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농반어의 작은 동네에서 지구촌 마을이 되기까지 다문화특구 원곡동

2025. 01

반농반어의 작은 부락이 50년이 지나는 동안 외국인이 전체 주민의 95%나 되는 지구촌 마을이 되었다. 50여 개국에서 온 1만9,000여 명의 이주민이 저마다 문화를 간직한 채 더불어 살고 있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1980년대 원곡동
안산원곡초등학교의 전신인 풍곡초등학교의 1965년 전경
“안산 좋아요. 첫째, 공장이 많아요. 둘째, 이주 노동자가 많아요. 셋째, ○○ 나라 사람도 많아요. 그래서 서로 일을 소개해 줄 수 있어요. 여기서만큼은 한국인과 외국인 모두 아무 문제 없이 지내고 있어요. 차별이 없거든요. 다 좋아요. 마음대로 편하게 살 수 있어요.”
이주민 사이에 ‘한국에서 생활하는 이주민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살고 싶어 하는 곳’이 된 안산 원곡동. 대중에게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사는 동네’, ‘각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다문화음식거리’ 정도로 여겨지던 이곳이 이주민에게는 ‘차별받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작은 해방구’였다. 원곡동이라는 행정명이 참 낯설게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다문화특구’, ‘다문화음식거리’, ‘국경없는마을’ 등 늘 이주민과 관련한 명칭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원주민보다 이주민이 훨씬 더 많아진, 토박이를 찾아보기 힘든 원곡동은 어떤 역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을까?
100개의 성씨가 모여 사는 국경없는마을
원곡동은 마을 대부분이 야트막한 구릉지로 이루어진 반농반어의 작은 부락이었다. 1970년대 말 안산 남양만 갯벌이 매립되고, 한국 최대 산업 단지인 반월공단이 건설되면서 원곡동은 매립지 주민들의 새로운 거처인 ‘이주민 단지’가 되었다. 그리고 반월공단이 완공되면서 일자리를 찾아온 한국인 노동자들의 동네가 되었다. 원주민에서 이주민으로, 다시 노동자로 주인이 바뀐 원곡동은 1990년대 제조업 불황과 IMF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공단의 대다수 기업이 떠나가면서부터 또다시 변모하게 된다. 1988년 이후 한국을 찾기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가 그 빈자리를 빠르게 채워간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원곡동은 한국 최대 이주민 밀집 거주 지역일 뿐 아니라 ‘한국 속 작은 아시아’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다문화 1번지’, ‘다문화 중심 도시’로 거듭났다. 현재 50~60개국 1만9,965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원곡동은 이주민이 전체 주민의 95%일 정도로 이주민이 월등히 많다. 원래 원곡동은 풍수로 보아 100개의 성(姓)이 살 곳이라 해 백성말(百姓洞, 백성동)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가 속설이 아닌 현실이 되었으니 흥미롭기 그지없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경제적·사회적으로 차별이 심했죠. 그래서 사회단체와 인권단체, 종교인을 중심으로 내국인 외국인 차별 없이 다 함께 잘 사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국경없는마을이었습니다.”
내·외국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실험적인 지역 공동체(다문화 공동체)였던 국경없는마을을 이끈 안산이주민센터 박천응 대표는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도와주고, 서로 마음을 열어 소통하고 어울린다면 살기 좋은 지역이 될 수 있다는 신념과 희망에서 나온 명칭이 바로 국경없는마을”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시민단체와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이주민 지원은 안산시에서 다문화특구라는 이름으로 원곡동 일대의 관광특구 정책을 강행하면서 발전 방향과 방식에 이견이 생기기 시작했고, 주도권 경쟁과 중복 사업으로 민간 단체의 역할이 축소되었다. 이에 박천응 대표는 “공공기관의 지나친 개입으로 거버넌스가 깨졌고, 공동체 정신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강변했다.
안산이주민센터는 원곡동을 내국인 외국인 차별 없이 다 함께 어울리며 잘 사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문제 해결부터 축제까지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이주민의 안식처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원곡동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2009년 다문화음식거리로 지정된 후 다양하고 특색 있는 음식점이 늘어나면서 매년 350만 명의 관광객이 찾을 만큼 관광 명소가 되었다. 안산시는 지정 구역을 확대하고, 활성화를 위해 QR코드를 활용한 다국어 메뉴판 제작·보급, 지정 구역 내 통일된 음식점 표지판 제작·설치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원곡동에는 약 1,400곳의 사업장이 있고, 식당만 해도 230곳이나 됩니다. 그런데 이들을 통제할 법이 없어요. 다문화 특구로 지정했으면 그에 걸맞은 특구법을 제정해야 그 안에서 원활하게 돌아가죠.”
원곡동 주민자치회 회장이자 원곡동 글로벌상인회 회장인 오군호 회장은 “특구라는 명칭이 있지만, 이를 지원하는 법적 체계가 없어 실질적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며 다문화 특구 특별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중국, 베트남, 러시아, 네팔, 아프리카 등 수십 개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거대 글로벌 음식 거리”라며 “해당 음식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미식 투어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다문화 특구의 매력을 더욱 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제 원곡동은 언젠가 떠날 외국인들이 사는 뜨내기 동네가 아니라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 이주민들의 마을이 되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고, 친구들도 많은 곳이며,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모두가 모두에게 소수자여서 사회·문화적 차별과 시선의 폭력에서 자유로운 안식처가 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그 주인이 바뀌는 진정한 이주민의 동네인 원곡동. 전형적이며 전통적이었던 한국의 농어촌 부락이 50여 년 만에 한국 속 작은 지구촌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오군호
(글로벌상인회 회장)

다문화 마을 특구로
놀러 오세요
  • 원곡공원
    현충탑이 있는 공원으로 원곡동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주말에는 이곳에서 각국의 음식 축제와 문화 행사가 열린다. 주민들 산책과 운동 코스로 인기가 높다.

    주소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로 10
  • 마리나베이커리
    러시아식 케이크와 페이스트리를 비롯해 고풍스러운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우유 맛이 강하고 달콤한 것이 특징. 나폴레옹 케이크, 꿀 케이크가 가장 인기 있으며, 머랭·쿠키·호두과자 등도 많이 찾는다.

    주소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부부로8길 19
    전화 010-5674-5122
  • 오뚜기수타면
    중국 전통 방식으로 만든 수타면을 맛볼 수 있는 곳. 손으로 뽑아낸 면발이 부드럽고 쫄깃하다. 오곡으로 만든 찐빵에 채소볶음을 곁들이는 오곡잡곡만두, 궈바오러우, 무한 리필 훠궈도 인기 만점이다.

    주소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로 23
    전화 031-507-3689
  • 사라이도네르케밥
    튀르키예 전통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케밥과 샤와르마로 유명하다. 부드럽고 풍미 깊은 양고기와 소고기를 얇게 저며 부드러운 피타 브레드에 담고, 담백한 소스를 곁들인 튀르키예 정통 스타일의 케밥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튀르키예식 푸딩과 디저트도 놓치면 아쉽다.

    주소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부부로8길 19
    전화 010-5674-5122
  • 안산시세계문화체험관
    50여 개국에서 수집한 악기, 인형, 유물, 음식 모형, 가면, 놀이 문화 등 1,4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중국, 일본, 베트남, 러시아,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여러 나라의 의상이 준비되어 있어 직접 입어보고 체험할 수 있다.

    주소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부부로 43 외국인주민지원본부 3층
    전화 031-481-3732, 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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