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써서 사회·문화적으로 노포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는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이 있고 <수요미식회> 등 주요 방송에 출연했다.
만찬. ‘손님을 초대해 함께 먹는 저녁 식사’를 말한다. 그런데 비싼 요리도 아니고 평범한 순대로 만찬을?
하지만, 순댓국을 한 입 맛보면 절로 동의하게 된다. 바로 서민 동네 성남에 있는 ‘순대만찬’이다.
사진. 전재호
“원래는 분식집으로 시작해서 순댓국으로 넘어왔어요. 이곳이 서민 동네여서 분식, 순댓국 같은 게 잘 팔려요.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고비를 넘기며 장사를 했네요.”
‘순대만찬 성남본점’ 박서희 대표의 말이다. 그는 이곳 성남동이 좋다.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순댓국을 팔고, 장사도 잘되고 보람도 있기 때문이다.
“성남은 서민 동네잖아요. 이곳도 역세권이라곤 하는데 여전히 소박한 동네예요. 회사원도 거의 없고, 손님도 대부분 동네 주민이고. 어떻게 보면 장사하기 힘든 곳이지요.”
주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뜨끈한 순댓국밥이 나온다. 가게 안에 퍼져 있는 냄새로 어느 정도 맛을 판단(?)하게 되는 게 내 직업인데, 이 집은 합격이다. 구수한 사골과 고기 곤 냄새가 제대로 난다. 그러면서도 깔끔하다. 순대 질도 좋다. 가격은 순댓국 9,000원. 아주 싼 값은 아니지만 정갈한 가게와 주방을 운영하는 비용이 더 들어간다고 보면 될 듯하다. 국물은 돼지 콜라겐과 고기가 제대로 녹아서 살짝 끈끈한 맛이 살아 있다.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순대는 고기가 듬뿍 들어가서 고급이다. 나박나박 썬 무김치가 나오는데, 이게 또 별미다. 진한 김칫국물을 국밥에 부어서 먹어도 좋다. 전국적으로 흔히 돼지국밥과 순댓국밥을 구분하곤 한다. 부산·경남 쪽에서 파는 걸 돼지국밥, 기타 지역을 순댓국밥으로 나눈다. 부산·경남은 살코기에 방점을 찍는다고 하지만, 사실 그 지역에서도 돼지머리와 순대를 넣는 순댓국밥 방식도 많기 때문에 무 자르듯이 구분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수육과 부추무침을 제공하는 방식은 돼지국밥, 들깨를 쓰고 순대를 강조하는 국밥은 순댓국밥으로 나누면 될 듯하다.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순대는 고기가 듬뿍 들어가서 고급이다. 나박나박 썬 무김치가 나오는데, 이게 또 별미다.
진한 김칫국물을 국밥에 부어서 먹어도 좋다.
“코로나19로 고생을 많이 했어요. 도에서 지원받으면서 버텼지요. 팬데믹이 해제되면서 24시간 운영했어요. 그때 몸이 참 힘들었습니다.”
서민 동네의 특징이 있다. 바로 새벽부터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밤늦게까지 일을 한다. 이 지역엔 도시의 구조를 떠받치는 사람이 많이 산다. 새벽 전철과 버스가 만원이 되는 동네다.
“몸이 힘들고 좀 더 오래하려면 영업시간을 줄여야 했어요. 그래도 아침 8시에 열어서 새벽 1시까지는 지킵니다.”
전통적으로 순댓국집은 순댓국 말고 안주류나 일품요리는 별로 없다. 국밥을 회전시키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순대를 예쁘게 그릇에 담아내고, 전골류를 만드는 집도 많아졌다. 경영 방식이 다각화된 것이다. 경쟁이 심해지고 운영비와 인건비가 올라가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졌다. 어쨌든 과거의 방식대로 운영하는 순댓국집을 전통형, 이 가게처럼 인테리어를 정갈하게 하고 일품요리를 강조하는 방식을 현대형 순댓국집이라 할 수 있겠다. 손님들도 젊어지고 새로운 세대의 사람들로 바뀌어가는 것도 시대의 흐름이다.
“하루 18시간씩 일했어요. 요새는 조금씩 쉬면서 하고 있어요. 공부도 해야 하고요.”
사실 이 가게를 알게 된 것은 한 음식 공부 모임에서였다. 박 대표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분이다.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돼지머리와 사골이 익으며 진한 맛을 뿜어내고, 소주 한 잔에 순댓국 한 그릇을 비우고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곳. 이런 가게가 오래 버틸 수 있는 나라를 우리는 소박하게 꿈꾸고 사는 것 아닐까.
“먹고사는 게 제일 중요하지요.(웃음)”
뚝배기의 마지막 한 술을 떴다. 순대 한 점이 오래도록 감칠맛을 내며 입안에 머물렀다. 그저 먹고살 수 있는 나라를 바라는 소박한 서민들이 사는 동네다. 참, 상호에 ‘성남본점’이 붙지만, 아직 분점은 없다. 언젠가 사업을 일으키고 싶은 희망을 담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성남센트럴푸르지오시티 117·11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