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식을 부르는 맛 부천 송내역 갈치랑 고등어랑

2024. 10

이 칼럼은 늘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완성된다. 이번 호는 ‘송내 맛집’을 잘 안다는 지역 지인이 귀띔해준다.
갈치와 고등어 전문 식당이다.

글. 박찬일
사진. 전재호
아버지·어머니·아들, 주방장만 3명
송내는 수도권 전철 1호선인 경인선이 연결되는 송내역과 그 주변으로, 인천과 접경을 이룬다. 송내를 인천 지역으로 아는 이가 많은데, 1974년 개통 때부터 부천 소속이었다. 취재진이 들어서니 한 젊은이가 깍듯이 인사하며 일행을 맞이한다. 이 집엔 주방장이 3명 있는데, 그중 막내다. 주방을 책임지는 주방장은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어야 한다. 한데 이 집은 3명이나 된다. “어머니가 반찬 등 음식 조리를 책임지시고, 아버지는 회를 떠주세요. 저는 미래의 주방장입니다.(웃음)” 올해 서른넷인 문우제 셰프의 말이다. 그는 조리학과를 다니다가 입대했고, 군대도 조리병으로 근무했다. 전역하고 호텔에서 일하다가 가업을 잇기 위해 가게로 왔다. 부모가 아직 나이가 많지 않아(부친 62세, 모친 60세) 같이 일한다. 이 가게는 송내역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검색해도 바로 나오는, 이 지역 터줏대감 격이다. “송내역에는 노포가 많아요. 우리 가게도 20년 넘었고요. 새로 생기는 프랜차이즈는 적은 편입니다. 손님은 단골이 많습니다. 주중에는 회사원이 주로 오시고, 주말에는 근처 아파트 주민도 많이 들르시지요.” 송내역이 개통될 당시엔 지금처럼 이용객이 많지 않았다. 부천 지나 부평, 동인천으로 이어지는 수도권 전철 경인선에 부천 다음 역으로 송내역을 건설한 건 인구 집중을 예상한 정부의 계획 덕분이었다. 송내역을 둘러싸고 있는 중동, 상동 등지에 도시계획으로 거대한 주거 단지가 생긴 건 오래전 일이 아니다. 그 전까지는 전형적인 논밭이었다. 부천 출신의 친구는 오래전 송내역 인근에 포도밭과 복숭아밭이 아주 많았다고 알려줬는데, 현재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전형적인 주거지역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갈치랑 고등어랑’은 상호명에서 알 수 있듯 고등어와 갈치 요리가 전문이다. 처음 생길 무렵부터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제주 음식을 표방했다. 지금도 마치 제주도에서 먹는 것처럼 구이와 조림, 고등어회 등을 주력으로 한다. 제주 생선 어획량이 안 좋아진 지 오래. 구하기도 어렵고, 값도 너무 비싸다. 결국 제주 생선을 쓰지 못하게 되어 안타깝다. 제주식 생선 요릿집이기는 하되, 재료는 타 지역에서 이리저리 구해야 한다. “25년 정도 된 가게인데, 원래는 다른 분이 시작했다가 1998년에 부모님이 인수하셨어요. 현재보다 크기가 작은 가게였어요. 장사가 잘되어서 옆 가게를 터서 늘렸죠. 학교 다닐 때도 방과 후 가게 일을 돕곤 했어요. 그러다가 아주 들어오게 됐지요.”
생선구이와 찜을 주문했는데, 내오는 그릇이 예사롭지 않다.
문우제 셰프가 직접 기술자에게 주문해서 알루미늄으로 만든 특수 전골 냄비다. 예쁘고 든든한 그릇이다. 은빛 냄비에 빨간 조림이 익어가니 더 맛깔스러워 보인다.
갈치랑 고등어랑

주소 경기 부천시 원미구 상일로122번길 27
전화 0507-1401-7566
직화 구이는 살살 녹고, 조림은 국물까지 싹 비우는 맛
문우제 셰프는 일하는 게 재미있다고 한다. 요리로 일찌감치 진로를 정했을 만큼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히 힘들어하는 눈치다.
“가게 쉬는 날이 없어요. 식구들이 모두 나와서 일하니까 더 열심히 해야 하고요. 동생도 합류해서 홀에서 일합니다. 가족 노동이라 남보다 2배 이상 일한다고 해야 할까요.”
가족의 힘으로 꾸려가는 가게이니 거의 쉬지 않고 일하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그만큼 경기가 어렵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요새 경기 안 좋다, 가게 안 된다는 말을 하기 어렵죠. 저희보다 더 어려운 가게가 워낙 많아서요.”
청년 셰프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진다. 그래도 이 일대에서 제일 잘되는 가게 중 하나인데, 만만치 않은 요즘이다. 이 가게는 가격도 착하다.
고등어는 직화로 구워내기 때문에 껍질이 바삭하고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노란 뱃살은 입에서 살살 녹는다. 부천 막걸리를 한잔 곁들이니 천국이 따로 없다. 갈치는 목포의 먹갈치다. 두툼하고 크다.
“동네 장사라고 하잖아요. 생선 크기 같은 거 마음대로 줄이지 못해요. 단골들은 다 알거든요.(웃음)”

어머니가 찬을 맡아서 만드는 집답게 반찬도 입에 붙는다. 친척 중에 농사짓는 이가 있어서 채소를 많이 보내준다. 취재 갔을 때 마침 문 셰프의 어머니는 가지를 손질하고 있었다. 마트에서 흔히 보는 반듯한 가지가 아니라 막 자라서 크고 울퉁불퉁하다. 취재할 때 그 가지를 무쳐서 내왔다. 손맛이 느껴지는 가지무침이었다.
생선구이와 찜을 주문했는데, 내오는 그릇이 예사롭지 않다. 문우제 셰프가 직접 기술자에게 주문해서 알루미늄으로 만든 특수 전골 냄비다. 예쁘고 든든한 그릇이다. 은빛 냄비에 빨간 조림이 익어가니 더 맛깔스러워 보인다.
경기도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나름대로 세운 원칙이 있다. 수수한 동네 맛집, 사람 좋은 식당, 마음으로 하는 가게. 그 원칙에 딱 들어맞는 집이었달까. 조림 국물에 밥을 비벼서 먹었다. ‘과식하게 만드는 집’이라고 덧붙여야겠다.
박찬일

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써서 사회·문화적으로 노포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는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이 있고 <수요미식회> 등 주요 방송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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