
때마침 마을재생사업 붐이 일면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의 문화마을재생사업에 선정되어 벽화, 이야기를 담은 아트 간판 등이 설치되고 구술생애사 기록, 기억밥상 등 문화와 역사를 기록하는 활동이 이어졌다. 마을의 문화 재생 방향을 설정하고 그 변화를 직접 만들어가는 주민들로 구성된 관인문화재생연구회가 결성되어 마을재생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경기에코뮤지엄사업, 경기도 관광테마골목육성사업에도 선정되어 옛 버스터미널 매표소를 개조한, 마을의 역사 기록 전시 공간인 관인에코뮤지엄이 탄생했고, 관광객을 위한 마을투어 코스도 개발했다.
주민 삶이 담긴 시간 여행지
“면사무소에서 시작돼 1.5km 정도 되는 ‘해·바라기길’은 이제 우리 마을을 대표하는 길이에요. 벽화와 아트 간판이 설치되어 있고, 옛날 간판도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죠. 또 마을 정원, 체험 공방 등도 조성되어 더 재미있게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답니다.”
마을의 쇠락이 방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민들의 애정 어린 손길이 닿은, 1970년대에 멈춘 마을 풍경은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관인문화마을의 문화 재생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전통과 현재의 문화를 잇는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 문제를 겪고 있는 지역이지만, 문화재생을 통해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으며 경기 북부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변모하고 있는 관인문화마을은 단순히 재생된 공간을 넘어 관인마을의 역사와 주민의 삶이 켜켜이 쌓이고 고스란히 녹아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조춘희
(관인문화재생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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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인에코뮤지엄
허름했던 버스터미널 매표소가 마을과 주민들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역사,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경기에코뮤지엄사업으로 재생된 이곳은 마을의 거점 공간이자 마을 옛이야기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 흐르고, 관인마을 음식 레시피를 전시한 문화 공간이다.
주소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관인로 22
전화 0507-1443-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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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와 아트 간판
관인마을의 가장 큰 볼거리는 단연 지역 가게를 소개하는 간판과 벽화다. 마을의 낙후된 부분을 정비하고자 재탄생한 골목길 벽화는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포토 존으로 거듭났다. 옛 초가집과 일상을 그려낸 벽화, 그리고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운영해 온 가게 주인들의 초상화가 담긴 간판 등 기발하고 정교한 벽화가 재미를 더한다.
주소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관인로 18
전화 0507-1443-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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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식당
1966년에 경기도 1호 조리사가 된 황연실 씨의 손맛이 담긴 식당. 한우 생등심을 비롯해 20여 가지의 다양한 메뉴가 있는데, 한우곱창전골과 매운돼지갈비찜이 인기다. 예전에 있던 우시장 덕분에 쌓인 고기 손질 노하우가 맛의 비법. 조미료 맛 안 나는 반찬도 집밥 맛을 느끼게 한다.
주소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탄동길 8
전화 0507-1325-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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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이발관
70년 경력의 염승구 이발·면도 명장이 운영하는 이발관으로 관인마을 남성들의 사랑방이라 힘들어도 문을 닫지 못하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1980년대 시설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레트로 감성을 즐기기에 안성맞춤. 1만 원에 이발과 면도 체험을 모두 할 수 있다.
주소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탄동1길 21-1
전화 010-3747-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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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관인마을에는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이 많아 북한 음식이 전수되고 있다. 봄날에서는 대표적인 이북 음식인 호박만두를 맛볼 수 있다. 고기가 귀해 호박, 부추, 양파 등 채소를 많이 넣어 만든 만두로,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주소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관인로 33-1
전화 031-531-5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